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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미도원을 칭찬
작성일 2020-11-11 05:08:23 조회 420 회
작성자 황용식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군대에 있었는데 전역하는날인가 탈옥하는 영화를 본것 같았다
그게 장클로드 반담 영화였고 실제 그런 영화가 깨고 나서도 있는줄 알았다
그래서 검색을 해볼까 하다가 아닐것 같아서 그만뒀다
전에 제주도 화순에 있는 성박물관에서 여고생 보경비제이와 같이 나선 아재가
이거 장클로드반담 잡지라고 하자 그게 누구냐면서
세대차이를 느낄수 있기도 했다
그 내용은 지금 생각 안나지만
하여간 꿈속에선 겨울이었고 영화내용은 시골의 풍경이었는데
아주 명작이었고 깨고나서도 워낙 생생이 기억나서
나중에 적을수 있을줄 알았지만 역시나
바로 적지 않고 다시 자버리는 바람에 기억이 안난다

십분뒤에 다시 잠이 든것 같은데
그리고 다시 또 꿈을 꾸게 되었는데 이번엔 김봉준 치과에 가더라고
안의 구조는 실제와 다르던데 간호사와 의사는 같은 사람 같더라고
싸이클 자전거 타고 가는길에 공사판에서 벽돌을 3장 주웠는데
그만 신분증을 안들고 간게 걸렸는데
내가 여자용 지갑을 가지고 있더라고
카운터에서 간호사보고 그얘길 했는데 앞에 왠 사람들이 많던데
손에 들고 있는게 검사 합격증이더라고
내보고 주유소카드와 뭐 다른 결제 수단이 생겼다고 그러던데
과거에는 없던 기능이었다고 했다
예전에 충치를 떼웠던 이빨이 아닌 잇몸이 너덜해져 있었고
자전거를 어떻게 주차할까 고민하다가 보니 치과 왼쪽이 뚫려 있엇고
공사판이더라고 그거 나뚜고 자물쇠 를 채울까 말까 고민했다
군대후배 원형이가 있길래 내 지갑을 노리는것 같아서
간호사가 나둔자리에서 뺴내서 다시 내 앞에 두었고
의사가 입을 다물어 보세여 할떄 꿈에서 깼다

여러분들은 간혹 등골이 오싹해진다거나
머리 카락이 쭈뼛 하게 서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신적이 없으십니까

그것은 아마도 당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영혼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소개할 사연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스테리한 존재에 대한 교감의 얘기입니다
삼년동안의 특별한 경험 그속으로 가보실까여

깊이 잠들어있을 새벽
그 때 만약에 누군가 여러분의 집을 찾아온다고 생각을 해보십쇼
설령 그가 여려분과 친한 친구일지라도
그렇게 한밤중에 불쑥 찾아온다면 당황스럽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전혀 낯선 존재라면 어떨까여

우선은 밤손님으로 생각할수 있을겁니다
물건을 훔치는 도둑 말이져
오늘의 주인공은 그가 훔치려는것이 돈이나 물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져

언제부터 나타났던 이상한 일들
현실에서 혹은 꿈속에서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무서운 일들로 인해 말못할 얘기를 당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누가 대체 외 그토록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왔을까여

이 모든것이 인과응보라고 얘기하는 그는
방탕하고 무절제 했던 젊은 시절에
아무 죄의식없이 저질렀던 과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슬픈 메아리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에선 60대 남성이 산책중 커다란 악어에게 습격당했지만
재빨리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니 풀려놨다던데
그건 운이 좋았고
그 이후 흉기를 소지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고
총이 있는 나라라고해서 방심해선 안되고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떡공장에선 유통기한이 일년반이나 지난걸 보관하고 있질 않나
무슨 골프장 이용료가 올랐다고 징징거리며 국민청원하질 않나
이용해본 사람 후기글 보면 달걀하나에 천원 오뎅탕 삼만원씩 한다던데
국민공감대를 전혀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에 홍카콜라도 소송걸린와중에 골프나 치다가 여론이 안좋더니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지 세우러때 그런것 같고
엄숙해야할떄 그러고 있으니
또 여자연예인도 골프장이 갑질한다고 트윗질했다고 여론에 역관광당했고
코로나 사태에 그런거 하라고 지원금 주고 하진 않았을텐데

