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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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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돌문화 코스 입구 사진

고려시대의 돌문화

고려시대의 돌문화에서는 불교 문화의 중흥기라 할 수 있는 당시의 사찰유적인 수정사지, 존자암지, 원당사지에서 발굴된 돌문화 관련 유물과 대몽항쟁을 위한 방어유적인 항파두성에서 발굴된 돌 관련 유물, 그리고 왕자묘로 추정되고 있는 하원동 탐라왕자묘를 재현 전시해 놓았다. 또한 제작시기가 고려시대 혹은 조선시대인지 확실치 않지만, 토속적 불교의식과 미륵신앙이 융합된 민간신앙의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는 동자복 ㆍ 서자복을 재현해 놓았다.

하원동 탐라왕자묘 (재현)

하원동 탐라왕자묘 (재현)

서귀포시 하원동 '방애오름' 북쪽 '여가밭'이라 불리는 곳에 '왕자묘'라 전하는 무덤 3기가 있다. 무덤의 형태는 목관을 매장하고 방형의 곽을 짜서 봉토가 흘러내리지 않게 만든 방묘(方墓)다. 3기의 무덤은 시기적인 차이를 두고 조성되었으며 맨 위에 위치한 3호 무덤이 가장 먼저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1호와 3호는 잘 다듬은 판석을 세워 곽형태로 짜서 만들었으며 2호는 다듬지 않은 편편한 석재를 여러 단 쌓아 곽을 만들었다. 각 무덤의 바깥으로는 묘역을 표시하는 사각의 넓은 담장이 돌려져 있다. (제주도기념물 제54호)

항파두리 살 맞은 돌과 돌쩌귀 (재현)

항파두리 살 맞은 돌과 돌쩌귀 (재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있는 살(화살) 맞은 돌은 삼별초 군사들이 훈련할 때 과녁으로 사용했다는 돌이다. 항파두리성 남문에서 약 1km 떨어진 극락봉에 삼별초군 훈련장이 있었으며 극락봉 정상에서 이 돌을 과녁으로 하여 활쏘기 연습을 하였다고 한다. 이 돌에는 그 옛날 화살이 꽂혔던 흔적이라고 전하는 아이 주먹만한 구멍 몇 개가 뚫려 있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돌에 화살촉이 꽂혀있었다고 한다. 돌쩌귀는 삼별초 항쟁 당시 김통정 장군이 항파두리성을 쌓고 동ㆍ서ㆍ남ㆍ북 4대문을 만들 때 대문의 기둥을 고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항몽유적지 내에는 항파두리성 주변에 흩어져 있던 돌쩌귀를 모아 보존하고 있다.

수정사지 다층석탑 (재현)

수정사지 다층석탑 (재현)

수정사는 법화사, 원당사와 함께 고려시대 제주도의 3대 사찰로 알려져 있다. 수정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으나, 조선시대 초기까지 노비 130명을 거느린 비보사찰이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전시된 다층석탑은 수정사지에서 출토된 23장의 점판암제 탑재료를 기본으로, 현존하는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점판암제 석탑 일명 청석탑에 근거하여 추정 복원한 것이다. 1층 몸돌 정면에 붙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판암제 판석에는 음각으로 문을 새기고 좌우에 문을 지키는 수문신장의 역할을 하는 인왕상을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오른쪽의 인왕상은 연꽃을 밟고 있으며 위로 치켜든 한쪽 손에 불꽃이 표현되었고 허리춤의 손에는 칼을 쥐고 있는 형상다. 왼쪽의 인왕상은 일부 훼손되었으나 손에 긴 칼을 들고 있는 점이 약간 다를 뿐 거의 동일한 형태로 표현돼 있다. 수정사지 다층석탑에 새겨진 인왕상은 고려시대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수정사지 대형맷돌과 주춧돌

수정사지 대형맷돌과 주춧돌

수정사지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대형맷돌과 주춧돌이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맷돌은 지름 74cm, 높이 40cm로 일반 민가에서 사용했던 맷돌에 비해 2배 정도 큰 크기. 한 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기 위한 곳에서 사용됐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춧돌은 부정형의 현무암을 이용하여 기둥자리를 볼록하게 다듬어 만들었다. 왼쪽의 주춧돌은 길이 방향으로 하방(하방석 또는 하방벽)이 얹히는 고맥이가 표현되어 있다. 주춧돌의 크기나 다듬은 솜씨로 보면 당시 수정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동자복과 서자복 (재현)

동자복과 서자복 (재현)

동자복과 서자복은 옛 제주성 바깥 동쪽과 서쪽에 성안을 지키는 듯 세워져 있었다. 구전으로는 '복신미륵ㆍ자복ㆍ자복미륵ㆍ미륵ㆍ큰어른' 등으로 불려져 왔다. 미륵불은 득남, 해상안전, 풍어 등을 기원하는 민간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한 집안의 조상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즉 복신미륵으로 전하는 동자복과 서자복은 제주도의 미륵신앙을 나타내고 제주목의 수호신적 기능을 지녔다고 추정된다. 동자복과 서자복의 제작시기는 확실치 않다. 동자복은 높이 356cm로 규모가 크며 표정 역시 근엄한 느낌이 강하다. 서자복은 높이 273cm이며 하반신 일부를 생략한 형태이다. 두 미륵불은 제주산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졌고 모두 패랭이와 비슷한 모양의 벙거지를 쓴 입상이다. 얼굴은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도포 같은 것을 입고 있는데 문양 표현이 없는 등 토속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
(제주도민속자료 제1호)

존자암지 부도 (복제)

존자암지 부도 (복제)

제주도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종모양의 부도(사리탑)이다. 팔각형 받침돌 위에 원형의 고임돌을 놓고 종모양의 몸돌과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장식한 지붕돌을 얹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지붕돌과 보주를 하나의 돌로 조성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지붕돌의 윗면은 둥글게 만들어 제주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하고, 그 위에 얹힌 보주에서는 세련된 조각 솜씨가 엿보입니다.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7호) (복제)

원당사지 오층석탑 (복제)

원당사지 오층석탑 (복제)

원(元) 순제의 제2황비였던 기황후의 간청에 의하여 제주시 삼양동 원당봉 자락에 원당사와 함께 불탑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찰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은 제주도내의 유일한 불탑인 오층석탑만 남아있습니다. 각 층의 지붕돌과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조립되었습니다. 각 층의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1층 몸돌의 정면에만 불상을 모셔두는 방인 감실이 마련되었습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처마끝처럼 살짝 올려 마무리하였으며 끝에 풍탁이 달려 있었던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받침돌에는 앞면과 좌ㆍ우면에 안상을 새겨 장식하였습니다. 원당사지 오층석탑은 받침돌이나 지붕돌의 모양 등으로 볼 때 지방색이 강했던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물 제1187호) (복제)

 

담당부서
돌문화공원관리소 공원운영과
담당자
정창훈
연락처
064-710-7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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