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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안내

실내전시관(Exhibition Hall)

몽골에 대항하여 최후까지 조국을 수호한 삼별초의 항쟁,
원나라 침략에 맞서 끝까지 항거한 고려무인의 정서가 서린 삼별초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
당시 세계 강대국이었던 원나라와 맞서 끝까지 항쟁을 벌인 고려 무인의 드높은 기상과 자주호국의 결의를
항몽 유적지 안내, 삼별초의 대몽항쟁요도, 제주 항파두리 토성의 평면도 및 횡종단면도 등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 삼별초 기록화
  • 출토유물
  • 기록화1
    삼별초의 대몽항전 결의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군은 고려무인이 끈질긴 항전으로 끝내 고려를 완전 정복하지 못하고 고려 원종 11년(1270년) 고려와 몽골은 강화를 맺게 되었다.

    고려정부는 39년간 항쟁하던 강화도를 개성으로 환도하게 되자, 몽골 침략군과 싸우던 중심세력인 삼별초군은 몽골과의 굴욕적인 강화를 반대하자 반기를 들고 배중손(裵仲孫)을 중심으로 진도에 들어가 몽골 침략세력과 계속 투쟁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종 12년(1271년) 5월 여(麗)ㆍ몽(蒙)연합군에 의하여 진도까지 함락되자, 새로운 지도자 김통정(金通精) 장군이 나머지 군사를 제주도에 이끌고 들어와 최후의 1인까지 계속 싸울 것을 굳게 결의하였다.

  • 기록화2
    항파두성 축성
    제주도를 항쟁의 거점으로 삼은 삼별초군은 적의 상륙예상지인
    함덕포(咸德浦)와 명월포(明月浦)의 지세(地勢)를 고려하여 그 중간 지역인 항파두리 둘레 15리에 달하는 토성을 쌓고 성내에 건물을 짓고 삼별초의 근거지로 삼았다.
  • 기록화3
    여ㆍ몽연합군의 함덕포 상륙

    고려 원종 14년(1273년) 4월 28일 몽골의 흔도(炘都)가 이끄는 여ㆍ몽군은 군선(軍船) 160척과 약1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함덕(咸德)과 비양도(飛揚島)로 상륙하였다.

    이때 함덕에서는 공격군인 여ㆍ몽군과 이를 저지하는 삼별초군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여ㆍ몽군이 병력이나 병기에 있어 월등히 우세하였으므로 삼별초군은 패퇴하고 말았다.

  • 기록화4
    삼별초의 최후 혈전
    삼별초군은 여ㆍ몽연합군을 맞아 함덕(咸德)과 파군봉(坡軍峰) 및 항파두성(缸坡頭城)에서 격렬한 방어전을 폈으나 병력의 열세로 패하여 부장(部將)급 70여명은 항파두성을 탈출, 붉은오름에 올라 최후의 혈전을 벌여 모두 장렬히 전사하고 홀로 남은 김통정(金通精)장군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자결하고 말았다. 오늘도 한라산 어느 계곡에는 외적의 침략앞에 굴복할 줄 모르던 고려무인의 필사항전의 결의가 살아 전하고 있다.
  • 기록화5
    몽골인이 제주도민을 괴롭히는 모습

    삼별초군을 평정시킨 몽골군은 병력을 철수하기는커녕 다루가치 총관부를 설치하고 군사를 주둔시켜 제주도를 몽골의 직속령(直屬領)으로 만들어 1세기동안 지배하였다.

    몽골이 지배하는 동안 제주도에서는 수많은 공물(貢物)을 해마다 바쳤으며, 몽골의 일본 정벌을 위한 준비로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여 군마를 기르고, 산야의 나무를 베어 함선을 건조하는 등 이 어려운 군역(軍役)에 제주도민들이 동원되어 수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 기록화6
    고려인이 몽골인을 몰아내는 모습

    몽골의 목마(牧馬)관리를 위해 제주에 투입되었던 목호(牧胡)들은 원(元)이 멸망한 뒤에도 그대로 남아 갖은 행패를 부렸으며, 심지어 고려의 사절(使節)이나 목사등을 살해하는 등 폭동을 잇달아 일으켰다.

    공민왕 23년(1374년) 8월 고려는 마침내 최영(崔瑩)장군을 삼도도통사(三道都統使)로 삼아 몽골세력을 토벌하게 하였으니, 최영장군은 전함 3백 14척에 2만 5천여명의 대군단을 이끌고 상륙하여 명월진에서 3천여기의 몽골군을 격멸하고, 범섬까지 쫓겨 들어간 수괴(首魁)들은 섬멸하여 1세기에 걸친 몽골의 침략을 종식시켰다.

  • 유물1
    도자기류
    13세기 말의 다양한 상감청자류[접시, 대접, 잔, 뚜껑(蓋), 투각돈(墩), 두침(頭枕)]가 주로 출토되었고, 원대 중국제 도자기류도 일부 확인
  • 유물2
    기와류
    연판(화)문 숫막새, 당초문 암막새, 어골문과 수지문이 복합된 평기와[암키와, 수키와]등 다수가 출토되었고, 특히 '곽지촌(郭 支村), 고내촌(高內村), 만(卍)'자 등의 명문기와도 출토
  • 유물3
    동전류
    지도원보[至道元寶, 995~997], 원풍통보[元豊通寶, 1078~1085], 정화통보[政和通寶 , 1111~1117]등이 출토
  • 유물4
    청동 및 철제품
    청동병, 청동잔, 청동제 숟가락 및 젓가락, 청동제 바늘 등이 확인되었고, 철제품으로는 철제솥, 괭이, 철정등이 출토
  • 유물5 사진 준비중
    석제류
    특히 특이한 유물로 개성 만월대 건물지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석재 고누놀이판이 내성지에서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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