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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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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남기고 싶은 이야기... 김영도 산악인 <6>
작성일 2018-09-18 20:08:33 조회 1,935 회
작성자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연락처

 

남기고 싶은 이야기... 김영도 산악인 <6>

 

한라산국립공원에서는 지난 9월15일 산악인의 날을 맞아 김영도 현임종 홍석표 원로 산악인을 초청하여 특강을 했습니다. 이날의 강연 내용은 앞으로 우리 한국 등반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사료되어 그 내용을 정리하여 3회에 걸쳐 한라산이야기 코너에서 싣기로 합니다.   [ 편집자 주]

 

 

1. 김영도 산악인 특강 내용

 

“나의 등산세계는 '세레니티'와 '임멘시티'를 발견한 거다.”

 

                      

 

저는 이북 평양에서 왔는데 이십대 초반에 넘어와 가지고 고향도 못가보고 이제 죽게 되었어요. 그래도 이북 북한에는 관심이 없는데 제주는 이상하게 인연이 맺어져 일 년에 두 번씩 꼭 오게 됐습니다. 9월 고상돈 죽은 날 하고 11월 고상돈 걷기대회 날. 그런 연유로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오게 됐지만 앞으로는 못 올 것 같다. 오늘도 건강상 못 올 뻔 했는데 초청장을 받아보고 취지가 너무 좋아서 꼭 가야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산악박물관에서 하는 제주대학교 산악회 장비 전시회를 보고 정말 놀랐다. 그 당시에 지방에서 이렇게들 장비를 가진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장비들이다. 그냥 제주도 왔으니 칭찬하기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제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이렇게 장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나는 정말 오랜 세월을 산악계와 같이 살아왔고 산 생각만 하고 살아왔는데 여기 오신 분들이야 젊은이들이 아닌 분들은 아시리라 보지만 나는 정말 감회가 깊어요..

 

초청장 엽서 사진에 큰 천막이 있더라. 육각형인 천막, 영어로 헥사곤 텐트라고 하는데  아 멋있는 천막이죠. 요새 그런 천막 쓸 일도 없겠지만 참 멋있는 천막이었어요. 여기 또 배낭들이 있는데 젊은이들은 구경한 적도 없을 거고 여러분은 아시죠, ‘키슬링’배낭 이라고. 그 당시는 전부 그걸 맸어요. 그걸 매고 가는 걸 뒤에서 보면 게가 걸어간다고 그랬다. 게는 옆으로 가는데 사람은 앞으로 간단 말야. 누가 그런 애기를 했는가 하면 일본의 유명 산악인이 한 얘기인데, 키슬링이 일본에 들어온 것이 1920년대거든요. ‘키슬링’이라는 사람이 푸대를 만들고 있었어요.. 등산 푸대가 아니죠. 그런데 사람들이 와서 지고 다닐 것 뭐 없느냐고 하니 푸대 자루처럼 만들어 준 거다. 그래서 그 사람 이름 ‘키슬링’을 따서 ‘키슬링 배낭’이 된 거다. 요즘 젊은이들은 구경한 적도 없을 거다.

전시회 사진에 나온 그 당시 젊은이들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어요. 우모복이 하나도 없고 등산화도 시원찮더라. 웅크리고 있는 거 보니 얼마나 추웠겠나 싶어요. 이런 사진들....이번 한라산국립공원 행사는 그래서 나에게 영원히...정말 큰 선물이다 여러분에게 좋은 선물을 받아가는 거라 생각하겠어요.

 

오늘은 9월 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 오른 날이다. 나는 고상돈이 제주 출신인지도 몰랐다. 1100고지에 묘원이 생겼는데 이거는요, 고상돈의 묘지를 만들어 준 것은 대단한 일이며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얼마나 유명한 등산가들이 많은가. 그 사람들 묘를 사회가 국가가 나서서 만들어 준 것은 없다. 물론 체르마트 같은 곳에 산악인의 공동묘지가 있다. 아 그것도 정말 멋있다. 마터호른을 오른 에드워드 휨퍼 같은 유명 산악인도 거기 공동묘지에 있잖습니까. 고상돈 정도 가지고...아, 정말 대단한 얘기죠. 고상돈이 이렇게 대단한가? 나는 고상돈과 같이 갔지만 고상돈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줄 몰랐다. 그런데 끝내고 보니 고상돈 밖에 없겠더라, 고상돈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의 알피니즘은 고사하고 여기 앉아있는 김영도도 아무것도 아니고 없었을 거다. 고상돈이가 올라간 에베레스트, 사실 그 당시 문제는 거기 있지 않았어요.

