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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대 [ 확장분야 > 자연 > 지리 ]

내용설명

조선 후기 이 지방 유학자들과 시인들이 어울려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남읍리와 함께 양반촌으로 알려진 한림읍 명월리에 있다. 명월대는 옆으로 맑고 고운 시냇물을 끼고 있으며, 수십 그루의 팽나무가 울창한 자연림을 이루고 있어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식히기에 좋은 곳이다. 또한 아담한 반달형 돌다리가 놓여 있어 운치를 한층 돋구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감물들이기 [ 민속 > 의식주 > 의생활 ]

내용설명

갈옷은 여름용 한복에 감즙을 물들인 옷으로 제주도민의 대표적인 노동복이다. 특히 농부들의 필수 의복이자 일상복으로 오래전부터 입혀져왔다. 갈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감물들이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음력 6,7,8월 경에 풋감을 따고 감을 으깨어 감물의 농도를 감과 물의 50:1로 맞추고 감물을 옷감에 고루 펴서 바르고 옷감을 돌돌 말아주며 말아주는 중간에 으깬 감을 넣어준다. 이렇게 말아놓은 옷감을 감즙이 옷감에 우러날 때까지 발로 밟아주고 찌꺼기를 털어낸 다음 평평한 곳에 잘 펴서 직사일광 밑에 널어 말린다. 널어 말린 옷감을 다시 감즙 물에 적셔 다시 널어준다. (하루에 2번) 이와 같이 밟는 과정과 말리는 과정을 하루에 2회씩 10회 정도 반복하여 감물이 고르게 든 든 옷감으로 갈옷을 만든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정낭 [ 민속 > 의식주 > 주생활 ]

내용설명

제주 전통민가에는 대문이 없다. 대신 입구에 긴 나무막대기를 서너개를 양 옆 돌기둥 구멍에 걸쳐놓아 사람이 있고 없고를 알려주었던 정낭이 있었다. 이는 제주사람들의 깊은 정과 이웃에 대한 깊은 믿음을 나타내는 고유한 제주만의 문화인 것이다. 정낭이 하나만 걸쳐있으면 주인이 잠깐 외출한 것으로 곧 돌아온다는 의미이고 두개가 걸쳐있으면 좀 긴 시간 외출했으나 오늘 중으로 돌아온다는 신호이며, 세 개가 다 걸쳐있으면 종일 출타중이라는 표시로 삼았다. 정낭이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으면 집에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허벅 [ 민속 > 의식주 > 식생활 ]

내용설명

허벅은 전통적으로 제주에서 사용되는 식수 운반도구로서 제주의 자연 환경과 인문적 배경에서 자연 발생된 특유의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유약을 바르지 않고 제주도에서 나는 점토만을 사용하여 독특한 제작기법과 감각으로 실용성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점차 기능에 따라 독특한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색깔이나 문양에서도 제주도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혼인지 [ 확장분야 > 자연 > 지리 ]

내용설명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위치한 800 여 평의 연못인 혼인지는 지방기념물 17호이다. 삼성신화에 따르면 동쪽 바닷가에서 삼성혈에서 나온 세 신인에게 한 나무함이 떠밀려왔는데 나무함 속의 옥함에서 망아지 및 오곡의 씨앗과 함께 벽랑국의 공주인 아리따운 세 처녀가 나왔다고 한다. 세 신인은 세 처녀들을 아내로 맞아 물 좋고 기름진 땅을 골라 터전을 마련하여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삼신과 벽랑국의 세 공주가 혼례를 올린 곳이 바로 혼인지이다. 혼인지 바로 옆에는 삼신인이 혼례를 올린 후 신방을 차렸던 조그만 굴이 있는데, 그 굴이 세 갈래로 되어 있어 단순한 신화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곳은 삼성혈과 함께 제주도 시조의 자취를 더듬어 보기 좋은 곳으로 여름철에는 붉은 연꽃이 피어 뛰어난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저지예술인마을 [ 확장분야 > 문화 > 예술문화 ]

내용설명

창작활동, 지역 주민 및 예술가의 재교육 기능, 문화 예술의 대중화 등의 기능을 원활히 하기위해 작업장과 작품전시공간 및 관광객들이 새로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특색 있는 문화예술인촌이 설립되었다. 제주도에 문화 예술의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는 마을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북제주군 한경면 저지리 지역에 문화예술인 마을이 조성되어 각종 문화행사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탄생하였다. 문화예술인 마을은 예술가의 작품 및 제작품의 생산 장소일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예술, 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며, 현장 경험과 예술 교육을 바탕으로 지역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정서가 순화되어 생활문화의 풍요로움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문화예술인 마을의 건설로 각종 워크숍 또는 교류활동으로 지역의 행사를 유치함으로써 지역개발 효과유발 및 관광자원화와 함께 문화예술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4ㆍ3 위령제 [ 확장분야 > 역사 > 근대 ]