조조에게는 다른 부하들에게 그러하듯
능력이 뛰어난 장수들을 기용해
자신의 대업을 다지는데 활용했다

그래서 관우도 포섭하였고
훈날 안량 문추를 베게하여
관도의 위태로움을 다스릴수 있었다

관우에게는 세가지 죽을 죄가 있었다

ㅁ그 첫번쨰는 군주를 잘못 따른죄 인데

유비에게 오만군사를 주어 원술을 토벌하게 하니
전쟁터에서야 먼말인든 못하리

그래서 동부서 강남헌 경장이
사회생활하면 다 똑같이 뭘 나이 따지냐고 그랬지만
정작 교도소 가는날 형사3팀에서 반장은 내게 반말하였다는게 그러하다

그리고 조조의 부하인 주령과 노소를 딸려보내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보나 이미 군권이 유비에게
있는지라 그의 명을 따를수 밖에 없엇고

곽가 정욱등의 조언에 따라 방금 내린영을
거절한 유비를 그래도 자기딴엔 합리화하며
장군이 밖에 있을때는 천자의 명도 거스를수 있고
이미 내가 그를 보내놓고 다시 거두어서야 라며
짐찟 체면을 내세워보나 불안한 마음은 어쩔수 없었다

급히 허저를 보내봤으나 군사가 적고
말빨이 딸려서 허저스스로도 내게 힘으로 데려오라면
어찌 군사를 겨우 이것밖에는 안주었겠는가 라며
돌아가게 되는데

훗날 사마의가 황제인 조예를 맞을때 그렇게
군사로 진을 펼친가운데 맞다보니 반역의 기미가 있다하여
그를 좌천 시킨게 그러했는데

이렇다할 증거도 없이 심증만 가지고
그를 처벌하지 않다보니 결국 옥좌를 내놓게 되었는데
김정은은 그걸 알고 고모부를 처형한 것이였다
조조도 그때 유비를 진작에 처단했다면 역사는
그리 꼬이지 않았을터
결국 죄없는 원소의 아들들과 유표의 아들에게는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게 된다

ㅁ두번째 죄는 공과 사가 분명하다

비록 안량 문추를 죽여 한수정훈의 벼슬을 타게되나
조조에게 말도 없이 줄행랑 하면서
그가 내린것을 하나도 받지 아니하고
통행증도 없이 가다보니 죄없는 관의 장수들을 베게 되었는데

연의처럼 그런 아름다운 동행은 없었을터
조조는 군대를 보내 관우를 추격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전사했을 터

마치 시장이 삼선했다고 해서
사년간 여비서를 농락한일이 어찌 자유로울수 있겠는가
그건 한국인들은 간통법이 사라지기 이전부터
물란한 모텔생활을 많이 했고
그증거로 엠비에게도 도덕보다는 경제노선을 택한것이였다

하지만 엠비는 우리 두부부살집만
이런 가식적인 발언으로
마치 소수자의 삶을 챙기겠다
표현의 자유 비키니 입고 청와대로 입성
이리 까불어 대보지만
정작 할줄아는건 세금으로 삽질하여 강바닥에 버리면서
자연의 색으로 포장하며 정치하려는것일뿐

동네주민형에게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해서
뭐이 18ㄴㅇ대처했고
뒷날도 사과하지 않고 고함지르지 마라 라고 하질 않나
다시 욕한것은 진술서에 작성하지 아니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과거에도 교사도 못하고 짤리고 기간제도 못채우다보니
다른 학교도 갈수 가 없었던 것이였다

그렇게 알바도 해본적 없이 그거 깡패같은 문신족들에게
나도 너네랑 같은 성적인 정신병이야 페미니스트야
트젠이다 강조하며 그들의 몰표를 흡수해보려 했으나
정작 동네주민형에게 누명쒸워보니 하나님도 노해
벌을 내려 과거 그자의 언행이 담긴 트윗을 공개해
사퇴를 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한다