 

1970년에 한국이 에베레스트를 꿈을 꾼다는 자체가 엄청난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없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000불 정도였다. 그런데 1억 3천만원 정도가 드는....이런 경제상황에서 에베레스트를 꿈꾼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 KBS를 찾아갔더니 못한다고 하더라. 당시 유일한 스포츠 계통의 회사,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름 코오롱이 있었다. 무교동에 가건물을 가지고 있을 때인데 도와 달라 손을 내밀어 보고 했지만 못하겠다고 하더라. 당시 국내는 그만한 도움을 줄만한 기업이 아무 곳도 없었다. 장비도 물건도 모두 일본 가서 사와야 했어요.

 

70년대 그 당시 김영도는 산악계에서 별 볼일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우연찮게 정치에 몸담아 민주공화당 선전부장을 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고등학교 교사하다가 끌려건거다. 그런데 사무총장이 어느날 날더러 선거를 앞두고 국민을 위해 뭐 쫌 하라고 하더라.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던 중에 전국에 산장을 35동 짓기로 했다. 한양공대 건축과에 다니던 제자가 있어 돈 안들이고 어떻게 좀 하자 설계는 내가 하마 이렇게 한 것이 대한산악연맹에 알려져 이런 인간이 있나 그 사람 끌어내라 해서 거기 끌려가게 된 것이다. 대한산악연맹이 있는지 한국산악회가 있는지도 모르고 북한산하고 도봉산만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었다. 주말 등산가였던 시절. 이거 재미있는 일이다, 여러분. ‘에베레스트 등반대장이라는 사람이...’ 솔직한 얘기로 한라산도 지리산도 설악산도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에베레스트에 간 거다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겠느냐. 그런데 왜 그렇게 됐는가. 당시에는 계획을 추진하고 프로모팅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하게 된 거예요.

 

대한산악연맹 이사회가 열려 갔더니 로체에 가려고 한다고 하더라. 거기가 어디냐 물으니 에베레스트 옆에 있는데 8천미터 이상이다 그런데 돈이 없어 못 간다고 하더라. 얼마가 필요 하냐 물으니 1200만원이 필요한데 400만원 정도밖에 없고 800만원이 없다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박정희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대한민국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8천 미터에 도전하겠다는데 돈이 없답니다, 도와주십시오, 돈은 8백만원입니다. 했더니 그 이튿날 400만원 수표가 2장이 와서 연맹에 ‘여기 있소, 가소’ 해서 떠나게 된 거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겠느냐. 그게 70년대 초 지금은 죽은 박철암 대장이 이끄는 로체샬 원정대인데 대원들이 한 번도 합동훈련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갔다. 4천미터 정도에서 였나 한 친구가 고산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정상 도전을 못하고 끝나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죽일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 원정대가 가면서 에베레스트 입산허가를 내겠다고 날보고 영문으로 작성해달라는 거다. 그래서 ‘여보 정신없는 사람들아 8백만원도 없는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는 어떻게 간다는 거냐’고 하니 모르시는 말씀이다 이제 신청을 해도 언제 나올지 모른다. 그렇게 에베레스트 입산허가 신청서를 무려 1971년에 신청을 하게 됐는데 1973년 말 외무부에서 연락이 왔더라. 네팔 행정부에서 ‘한국원정대의 입산을 허가한다. 1977년 가을에 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돈이 있나. 그래도 훈련은 해야겠다 싶어 젊은이들에게 모여라 하니 너무 좋아하며 모였다. 외국에 나가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에베레스트 간다 하니 너나 할 것 없이 한 50여명이 모였다. 이놈들(?)을 끌고 지리산 훈련을 했는데 양하선 대장이 그 멋진 사나이가 대원으로 왔다더라. 몰랐는데 후일에 알게 된 거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에베레스트에 가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에베레스트에 가려면 1억 3천만원의 돈이 필요했는데  한국일보에 장기영회장이란 분이 있어요. 어쩌다가 팔자에 없는 국회에 들어가게 됐는데 뒤에서 ‘나는 김영도 꼬붕이요’그러는 겁니다. 내가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만나서 얘기한 적은 있습니까? 그분을 알지도 못했는데 ‘여보 당신말야, 내 사무실로 좀 오소.’해요. 갔더니 에베레스트 어떻게 할 거냐 해서 가야죠 그랬더니 ‘6천만 원을 한국일보에서 낼 테니 나머지는 정부에서 당신이 끄집어 내’라고 하더라. 그래서 알았다고 했는데 제가 무슨 국회의원 자격이 있습니까. 국회에 들어갔더니 전문분야가 갈라져 위원회가 있잖습니까. 난 위원회가 뭐 하는지도 모르는데 원내총무가 날보고 당신 재무위원회에 가쇼. 무슨 말씀이냐 나는 재무위의 ‘재’ 자도 모르는 사람이요.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했으니 문공위에 보내달라고 했더니 꽉 차서 자리가 없데요. 당신은 공부하는 사람이니 재무위에 가서 공부를 하라는 거다. 그렇게 재무위를 갔더니 남덕우씨가 장관 이예요. 남덕우씨를 알게 돼 찾아가 이러저러해서 왔다 했더니 아이고 알겠습니다 도와 드리죠 하고 그 자리에서 6천만원을 지원받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돈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니 청와대가서 한 말씀해야 된다는 거예요. 알았다 하고 청와대 갔는데 정상천이라는 사람이 수석비서관이었어요. 이렇게 해서 그 돈 가지고 에베레스트에 가게 된 거예요.