내용설명

제2차 대전 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냉전 체제가 구축되어 가던 1948년, 한반도의 남 쪽 섬 제주도에는 광란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빨갱이의 섬'으로 낙인찍힌 채 자행된 대량 학살과 인간성 유린은 우리 민족의 최대 참극인 6·25 전쟁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만도 제주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3만여 명 이상이었는데 이는 6·25 전쟁 당시 희생당한 남북 한국인의 비율과 거의 비슷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4·3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 수 있다. 광복 공간에서 '자주적인 통일 국가를 염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고립 무원의 섬'이라는 이유로 제주도는 냉전 체제의 희생양이 되어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50여 년 동안 분단이라는 왜곡의 역사 벽에 갇힌 채 4·3은 제주인들의 삶을 억압하여 왔다. 그에 따라 제주도는 4ㆍ3에 의하여 희생된 영혼들과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를 개최함과 함께 4.3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힘쓰고 있다. <출처 : 제주사랑역사교사모임>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항일운동 [ 확장분야 > 역사 > 일제강점기 ]

내용설명

제주지역의 3ㆍ1운동은 제주의 옛 관문인 조천지역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21일부터 4일 간에 걸쳐 전개되었다. 이 시기는 전국적으로도 3ㆍ1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해당한다. 지역적으로 조천은 육지와 통하는 관문으로 중앙의 소식을 접하거나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독립선언의 최초 장소는 속칭 미밋동산이었다. 이 곳에는 예로부터 마을 공동체 신앙인 신당(神堂)이 있어서, 이 일대의 지역민들은 이 곳을 성소(聖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점이 선언서 낭독 장소를 정하는 데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운동의 전개되면서는 사람들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장소인 조천 장터를 이용하고 있다. 후에 이 운동은 신촌ㆍ함덕ㆍ신흥 등의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산남 지역인 서귀포 등지로도 확산되어 나갔다. 또한 제주도에서 발발했던 3대 항일운동의 하나인 제주해녀의 항일운동은 1931~32년, 2년에 걸쳐 북제주군 구좌읍(北濟州郡 舊左邑)을 주요무대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제주해녀 항일운동은 1930년대 최대의 항일운동으로 여성집단에서 주도한 최대규모의 항일투쟁이었다는 점과 역사상 국내 최대규모의 어민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진지동굴 [ 확장분야 > 역사 > 일제강점기 ]

내용설명

가마오름 진지동굴은 일제가 이른바 ‘결7호 작전’에 의해 1945년 3월 제주도에 제58군 사령부를 창설, 도 전역에서 미 연합군에 항거해 최후의 일전에 대비해 구축된 진지 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총 길이가 약 2천m, 출입구만 10곳이나 되는 이 땅굴은 수직으로 뚫려있는 2층 미로 갱도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군사령부가 주둔했던 가마오름 진지동굴은 한 번 들어가면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미로형으로 되어 있다. 총연장 약 2천m 중 현재 3백여m가 복원되어 있다. 높이 1백60㎝∼2m, 너비 1.5∼3m 규모로 연결돼 있는 땅굴 내부에는 당시 사령관실로 추정되는 10평 남짓한 방과 회의실·숙소·의무실 등으로 추정되는 용도의 다양한 공간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항몽유적지 [ 확장분야 > 역사 > 고려시대 ]

내용설명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항몽유적지이다. 원종 12년 5월 15일에 진도가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게 함락되자, 김통정은 잔여 세력을 이끌고 제주도로 지점을 옮긴 뒤 , 내·외성을 쌓고 몽고에 대항하였다. 이때 삼별초가 쌓았던 내·외성으로는 고토성·고장성·항파두고성·애월목성 등이 있다. 고자(古字)는 옛 성이란 의미에서 후대에 붙인 것이다. 그 중 내성에 해당되는 것이 항파두고성이고 외성으로 생각되는 것이 고토성이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진성 [ 확장분야 > 역사 > 고려시대 ]

내용설명

제주도에는 과거 9개의 진성(鎭城)이 있었다. 화북(禾北)․조천(朝天)․별방(別防)․수산(水山)․서귀(西歸)․모슬(募瑟)․차귀(遮歸)․명월(明月)․애월(涯月) 등지의 진성이 그것이다. 이들 진성은 둘레 100 여 m 정도의 조천진성으로부터 십수정(十數町)의 명월진성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가 가지각색이었다. 형태도 사변형(四邊形), 타원형(惰圓形), 반원형(半圓形) 등으로 일정하지가 않다. 성벽은 모두 석축(石築)으로 흑색화산암(黑色火山岩)의 자연석을 쌓아 올렸는데, 비교적 평탄한 면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해서 일치시키고 있다. 또 명월진의 남문지(南門址), 별방진의 서문지(西門址)에서는 옹성(甕城)의 흔적도 확인된 바 있다. 이들 진성은 수산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해안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왜관(倭冠)에 대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환해장성 [ 확장분야 > 역사 > 고려시대 ]

