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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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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돌문화 사진

조선시대의 돌문화

조선시대로 들어와 중앙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제주도 전체에는 3성 9진 25봉수 38연대의 독특한 방어체제가 정비된다. 또한 중산간 지대의 긴 돌담인 잣성을 쌓아 방목 중인 우마들로부터 농경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돌문화에서는 제주성, 정의성, 대정성에 세워져 있었던 제주 돌문화의 상징인 돌하르방을 비롯하여, 삼사석, 조천석, 회천동 석불, 비석거리, 방사탑 등을 재현해 놓았다.

돌하르방(복제)

돌하르방(복제)

돌하르방이란 말은 '돌 할아버지'라는 뜻의 제주어로, 원래는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옹중석 등으로 불렸다. 돌하르방은 성문 입구에 서로 마주보게 배치되어 마을의 평안과 융성을 기원하는 수호신적 기능, 벅수나 장승과 같이 사악한 것을 막아 주는 주술ㆍ종교적 기능, 성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구분이나 성문 출입을 제한하는 위치 표시 및 금표적 기능 등을 지닌다.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년) 김몽규 목사가 세웠다고 한다. 대정현과 정의현에는 동ㆍ서ㆍ남문 밖에 각각 4기씩 12기를 세웠으며 제주 목에는23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동ㆍ서ㆍ남문에 각각 8기씩 세웠으나 1기는 없어져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제주도에는 45기의 돌하르방이 남아있고 2기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옮겨져 있습니다. (제주도민속자료 제2호)

삼사석(재현)

삼사석(재현)

탐라의 고을나ㆍ양을나ㆍ부을나 삼신인이 벽랑국의 세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한 뒤 각자 살 곳을 정하기 위해 활을 쏘았다. 당시 화살이 꽂혔던 돌을 삼사석이라 한다. 조선 영조 8년(1732) 김정 목사가 삼사석 유적을 돌아보고 삼사석비를 세웠으며 순조 13년(1813, 또는 영조 11년인 1735) 제주 유림인 양종창이 화살 맞은 돌을 모아 석실을 만들어 보관하였다. 현재 화북동에 있는 삼사석비는 1930년에 삼사석을 보관한 석실을 고쳐 세우면서 다시 만들어졌다. (제주도기념물 제4호)

조천석(재현)

조천석(재현)

옛날 산지천이 자주 범람하여 성안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이에 물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알았던 관리가 산지천에 조천석을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로는 범람하는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현무암으로 제작된 조천석은 원래 산지천 광제교 옆 자연암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현재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가슴에는 '조천(朝天)' 뒷면에는 '경자춘우산서(庚子春牛山書)'라고 음각되어 있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의 조천석은 남도병마절도사로 재임 중 제주에 도임한 김영수 겸방어사(兼防禦使)가 1780년(경자년)에 세운 것이다.

회천동 석불(재현)

회천동 석불(재현)

제주시 회천동 화천사 뒷뜰에는 높이 70~80cm 정도의 석불 5기가 모셔져 있다. 이 석불은 화천사가 창건되기 전부터 마을 미륵으로 모셔졌으며,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득남의 효험이 있다하여 마을 사람들이 기자불공(祈子佛供)을 올렸던 곳이라고 한다. 자연석에 표현된 석불의 얼굴 형태는 모두 다르면서 자연스런 형상을 띠고 있다.

비석거리(재현)

비석거리(재현)

설촌 연대가 오랜 마을에는 중심지나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마을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의 공적이나 관리들의 치적, 열부나 열녀, 효자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이를 '비석거리'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제주성과 가까운 화북포와 조천포는 내륙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포구였으며, 제주목사나 판관 등 지방 관리들이 이곳을 거쳐 부임 또는 이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에서는 이들의 임기동안에 베푼 고마움과 석별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비석들을 세워 놓았다. 보통 '선정비(善政碑)'라 부르지만 '불망비(不忘碑)', '거사비(去思碑)', '청덕비(淸德碑)'라고 새겨진 것도 있다.

방사탑(재현)

방사탑(재현)

제주도의 자연마을에는 잡석을 이용하여 원뿔형, 사다리꼴형 등의 탑을 쌓고, 그 위에는 '새 모양의 돌', '사람 형태의 석상', '나무 새가 있는 장대' 등을 세워 놓은 돌탑이 있다. 이 돌탑은 답(탑, 塔)ㆍ거욱ㆍ액답ㆍ가마귀동산ㆍ하르방ㆍ걱대 등으로 불린다. 방사탑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돌탑은 마을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허한 곳에 액운이 들어온다는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마을의 인명, 가축, 재산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이 직접 쌓아 놓은 것이다. 그 규모나 모양은 마을마다 다양하다. (제주도민속자료 제8호)

담당부서
돌문화공원관리소   공원운영과
담당자
김태준
연락처
064-710-7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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