 

600명의 포터를 끌고 가는데 이놈의 포터들이 첫날 모이질 않아. 할 수 없이 선발대 두 번째 또 몇 명....이렇게 보내고 또 보내고...난 마지막에 갔다.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서 가는데 3미터짜리 사다리는 누가 질라고 안 해. 무게는 15kg밖에 안돼요. 보통 30kg지는데 15kg인데도 안지겠다는 거야 돈을 2배 주마 했는데 안간대. 3배 준다고 하니 그때야 가요. 포터들이 도중에 짐을 내리고  도망가 버렸어. 짐을 지고 안가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도 짐 지고 가는 놈은 하나도 없어. 짐을 내려놓고 도망가는 포터를 끌고 와서 제발 좀 지고 가자...가자 사정을 했어요. 말이 통합니까? 손짓발짓 사정을 해서 가고 또 가고 그렇게 갔어요. 영국놈의 회사를 가서 포터들 돈 다 줘서 포터를 데리고 갔는데 그렇게 사고가 나버린 거예요. 후에 에베레스트 등반이 끝나고 호텔로 왔어요. 그런데 그사람이 하는 얘기가 ‘한국 에베레스트 등반 축하해요’ 그래요. ‘이보쇼 당신 포터들 다 도망가서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지 알아요. 그 돈 내 놓으시오’ 했더니 못 주겠다는 거야. 그때 내가 얼마나 화난 지 아십니까. 영국신사란 사람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이클 뭐라는 사람, 한국 김영도는 명함에도 내밀지 못하는 정말 유명한 사람에게 내 짧은 영어로 욕을 했어요. ‘거절하기는 ㅅ.ㄲ.’ 뭐 이런...말이었는데 그랬더니 그 사람이 화가 나서 나중에 미국 아메리칸 저널에다가 ‘한국원정대 엉터리’라고 욕을 썼어요. 그래서 내가 저널에다가 그 사람이 더 엉터리요 하고 항의를 한 일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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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대구사나이 박상열이 무서운 사람이야. 우리보다 폐활량이 2천이나 더 많아. 우리는 4천인데 그 친구는 6천이야. 그래서 선봉에 세웠더니 자기는 산소를 조금도 걱정 안한다고 산소를 제때 안마시고 자는 거야. 에베레스트 갈 때, 내가 원정대장인데 어떻합니까! 책을 보고 문제가 어디 있나? 고산병이래. 해서 의사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고산병은 자기들은 의학에서 배우지도 않았다는 거야. 그래서 외국 책을 보고 ‘고산병’ 어떻게 대처 하라는 건가  찾아보니, 천천히 가라 가다가 머리가 아프면 쉬어라 그 이상 길이 없다. 산소는 어떤가 산소는 밤에 7300리터 부터 마셔라. 낮에는 암만 마셔도 소용없다. 밤에 잘 마셔야 된다, 그래요. 내가 대원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했어요. 이렇게 에베레스트에 갔어요.

