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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항일운동

제주의병항쟁

제주의 의병운동

의병이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조정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조직된 민군(民軍)을 말한다. 1909년의 제주의병은 1907년 일제의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발생한 소위 3차 의병시기에 일어났다. 1909년 당시의 의병전투는 전국적으로 1,738회나 발생하였는데, 제주지역에서는 고사훈(高仕訓, 이명 承天)·이중심(李中心, 이명 錫公)·김석윤(金錫允, 이명 錫命)·김만석(金萬石, 이명 光一)등의 창의(倡義)로 발생하였다. 이들은 제주성밖 광양에서 무기를 제작하였다. 1909년 2월 25일 창의와 더불어 ‘왜적을 격퇴하고 국권회복을 달성하자’는 내용의 격문을 제주 전역에 발송하고 대정군 영락리·신평리를 시발로 만인(萬人)의 의병규합에 돌입했다. 그러나 1909년 3월 3일 관덕정에서의 거사를 앞두고 의병을 규합하던 고사훈·김만석이 3월 1일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3월 4일에 총살당하고 말았다. 당시 구우면 두모리 김재형(金栽瀅), 신좌면 대흘리 부우기(夫祐基) 등 격문을 접한 도민들의 의병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현재 제주시 사라봉 모충사에는 제주의병항쟁을 기념하는 의병항쟁기념탑이 건립되어 있고, 김만석이 일본경찰에 의해 총살당해 시신이 방치되었던 대정읍 안성리에는 그를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

 

격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의 은혜에 대한 충성이요, 부모에 대한 효도이다. 만약 자식된 자로서 부모의 곤궁을 구하지 못한다면 불효가 되는 것이요, 나라의 위급함을 걱정하여 나서지 않는다면 이는 불충이 되는 것이니 이는 비록 사람이라 하더라도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 지금 교활한 왜적이 병자년(高宗13년, 1876년) 수호조규(修好條規)이래 나라의 주권을 강탈하려 하고 있다. 이제 왜적의 무리가 우리 강산을 짓밟고 있으니 그대로 두면 이 강산을 송두리째 삼킬 것이요, 우리는 왜적의 노예가 될 것이니, 이 어찌 좌시 할 수 있으랴.
오호라! 천도(天道)가 무심하리오, 경향 각지에서 충의지사(忠義志士)들은 국권 수호를 위하여 총궐기하였다. 이에 우리 제주민도 진충보국(盡忠報國)하고 자손만대에 선롱(先瓏)을 지키게 할 때가 왔다. 피 끓는 충의지사여! 죽음으로써 왜적을 격퇴하고 국권을 회복하여 성은에 보답할 자는 의성(義聲)으로 합창하여 생사를 같이 하자, 열혈의 충의용사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총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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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보훈청 항일기념관
담당자
송민경
연락처
064-710-7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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