여전히 그의 방구석에는 자살하다 실패한
여자나 위로하는 척하며
이단 교주적인 행보를 보이던데
사퇴와 더불어 이제는 잘 보이지 않더라

ㅁ 세번째 죄는 먹을거 다 먹고 내뺀것이다

유비도 그러했듯 자신이 여포에게 쫓겨나
갈곳업는 철새신분이 되자 조조의 밥을 먹으면서도
건방지게 고마워 하지도 않고 반역의 심뽀를 가졌는데

그래서 조조의 오만군사를 거져 먹었고
심복인 차주를 죽였으며
추가로온 유대와 왕충은 죽이지 않았으나
그 군사역시도 거뒀으며
만일 조조가 유비에게 집착하다가 병력손실만 입고
퇴각했다면 원소에게 그대로 무너졌겠지

조조에게는 중원땅의 절반인 원래 서주가 필요했고
그게 없이는 원소에게 대항할 발판이 없는거지
과거에도 서주에 애비복수전을 하러 왔다가
여포가 근거지인 연주를 치는 바람에 퇴각해야 했는데

그떄 만일 그대로 서주로 진군했다가
연주를 잃어버리면 그야말로 여포꼴이 나서
유비에게 의탁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마치 남의집에서 18년이상 공짜로 살아놓고 대문손잡이 하나 안달아주고
상수도는 터져서 고쳐주지도 않고 나몰라라 나가고
내땅이 어디서 어디까진인줄도 안가르쳐주며 십오년가까이
세금물리게 하면서도 입방미터도 모르는기 라질 않나

내게 나무하나 자르는거 가르쳐준적 없이 그리 나가놓고
주워온 우산이나 타박하는 수준이었다
삼춘은 툭하면 방얹어 나가 살거라면서
내게뿐 아니라 숙모에게도 그리 말하고 다닌걸 알게 되었고

삼춘이나 숙모역시도 조카집에는 한푼도 안들일려 하면서도
남의집에선 돈 잘도 갖다 바치더라고
경허니깐 못사는거지
자기 아들이나 걱정하는 말 내뱉고 있고

사람이 하나를 보면 열가지를 미리 알수 있는법
과거의 실망의 연속인데 현재도 달라지지 않더라고
그렇게 바뀌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그런 낮은 확률에 베팅하지 않는게 좋다

상대방 역시도 자기의 잘못보다는 잘해준것밖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므로
게다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치매기의 기억력에
아무리 호소해바야 그때뿐이다

마치 군대 영선반에서 작업하던 고참이
매일 내게 담배달라다가 내 가정형편을 우연히 듣게되자
동정심을 잠시 보였으나 뒷날도 다시 담배달라고 하더라고

자시의 기분과 쾌락을 포기해가면서
남을 돕는경우는 드물지
난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본적도 업고
만일 그래 보였다면 그자는 사기꾼이다
그래서 전에 교도소 가기전에도 그 목사의 행동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믿을수는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관우도 조조 도 아니며
채모나 채양 정도보다도 못한 소인배에 불과했다고 전해진다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
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다
기사 양반 소피나 좀 보고 가세
더러는 장바구니를 두고 내린 할머니가
손주 놈 같은 기사의 눈치를 살피고
억새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싱글벙글쑈 김혜영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옆구리를 슬쩍슬쩍 간질이는 시골 버스
멈춘 자리가 곧 휴게소다

그러니, 한나절 내내 기다리던 버스가
그냥 지나쳐 간다 하더라도
먼지 폴폴 날리며 한참을 지나쳤다 투덜 투덜
다시 후진해 온다 하더라도
정류소 팻말도 없이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팔을 들어 올린 나여, 너무 불평을 하진 말자
가지를 번쩍 들어 올린 포플러와 내가
버스 기사의 노곤한 눈에는 잠시나마
한 풍경으로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니

제갈량에게 패한 맹획은 최후의 승부로 온돌골의
등갑군에게 의지하게 되었는데
나무껍질을 기름과 버무러 잘말려서
화살도 뚤지 못하고 물에도 잘뜨나
그렇다면 반대로 불에는 약하다고 판단해
제갈량은 화공으로 모두 태워죽이게되고
덕분에 죄책감에 수명도 단축된다

마속이나 관우의 군령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속을 베었으나 그의 제자이며
마속의 실패는 곧 그의 실패이기도 했다
소기업일때 관우는 용서했어도
중견기업일때 마속은 그러지 못했다
부하들이 대거 번명을 해주고 황제의 서신이 도착해도
그의 결심은 꺽지 못했다