내용설명

환해장성은 제주도 연안에 빙 둘러있는 성을 말한다. 환해장성은 애월읍 애월리 구좌읍 동복리, 행원리, 한동리 조천읍 북촌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제주도 기념물 제 49호(1998.1.7 지정)로 지정되어 있다. 환행장성은 고려 원종 11년(1270)에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삼자 고려조정에서는 영암부사 김수와 장군 고여림을 제주도로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쌓아서 삼별초가 들어오는 것을 막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삼별초에게 패한 뒤, 삼별초에 의해 관군을 방어하기 위해 계속 쌓아졌고, 조선조에 와서는 왜구를 막기 위한 성벽으로 변하여 여러 차례 중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조선 후기 헌종 11년(1845)에는 황당선이 소섬 앞 바다에 정박하여 연안을 측량하므로 관직(權稷)목사가 제주도민들을 동원하여 수축하기로 하였으므로, 지금 남아 있는 성들은 아마 이때에 수축했던 성이 아닌가 한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봉수와 연대 [ 확장분야 > 역사 > 조선시대 ]

내용설명

제주도(濟州島)는 일정한 인구집단이 지속적으로 나름대로의 문화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을 만한 수용면적이 되므로 지역적 수준에서도 문화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데, 다른 지역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고립성(孤立性)과 전통성(傳統性) 즉, 문화적 잔존성(殘存性으)로 인해 제주도의 상고문화는 나름대로 한본토(韓本土, 陸地)와 크게 다른 독특(獨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선사시대/고대 유물, 유적 [ 확장분야 > 역사 > 선사시대 ]

내용설명

제주도(濟州島)는 일정한 인구집단이 지속적으로 나름대로의 문화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을 만한 수용면적이 되므로 지역적 수준에서도 문화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데, 다른 지역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고립성(孤立性)과 전통성(傳統性) 즉, 문화적 잔존성(殘存性으)로 인해 제주도의 상고문화는 나름대로 한본토(韓本土, 陸地)와 크게 다른 독특(獨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삼성혈 [ 확장분야 > 역사 > 선사시대 ]

내용설명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134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삼성혈은 제주인의 선조인 고씨, 양씨, 부씨 세 사람의 신인(神人)의 탄생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삼성혈은 만 여평의 울창한 숲 속에 혈단을 중심으로 삼성전과 삼성문(분양소), 제향을 받드는 전사청, 서원이었던 숭보당 등이 있다. 매년 4월 10일과 10월 10일에 춘추대제를 후손들이 봉양하고 12월 10일에는 건시대제를 혈단에서 지낸다. 삼신인이 나왔던 혈은 품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 혈속에는 빗물이나 눈이 스며들지 않으며 주변 나무들이 혈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삼신인에게 절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해녀가 점점 줄고 있어요." [ 민속 > 생산기술 > 어로기술 ]

내용설명

고령화가 되어가고 점점 줄어들고 있는 제주해녀의 실상과 해녀 감소의 배경 등을 초등학교 수업시간을 통해 구성했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옛날 해녀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 민속 > 생산기술 > 어로기술 ]

내용설명
소중이를 입고 물질을 하고 불턱에 둘러 앉아 몸을 녹이던 옛 제주해녀들의 물질생활 이야기를 해녀였던 할머니와 손자들의 대화를 통해 구성했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해녀 물질 이야기 [ 민속 > 생산기술 > 어로기술 ]

내용설명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물질의 어려움과 곳물질, 벳물질 등 물질 방법, 물질하는데 필요한 도구 등을 할머니해녀와 손자들의 대화를 통해 구성했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용머리와 고종달 [ 민속 > 신화/전설 > 제주신화, 전설 ]

내용설명
산방산 앞바다에 있는 기암 용머리에 전해지는 전설로 중국 진시황이 지관 고종달을 보내 왕후지지의 맥을 끊어버렸다는 이야기.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조천석과 연북정 [ 민속 > 신화/전설 > 제주신화, 전설 ]

내용설명
조천 연북정이 있는 자리에 원래는 조천석이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그것을 감추지 않으면 마을에 인물이 나지 않겠다는 지관의 말에 따라 그 위에 연북정을 짓게 됐다는 이야기다.
발행일 :
2008-12-31
저작권 :
제주특별자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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