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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풍물

도댓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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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9-25 작성 문화정책과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등대는 대한제국 말인 1883년(고종 20년) 조정에서 항로표지 사업을 거론하고, ‘한국무역규칙 및 해당세목에 관한 조약’ 에 의해 관제를 정비하면서부터 논의되었다. 1894년(고종 31년) 공수아문 등대국을 설치하여 등대건설을 결정했고, 1903년 인천 팔미도등대를 점등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최초로 밝혀진 우도등대(1906)는 전국에서 여섯 번째이며, 이후 마라도, 추자도 등지로 확대되어 1997년 현재, 4개의 유인등대와 49개의 무인등대가 암흑의 밤바다를 비추고 있다.
현대식·서구식 등대와는 달리 제주 사람들은 제주 특유의 담쌓기 기술에 의해 소박하게 마을단위로 민간등대를 세웠다. ‘도댓불(燈臺-)’ 혹은 ‘등명대(燈明臺)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도댓불은 포구에 설치되어 밤에 불을 밝힘으로써 위치를 알려주어 야간에 조업하는 어선이 포구로 안전하게 귀항하도록 도와주는 제주 특유의 등대다. 화산도(火山島) 제주는 사방이 바다일 뿐만 아니라 해안에 암반이나 암초가 많아 천연 포구의 발달이 아주 미약하고 소규모이기 때문에 마을별로 관리·유지했던 도댓불은 야간조업 후 안전하게 배를 포구에 대기 위한 제주인의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제주에서 도댓불의 축조는 1915년의 조천읍 북촌리 도댓불로 시작된다. 가장 근래의 도댓불은 1969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세워진 도댓불이다. 도댓불은 대개 각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60·70년대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재미(在美)학자 이덕희 씨가 지난 94년 답사한 바에 의하면 현재 도댓불의 시설물이나 터가 남아 있는 곳은 17군데에 불과하다.
도댓불 시설물은 해안주변의 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시멘트를 덧발라 단단하게 만들거나 철제나 나무를 이용하여 높이를 올리기도 하고, 기존의 연대(煙臺)를 이용하여 축조하기도 하였다. 도댓불 시설물 위에 송진이 붙은 소나무 가지(솔칵)에 불을 붙이거나, 생선기름이나 석유를 담은 등피나 호롱을 걸어놓거나 얹혀놓아 불을 밝혔다. 도댓불의 등·점화는 마을에 따라 담당자를 따로 정하거나 야간 조업을 나간 어부의 가족들이 맡았다. 야간조업을 위해 출항할 때 불을 밝히고, 마지막 배가 포구에 들어오면 껐다고 한다.

  • 금능도대 1
  • 금능도대 2
  • 대평도대 1
  • 보목도댓불 1
  • 북촌도댓불 1
  • 북촌도댓불 2
  • 자구내1
  • 북촌도댓불 3
참고문헌
  • 이덕희(1997), 『제주의 도대불』, 가시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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