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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문화재

성읍 민속마을(중요민속자료 제188호) 게시물 상세보기
제목 성읍 민속마을(중요민속자료 제188호)
작성자 문화재과 작성일 2001-01-15 00:00:00
조회 24,298 회 수정일 2019-11-19 12:35:01

문화재 설명

이 마을은 세종 5년(1423) 정의현청을 성산읍 고성리에서 이곳으로 옮긴 이래 1914년 군현제가 폐지 될 때까지 500여년 동안 현청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곳으로 조선조 읍성의 기본 뼈대를 잘 보존하고 있다.
공간의 배치는 우리나라 읍성에 많은 [우]자 모양을 기본으로 하여 남북 자오축 머리에는 동헌을, 가운데는 객사를, 남쪽에는 남대문을 두는 형식을 취했다. 성곽은 직경 2,520척 (약770m) 크기의 귀죽인 네모꼴이며, 그 중심은 객사 대문으로 되어 있다.

해안에서 8km 쯤 올라간 아늑한 산촌인 성읍민속마을은 정부지정 민속마을로서 민속학적인 색다른 가치와 관광대상지로서 유별난 성격을 지닌다. 1980년 5월 6일 지방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 보호되다가 1984년 6월 7일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 188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는 방어를 철저히 하기 위하여 1416년 (조선조 태종 16)에서 1914년까지 약 500년 동안 행정구역을 삼분하였다. 한라산 북쪽이 제주목이었으며 한라산 남쪽은 양분되어 서쪽이 대정현, 동쪽이 정의현이었다. 성읍민속마을은 오랜 세월 정의현의 도읍지였다. 제주도의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면서 약 500년 동안의 도읍지였다는 점이 접목됨으로써 유형·무형 문화재를 오밀조밀 간직하고 있다.
해안마을 표선리에서 8km쯤 올라간 곳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성읍민속마을은 펑퍼짐한 대평원 속에 곡선미를 뽐내는 오름(峰)들이 마을을 뱅 둘러가면서 불쑥불쑥 솟아 사방으로 병풍처럼 둘러쳤다. 성읍민속마을 뒤에는 영주산(瀛洲山, 325m)이 의연하고, 백약이오름·본지오름·무찌오름·장자오름·갑서니오름·설오름·개오름·모구리오름·독자봉·가시오름·돌리미·문석이오름·궁대오름·좌보미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들이 수위병들처럼 솟았다. 일망무제로 탁 트인 성읍민속마을의 들판에 서서 사방을 내다보면 대자연의 향연에 압도당하면서 외경을 느끼게 된다.
이 마을 한복판에는 이른바 '천년수(千年樹)'로 이름난 느티나무가 圓의 중심처럼 의젓하다. 그 주변의 헌칠한 팽나무들과 정의현청이었던 일관헌(日觀軒)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 느티나무와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161호로, 일관헌은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 7호로 각각 지정, 보호하고 있다.

성읍 민속마을 주변에는 성(城)이 쌓였었고 이제도 그 성터가 일부 남아있는데, 당국에서는 구관서(舊官署)들과 더불어 그 보존상태가 좋다(제주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 5호). 정의향교는 현청소재지가 고성리로부터 성읍리로 옮겨지던 1423년(세종 5)에 세워진 것이다.
성읍 민속마을에는 '벅수머리' 또는 '무성목'이라 불리는 돌하르방이 열 둘 있다(제주도 지정 민속자료 제2호). 제주도내에 돌하르방이 도합 몇이었는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제작된 것인지, 어찌하여 제주목·대정현의 것과 정의현의 것은 각각 그 형상이나 명칭이 다른 것인지, 한반도에 산재된 장승(벅수)들이나 외국의 이런저런 석상들과 어떻게 그 맥락이 닿는 것인지, 숱한 과제가 쌓여 있다. 어쨌든 이곳에 본래부터 12기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면, 동문·서문·남문에 각기 4기씩 세워졌었다고 추찰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이곳의 돌하르방의 거의 원위치에 놓여있는 셈이다.
무속신앙처도 20개소 산재됐었다. 이 가운데 '안할망당' · '광주부인당' · '일뤠당' · '개당' 등은 아직도 남아있다. 성읍민속마을 주민들의 신수(身數)한 강녕(康寧)을 관장한다는 '안할망당'의 성격은 '안칠성' 계열이라 볼 수 있다. 부인병이나 모유 등을 관장한다는 '광주부인당'의 유래담에는 현감 부인의 시녀였던 광주부인의 애틋하고 갸륵한 이야기가 감돈다. 이미 사라졌지만, 마소의 번식과 질병을 관장한다는 '쉐당'이 있었음은 성읍 주민의 재래적인 사람살이가 주농부축(主農副畜)이었음을 입증해준다.
이 마을에서는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가 면면이 치러진다. 그 제향 대상신 가운데 '牧童神之位(목동신지위)'가 끼어 있음도 축산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백중날에 축산의 번성을 기원하는 '백중코사'도 성행했었다.
유다른 가옥구조는 귀중한 문화유산임과 동시에 이 방면의 학술적 자료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 마을의 姓氏 분포는 康·金·李·洪·高·宋의 순서인데 非同族(비동족)마을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7대 이상 이어지는 성씨가 드물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 마을은 지난날 행정요지였으므로 관헌과 주민들의 전·출입이 빈번했었다는 근거가 될 듯 싶다.
성읍민속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여느 마을보다는 걸궁이 성행해서 끈질기게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나이든 제보자들의 말에 따르건대, 걸궁은 마을의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시작했다기보다 한본토에서 흘러들어와 살았던 사당패들이 널리 전파했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민요 등 구비전승 및 사람살이의 이모저모에서도 발견되는데 500년 동안의 도읍지였기 때문에 이룩된 일종의 문화유입이라고 여겨진다.