 

당시 저는 53세였고 대원들은 모두 이십대 후반이었다. 그러다보니 8700미터 올라가면서 대구사나이 박상열이가 8500미터에서 자면서 귀찮아서 산소를 제대로 마시지 않는 거다. 그랬더니 아침에 죽겠다는 거예요. 어떻게 된거야 하니 어제 산소를 제대로 안마셔서 죽겠습니다 그래서 야 이놈아 내가 그만큼 얘기했는데 어떻게 할래 했더니 가겠습니다. 알았어, 죽든 살든 가야지 그래서 간 거야. 그런데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어. 오겠지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데도. 그 친구들을 새벽 두시에 깨워줘야 됩니다. 그러니 잠을 못자는 거야 밤새 둘러앉아 있다가 새벽 두시에 무선을 쳐요. 물을 끓여야 되는데...여러분은 잘 아시죠! 불이 붙습니까 불이 약한데 눈이 잘 녹습니까? 추운데 물한 모금도 거기서는 잘 먹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저녁때가 다 되가지고 무전이 왔길래 뭐야 했더니 암프로바가 박상열이 쓰러졌습니다 그래요. 암프로바 라는 이친구가 서양 사람들이 여기를 많이 오니 브로큰 잉글리쉬를 해요. 내 영어도 엉터리지만 뭐라 했는지 아십니까 ‘노 옥시전 아이 다이’ 산소가 없습니다 나 죽겠습니다. 내가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십니까 이제 다 끝났다..라고 생각했어요. 8700미터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거, 등산 용어로 비박이라 하죠. 물이 있습니까 뒤집어 쓸 것이 있습니까 거기서 어떻게 잡니까? 여러분 8700m면 기온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기온이라는 게 1000미터에 5도씩 떨어집니다. 8천미터면 무려 기온 자체가 영하 40도라는 거예요. 박상열은 곰이예요 ...그 다음날 아침에 박상열에게 전화가 왔어요 ‘살았소’ 야 살았다 싶어 내가 전화를 해서 사우스코리아 살았다 박상열이 살았다 했더니 빨리 올라가라 그러더라고요. 거기서 그렇게 정상까지 다섯시간이 걸렸어요. 그다음은 여러분들이 다 아는 것이니 에베레스트 얘기는 이 정도 하기로 합시다.

 

지난 여름 얼마나 더웠나 그런데 난 7월하고 8월 달 더위를 모르고 지냈어요. 오스트리아 간호사출신 겔린데 칼텐부르너라는 여자가 있어요. 8천 미터에 도전한 여자죠 그 당시에 아주 유명했어요. 8천미터에 도전한 여자가 많이 없었던 때였으니까요. 그 뒤로 누가 따라 갔습니까? 우리나라 오은선이 뒤에서 따라 갔어요. 하아 무서운 여자예요 오은선은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피니스트 라인홀트 메스너가 책에서 우리나라 오은선을 얼마나 높이 평가한지 몰라요. 어느날 오은선이 돌아와 전화가 와 나갔더니 회장님 이 책이 독일어인데....이거 회장님 드릴려고요. 세 권 가져와 자기를 지원해준 블랙야크를 하나주고 기념으로 하나는 나를 주는 거예요. 내가 그걸 보는데 오은선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오은선이가 칸첸중가를 못 올라갔다고 인정을 안 하잖아요. 그때 마침 조선일보에서 연락이 와서 글을 하나 써 달래 주었더니 제목을 ‘등산을 모르면 오은선을 논하지 말라’ 이런 요란한 제목을 붙여 놨어. 오은선이 얘기는 몇 줄 밖에 안썼어요. 그 글이 오은선을 옹호하려고 쓴 글이 아니거든. "여보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멋있는 사나이들이여 한국의 여자가 말야 8천미터 14봉을 올라갔어 칸첸중가 그것을 올라간 거 같지 않다고 잡아 먹을려고 하면 되니? 8천미터 죽음의 지대를 열 네 번이나 갔어. 그랬으면 올라 간 거야. 그러니 인정해줘.  뭐 그렇게 따져 꼭 꼭대기에 서야 되냐. 꼭대기에 못 서면 어때!" 라인홀트 메스너 책을 빌어 그렇게 얘기한 거였어요. 그 책에서 오은선이가 얼마나 지독한 여자인가 했더니 15개월에 여덟 번 올라갔다고 나와. 두 달 동안 하나씩 갔다는 얘기 아냐. 메스너가 그 책에서 뭐라고 했냐하면  전 세계 산악인 가운데서도 그런 기록은 없다고 썼어요.