위연의 과거 때문에 그를 가장 많이 쓰면서도
끝내 밑지 않고 신참 마속을 기용하다
자멸하게 된 제갈량
마지막까지도 위연의 장안침공을 막는 유서를 양의에게 내렸지

출신성분을 지나지게 다졌고
공지나 강유는 용서해도 이렇다할 공이 없고
옹고집과 외고집 원리원칙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모래시계보면 삼청교관이 더빙목소리로 나오는데
그전에도 성인비됴에도 자주 나오더라고
특별히 연기를 잘하는것도 아니고
아마 백으로 들어간 케이스 같더라고
아니면 절대 설명이 안되지
시청률이 가장놓은 드라마에서도 그런비리가 있다 이거지

예전에 농협 앞에 가다가 어떤 오육십대 아줌마가
이천원만 내바라 이러면서 빵6개들은거 보이더라고
아마 마트가서 환불하려다 안되니 그런것 같던데
침착하게 그런 사연도 얘기하지 않으면서

다짜고자 돈부터 내놔 이러고 있으니 그냥 가다 뒤로 어떻게
생겼는지 다시 자세히 보려니
뭘 꼬라보노 이러면서 완전 남자같이 말하더라고
그래서 안보고 가버렸지

건입동에서 정치하려는 애도 딱 그런식이지
그렇게 집도 모르는 상태의 애들은 신고도 못하고
그러니깐 길에서 만나서 헤어지는 그런 사이의 정치를 한다 이거지
그런 자연의 색 포장하는 애한테는 그런사람말 가서 말걸고 공략들어라 이거지
경허니 당선은 커녕 사퇴하는거지

예전의 영화들 보면 코치나 체육관에서 담배피는게
외국영화에도 발레하는곳에서 여자코치가 그러고 잇더라고
그러면서 무슨 스포츠를 사랑한다고 하고 있고
승부조작이나 하는게 다였고

여자도 담배피고 사람의 욕구는 다 있기마련
동네에서 뒤에오던 처자가 앞서가던 날 제끼고 가면서
뒤돌아 보긴 해도 사람많은 사라봉인 탑동에선
그런지도 않더라고
세상은 넓은것 같애도 좁다 이거지

모두 맛있지만 주인공이라면 어느정도 제한이 있어야해
묵직한 중량감 있는 그런 맛
지금까지의 초밥맛을 누를수 있는 강렬함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격이 필요해지는 거지
계란 오보로 절임 새우
환상의 고등어
남쪽 참치의 대뱃살 백간장 즈케
이정도 쯤이 어울릴것 같아

맞아 오징어나 공미리도 맛은 있지만
너무 산뜻했어
그중에서도 역시 대뱃살 정도라면
격에 어울리지 않을까

너무 평범한 결론이겠지만
요즘 초밥이 봄을 탄건 참치 덕분이라는 걸
무시하지 못하지
좋았어 주인공 초밥은 남쪽 참치 대뱃살로 하는거야
얼레 표정이 그게 아니다 라는것 같은데

대뱃살 맛도 좋지만
왠지 뭔가 하나 빠진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일인분의 초밥을 만든다는것은
제 모든걸 발휘한다는 것

그렇다면 맛뿐만이 아닌
나만의 특징을 부여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나의 초밥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그러기엔 뭔가가 부족한 듯 해요

일리가 잇어
초밥을 쥔다는건 자기 마음을 쥐는것과 같은거야
작은 초밥이지만 요리사의 인격까지 담겨있는 셈이지
재료준비 초밥의 크기 이모두가
요리사의 인생을 거짓없이 표현하는 세상인거지

끝까지 네 자신을 표현해 봐라
그 모자란 것을 끝까지 찾아보는거야
그 시련을 극복해야만 비로서 멋진 초밥요리사로 인정받을 테니까

그것이 성공했을때
비로서 당당하게 말할테다
이것이 나의 초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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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8 23
극도로 무덥더날 서울은 충격에 휩쌓인다
군복을 입은 신원을 알수 없는 무장괴한들이
인천쪽에서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진입한것이다

청화대로 향하던 이들은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슈류탄으로 자폭하며 허무하고 끔직하게 최후를 마친다

정래혁 국방장관이 사건발표 브리핑을 했으며
인천 앞바다 실미도의 공군관리하에
수용된 특수범 23명의 죄수들은

오후3시30분 무장괴한들을 공비라고 발표했던 군은
6 시 30분경 죄수들이라고 말을 바꾸어 발표했다
이들은 누구인가

의문을 가질 기회도 없이 생존자 4명에게는
사형이 집행되고 난동사건의 실체와
실미도 특수부대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죽기전 유언이 기사에 실렸다
문 ~ 난동동기는 ?

