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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진도와 삼별초

제주인의 자주적인 대몽항전, 전통적 지배에 대한 저항
삼별초군을 그린 그림 1
고려는 1231년부터 30년 가까이 몽고의 침략을 받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몽고의 침략에 대해 당시 최씨정권은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서 저항하였다. 몽고의 압력에 의해 무인정권이 붕괴되고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자, 이때에 삼별초(三別抄)가 대몽항쟁의 기치를 들고 저항하였다. 삼별초는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시초는 밤에 도둑을 단속하는 데 있었지만 차츰 그 임무가 확대되어 경찰임무인 포도(捕盜) 금폭(禁暴) 형옥(刑獄) 국수(鞠囚) 이외에 군사임무인 도성의 수비를 비롯해 친위대ㆍ특공대ㆍ정찰대의 구실도 하였다.
 

1270년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를 단행하자, 장군 배중손과 야별초 지유(指諭) 노영희(盧永禧) 등이 강화에서 삼별초를 거느리고 반기를 들었으며, 승화후(承和候) 온(溫)을 왕으로 삼았다. 삼별초는 곧바로 8월에 진도로 옮겨와 장기적인 대몽항쟁을 계획하였으며 일본과의 제휴도 모색하였다.

진도는 조운로의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조운을 막으면 개경정부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진도는 일본이나 중국과 교류하는 데 요충지였으며, 또한 진도 자체가 비옥한 농지를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배후에 무인세력의 기반이 있었던 전남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삼별초가 진도에 근거를 두고 대몽항쟁을 적극적으로 표방하자 경상도의 밀성인(密城人, 밀양인)까지도 호응하였다. 삼별초군은 남해안 일대와 전라도 일대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게 되었다. 군현에서 삼별초를 맞아들여 항복하거나 혹은 진도에 가서 삼별초의 적장을 알현하기도 하였다. 또 삼별초가 주현에 격문을 보내 민으로 하여금 모두 진도에 들어오게도 하였다. 당시 전라도 토적사(討賊使)인 참지정사(參知政事) 신사전(申思佺)은 삼별초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나주에서 개경으로 달아나 버렸다. 삼별초가 진도에 근거를 두자, 전라 경상도의 조세 운송은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진도에 근거하고 있던 삼별초군은 여몽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몇차례 물리쳤지만, 결국 원종 12년(1271) 5월 진도에서 쫓겨 제주도로 건너갔다. 제주도에 입거한 뒤에도 삼별초는 전라도 서남해안 일대에 세력을 뻗치고 있으면서, 조운로를 막아 원종 13년 3월에서 5월까지 조운선 20척, 곡미(穀米) 3,000여 석을 빼았아 왔다. 또 원종 13년 8월에는 삼별초가 전라도의 공미(貢米) 800석을 약탈하였다. 원종 13년 6월 제주도에 있던 삼별초는 흔도 홍다구 등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 김동전 교수(제주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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