 

이 시간에는 오은선이 얘기를 할려는게 아니었어요. 아까 말한 칼텐부르너가 책을 냈어요. 내가 오은선에게 그랬어요. ‘당신 말야 산악인들이 인정안하니 다시 갔다와’ 그랬어요. 그래서 칸첸중가 다시 갔다오지 않았소. 그만큼 신념이 있으면 돼, 자기가 믿음이 있으면 돼. 내가 부탁이 있는데 책을 써라 14봉 올라간 책을 쓰라고 했다. 아무도 쓴 사람이 없어. 유능한 사나이들이 14봉 올라간 것이 4, 5명인데 하나도 책을 안 쓰고 있어. 당신이 써, 했더니 알겠습니다 하더라고. 그런데 아직까지 오은선이가 책을 썼다는 소식이 없어. 그런데 칼텐브루너가 책을 썼어. 독일어 책이에요.

 

8천미터에 대한 열정 뭐 이런 거야. 지난 7월, 8월 달에 이걸 내가 번역해야 되겠다. 이거는 내가 번역하고 죽어야지, 했어요. 보통 책을 번역하려고 하면 빨라야 6개월이 걸리는데 이건 두달에 해 버렸어. 왜 그렇게 빨리했냐 하면, 아마 그 책이 출판이 돼서 여러분앞에 나가게 되면 그때는 김영도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솔직한 얘기로 제주도도 이번이 마지막 길이지 싶었어요. 11월 초에 와야 되겠는데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칼텐부르너 이여자가 8천 미터 14봉을 다 못 올라 갔어요. K2를 세 번이나 도전하다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래서 13개 올라갔는데 이 사람은 8천 미터 몇 개 올라가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자기는 누구하고 경쟁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그랬어요. 그사람 책에는 오은선이 얘기는 하나도 안 나와요. 서양사람 그 사람들 교만한 거죠. 동양의 여자가 대한민국 이름도 없는 여자가..하는 게 좀 있어요. 난 에베레스트와 그린란드 밖에 가지 못했지만 1950, 60년대 유명 알피니스트들은 책을 한 권씩 다 내고 죽었어요. 한 권씩 낸 그 책을 내가 다 번역을 했거든. 나는 그것으로 만족을 해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한 사람이 그 유명한 사람들 것 다 번역 한거 대단한 거예요.

 

8천미터 낭가파르바트을 오르고 내려온 헤르만 불이 하산하며 고생한 얘기를 읽으며 얼마나 운지 몰라요. 여러분도 8천미터 내려온 부분, 고것만 읽어 보시길. 얼마나 고생하고 내려왔는지...! 정상에 올라갔다가 마지막 캠프까지 혼자 내려오는데 42시간이 걸렸다더라. 죽지 못해 내려온 거야. 마지막 캠프에 내려오니 한스라는 독일 친구가 “난 네가 살아 돌아온 것이 기쁘다.” 그랬어. 어느 누구도 꼭대기까지 갔느냐, 정상에 갔니, 사진 찍었니, 라고 묻지 않았다. 그 친구가 죽지않고 내려오니까.. 그게 기뻤던 거다. 그게 1954년도 얘기다. 난 그 얘기를 읽는데 정말 눈물이 나더라(울먹거리며)고요.

 

낭가파르바트에서 고미영이가 죽었지 않아요 ..고미영가 왜 죽습니까 지현옥이도 왜 죽습니까? 지현옥이 엄홍길이하고 올라갔을 때 그때.... 지현옥이는 8천미터를 네 번째 올라가는 거예요. 그만하면 대단한 거예요. 지현옥이를 엄홍길이가 못 말려서 ...못 말리죠 말릴 수 없습니다. 엄홍길이 지현옥이 가족들한테 얻어맞지 않았습니까! ‘너 때문에 우리 애가 죽었어 못 붙들어서...’ 하고요. 참 아까운 지현옥 고미영이예요. 그 어려운 낭가파르바트...부산의 김재수가 그렇게 같이 다니면서...김재수 대단한 인간인데 고미영이를 믿고 혼자 내려올거라고 믿었지. 고마워 고마운데 데리고 왔어야지....요!