답 ~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다 살기가 싫다
답 ~ 죽으려 했는데 우리 들의 이번 난동의 동기등에 대해
지금 말할순 없으나 후에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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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대창설 당시 공군 참모총장 장지량
~ 특공대란 것은 이쪽에서 목표하는 대로 잡아오던지 깨던지 하는거 아니요
그들은 김일성을 목표로 하는 특공대다
죽어서도 머리를 붙잡아 가지고 새롭게 하자

서슴치 않고 박정희 목베러 왔다 이랬거든
박정희 목을 베어
박정희라는 사람은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인데
그사람이 잘하고 못하고 우리나라 대통령이야 전 국민의
그사람 목을 베러와
그소리에 격분을 한거야 이놈
그럼 우리도 김일성 목베어야 할것 아냐
뭐 그렇게 이부대가 시작이 된거야

공군은 비행기로 부대를 갖다 던질수도 있고
북한침투 방법이 있다 이거야
그러니 할수없이 공군이 붙잡힌거야
그것까지 내가 거부할수는 없었다
그래서 좋아 훈련은 우리가 하겠다
대신 언제 보내느냐 어떻게 보내느냐는
중정 너희가 해라 결정은 너희가 해라

김형욱은 왜 그부대를 삼년이나 내버려두었나
북한에 보내든지 안보내면 해산해서 고향으로 보내야지
그게 보통 훈련이 아니에여
굉장한 훈련이라구 사람인데
그지옥같은 훈련을 삼년이나 계속한다면 그거 견디겠나

군에서 어떡하란 말이야
모든걸 중정이 통제하는데
인원 후방 다 자기들이 장악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판인데 예산도 마찬가지
참모총장이 안된다 보내라 할수없는 문제라고
국방장관도 마찬가지

이왕에 죽을바에 그들이 막 들고 일어난거야
누구를 죽이러 온건 아니래
북에 보내든지 우리를 버리든지 해결해 달라고 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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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당시 공군 참모총장 김두만
~ 깡패들 그런거를 뽑았다고 그래요
특공대는 범법자로 구성되었다
이건 미친짓이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중책을 말이야

내가 보고로 받기로는 음
전부 범법자라 그럽디다 범죄자
뒷골목에서 여하튼 뭐 폭력을 아댈로한 그 깡패들
그런거를 뽑았다고 그래요

이제 종량이 되면 인수인계를 하니깐
그때 이제 내가 인수를 한거래 그 전임자 한테서
인수를 해가지고 실미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차장땐 알수가 없어요

어 보니깐 분위기가 안좋다 이거에여
가보니깐 훈련원들이 하도 오래 갇혀있어서
벌써 삼년이 다되가는데 약속이행을 안해준다 이겁니다
그 네 장관한테 그랬어여 이건 도데체 말이 안된다 그랬어
이건 이런 조직을 가지고 이북에 다 이건 말이 안된다
이계획은 빨리 정리해야된다

대단한 권력으로 봐서는 장관도 그걸 할수 없는 존재 아니에여
정보부니깐 더욱이나 장관이 좀 난처했죠
그때만 해도 군대 에서 쭉 자랏기 떄문에
위계질서를 생활에너지를 정보부에 직접 얘길안했다고여
지금 가만생각해보니깐 아야 그냥 그때 정보부장한테
직접내가 얘길했었어야 했는데 후회가 있긴해요

통신이 들어왔을겁니다 뭐 난 잘 모르지만은
그건 들어가게 되 있어요 거의 조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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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특수부대 기간병 이준영
~ 대신에 국가에 충성을 하고 그 목적달성을 했을때에는
제2의 인생을 국가에서 다시 살수 있게끔 배려했던건데
목적달성 후 보상을 약속했었다