성읍민속마을에 희귀하고도 학술적 값어치가 높은 민요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韓國口碑文學大系 9-3》과 문화방송의 《한국민요대전》을 통해서도 심층적으로 조사된 바 있다. 1989년 12월 1일에는 임동권·이소라·김영돈 위원 등의 조사에 준거해서 〈제주민요〉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95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는데, 예능보유자후보는 이 마을의 李善玉(이선옥)이다. 성읍민속마을은 제주도의 전형적인 산촌임과 더불어 약 500년 동안의 도읍지였다는 이중성격을 지니므로, 이곳의 민요 역시 이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면서 전승된다.
제주도의 어느 산촌에서든 전승되는 노동요·의식요 등이 잘 전해지는 한편, 오랜 세월 도읍이었기 때문에 기녀(妓女) 등을 매체로 하여 전해지는 창민요(통속민요)가 전승되기도 한다. 다른 마을에 비하여 민요가 썩 빼어나고 가멸진 까닭은 이 고을이 지니는 이중적(二重的) 성격에 기인한다. 따라서 성읍민속마을에서는 도내 다른 마을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제주 고유의 민요들이 전해지는 외에 〈용천검〉·〈관덕정앞〉·〈신목사타령〉·〈중타령〉·〈질군악〉·〈오강산타령〉·〈사랑가〉·〈잦은사랑가〉·〈계화타령〉(김계화)·〈동풍가〉 등 특이한 민요들이 이제도 잘 불린다. 이런 창민요는 다른 마을에서는 들어볼 수 없거나, 드물게 전승되는 노래들이다. 민속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의 견해에 따르건대, 한본토의 산타령계 가락으로 보이는 것이 흔할뿐더러, 한본토에서는 이미 그 원형이 변질되어 버린 京西道(경서도) 민요의 원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이 있다는 점에서 그 값어치를 높이 평가한다.
더욱이나 노동요 가운데에서도 밭 매면서 부르는 구성진 가락의 〈아웨기〉·〈홍애기〉 등의 특이한 민요는 다른 몇몇 마을에서도 전승되기도 하지만 이 성읍민속마을에서 더욱 멋있게 불린다. 또한 연자매, 곧 '말방애'를 찧으면서 도내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단조로운 요사와 가락으로 노래함에 비하여 이 마을에서는 조을선·이선옥씨가 부르는 가락을 보더라도 제대로 틀이 잡혔다. 어쨌든 성읍민속마을의 창민요는 한본토에서 흘러들어와서 본디의 가락과 요사가 일부 變容(변용)된 것이매 그 교류현상이나 전승변이 등을 살피는 데도 소중한 값어치를 지닌다.

성읍민속마을의 가옥구조는 도읍지로서의 면모가 아직도 남겨진 듯, '올레'가 시원스럽고, 노천변소가 예전부터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중요민속자료 제 68호인 조일훈 가옥 울타리 안 대문 가까이에 '몰방애'(연자매)가 설치되었던 일도 특이하다. 개인소유로 '몰방애'가 설치되는 경우는 제주도내에서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성읍민속마을의 통혼권(通婚卷)은 마을 안에 치중되었으며, 다른 마을과 통혼할 경우에는 해안마을보다는 중산간마을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마을의 가족구조를 보면 2인가족세대와 1인가족세대가 비교적 많은바, 이러한 현상이 이 마을이 오랜 세월 도읍지였다는 점과 어떤 상관성을 지니는지는 미지수다. 성읍민속마을 주민들은 조혼하는 경향이 짙었었다. 1973년 필자의 현지조사에 따르건대, 이곳 여인들의 初婚年齡(초혼연령)은 대개 스무 살이었는데, 도읍지였다는 분위기의 유풍에도 그 원인의 일부가 있지 않나 생각되나 분명치 않다.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태도에 비하더라도 쾌활하고 유흥적 기질이 엿보인다는 점은 "성읍민속마을 특유의 의식구조"를 한 주제로 삼아서 연구해 볼만한 값어치가 있다.

유형의 문화유산으로는 이지역 특유의 민가들을 비롯하여 향교· 일관헌(동헌)·돌하르방·성지·연자마 ·옛 관서지 등이 있고 무형의 문화유산으로는 제주도 중산간지대 특유의 민요·민속놀이·향토음식· 민속공예·방언 등이 풍부하게 남아있다. 더욱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느티나무·팽나무 등 노거목은 유서 깊은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 준다.

세부항목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188호
명 칭 :
성읍 민속마을
지정(등록)일 :
1984년 6월 7일
소 재 지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성읍민속마을 2
성읍민속마을 1

문화재 위치정보

 

담당부서
세계유산본부 세계유산문화재부
담당자
이지은
연락처
064-710-6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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