 

이 산이라는게 나는 그래요. 우리가 산을 왜 갑니까 건강 때문에? 시간이 있으니까? 대자연이 좋으니까? 아니예요. 저는 산은 우리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등산은 고도지향성이라고 봐요. 높이 더 높이....를 추구하죠. 한라산...세계 유명한 산에 비한다면 그게 산입니까? 2천미터도 안되는데...그런데 한라산은 우리나라의 심볼이예요. 나는 외국사람이 제주도의 아이덴티티가 뭐냐, 그러면 한라산은 제주인의 아이덴티티다 라고 합니다. 김영도 당신의 아이덴티티가 뭐요 하면 ‘나는, 알피니스트다’ 라고 합니다. 어느 유명한 산악인이 강연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마을 사람들이 당신은 대학교수입니까, 유명한 기술자 입니까 하니 저는 마운틴 가이드요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을 오늘 만나보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여기 앉아 피곤을 모르겠는데 여러분은 산에 대한 경험을 다 가지고 연륜이 있어요. 요즘 젊은 애들하고 얘기 해보면 고어텍스가 어떻고 하고...말이 잘 안통해요.  에베레스트...? 그냥 갈 수 있는데.....루트? 이천불만 내게 되면 아무나 편하게 갈 수 있는데요. 우리 때에는 사다리를 놓고 루트 공략을 해야 됐는데 지금은 네팔 그 친구들이 다해놓고 이천불 씩을 받잖아요. 이제는 에베레스트에 가는 것도 수십 명 수백 명씩 쭉 줄서서 가잖아요. 이게 오늘날 등산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없는 시절에 부족한 시절에 산을 경험했으리라고 생각하니 그것이 기쁩니다.  에베레스트 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이 때에 그 어려운 때 산을 어떻게 다녔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죠. 칼텐부루너 그 사람 얘기도 그래요, 8천미터를 올라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산에 대한 정열, 산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산악인들은  갔다 와서 책도 안 쓰고 글도 쓰지 않는 것이 문제예요.

 

이제 내 얘기의 마지막인데요. 재작년이던가, 우리나라에서 세계 산악연맹 회의가 열려 날보고 우리나라에서 연로한 가장 유명한 등산가라고 나와서 마지막에 인사나 하라고 해서 나갔어요. 그사람들은 세계적인 산악인들이라 평소라면 나 같은 걸 상종이나 하겠어요. 해서 ‘너 잘 만났다’ 싶어 짤막하니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 한마디 했어요.  “나는 에베레스트에 가서 세레니티(serenity)를 알았소. 그린랜드에 가서 임멘시티(immensity )를 알았소. 비록 우리나라 산은 낮지만 우리는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삽니다.” 그랬더니 세계에서 모인 산악인 대표들, 유명하다는 산악인들이 모조리 일어나 박수를 쳤어요.

 

내가 여러분들보다 3,40년 전에 에베레스트에 갔다, 어려울 때 갔다 왔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세레니티란 무슨 말인가 서양사람 책을 보게 되면 세레니티는 고요한 맑음 수직의 세계예요. 임멘시티는 그린랜드의 무한~~~히 끝이 없는 세계다. 나의 등산 세계는 이러한 에베레스트의 '세레니티'와 그린랜드의 '임멘시티'를 발견한 겁니다. 그동안 외국의 대선배 책들을 여러 권 번역을 했고 이런 책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서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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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태풍이 지나간 한라산 모습 한라산청정자문단 임재영위원 2018-09-05 1889
105 허물어지는 한라산 휴게소 <4>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2018-09-03 1214
104 한라산 등하산로 6개소에 시설 <3>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2018-08-27 1234
103 한라산 첫 '휴식소' 관음사 <탐승정> 준공<2>..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2018-08-22 1348
102 '한라산국립공원 역사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1>..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2018-08-22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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