북파목적으로 창설됬다는 실미도 중앙유격사령부 684특공교육대
실종되버린 이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밝혀질수 없는것인가

실미도 특수부대 창설은 1968 1 21 김신조부대 청와대 습격
북한무장공비 31명이 서울에 침투했던 일이일 사태에서 비롯된다
공비 29명이 사살되고 1명이 자폭 김신조가 생포됬으나
우리측도 104명이 인명피해를 낸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 과연 김정일이 13일의 금요일을 자주본다더니
자극적인것만 좋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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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자 김신조 인터뷰
~ 지금 우리 31명의 임무는 박정희 모가지 뗄 임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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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516혁명 공약에서 부터 반공의 제일의 구실로 삼아
체제를 강화하겠노라던 박정희 의지는 더욱 강해졌고
북한의 대남 전략 역시 도발과 만행으로 이어져
당시 사회는 피의 대응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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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 궐기 대회 해설
이들은 더 못참겠다고 성난 시민들입니다
분노한 시민들의 노고는 천지를 뒤흔들고
증오와 비판은 김일성의 화형식까지 집행했습니다
=============================================================
반도 제일을 내세운 박대통령은 향토예비군 창설 1968 4 1
일이일 사태를 계기로
북한의 후방침투에 대비한
이백만명의 향토예비군을 창설했고
학생들에게도 교련 교육을 도입했다

제비꽃 작전이라는 티비아이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실미도 특수부대 창설도 이때 이같은 시대의 산물인 셈이다

작전이 성공하면 죄를 사해준다는 조건으로
창설된 실미도 특수부대에는
무기수 사형수 뿐만 아니라 거리회사 부랑아든
사회밑바닥에서 생활하던 민간인도 일부 포함되있었다

그리고 이계획은 극비리에 진행시켜 나가게 된다
박정희는 이 작전계획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재가를 내려주었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권력의 핵심이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중앙정보부대붉국장 이철희에의해 만들어 졌고
부대 관리와 훈련은 공군정보부대장이 맡았다

이렇게 비밀부대로써 모든 조건을 갖춘 실미도
특수부대 31명은 결국 죽게되고
흔적도 이름도 완벽하게 증발한채 30년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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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실미도 저자 백동호
숨겨진 사건 실미도에 관한 얘기를 다시 세상에 들고나온사람
그는 99년 여름에 출간한 소설실미도를 통해 허무하고 원통하게 죽어간
훈련병들의 영혼을 발견하고 싶었다고 한다
~ 마치 대동여지도 김정호 같군

배신감 입니다
그들은 삼년사개월동안 하루에도 몇번씩 체포하면 자폭한다고 하는 구호를 외쳤고
이 한목숨 어자피 이렇게 된거
김일성을 암살하는데 목숨을 바쳐서
조국통일을 이루고자 했는데
끝내는 이들을 전부 보완유지를 위해서 죽여버리자는 안이 나왔었고
그러한 안까지 알게된 이들이
죽을떈 죽더래도 그 배신감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따져야 겠다는
그 분노 배신감 때문에 집단행동을 한것입니다
~ 실제 원더키디 만화바도 여왕에게 충신여가 버려지니 여왕을공격하더라고

만들어놓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이
버려진채 그들이 죽음을 선택할수 밖에 없는
청와대를 점령해서 박대통령과 담판을 할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으로 만들어간것은 전적으로 국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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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비밀이라 하여 당국으로 부터 아무기록도 얻어내지 못해
훈련병들은 죽었지만 그들을 훈련시켰던 기간병들 중에는 생존자가 있었다
전국각지에 흩어져 삶을 이어가고 있는 6명의 생존기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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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당시 생존기간병 제주시 북제주군 택시기사 황석종
~ 장백산을 줄기줄기 비어린 자국 ~ 실미도에서 부르던 북한노래
할수없이 어머님이 절 데리고 바다에 와가지고
무당을 데려 와가지고 굿하고 그랬었죠
꼭 속에서만 간직할려니깐 더 스트레스 받고
정신적으로 뭐 상당히 그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죠
제가 뭐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깐 마음도 편안하고

그러니깐 나의 신조 해골 바가지를
그 연병장 한가운대 따악 걸어놓고
해골바가지에다 뼈 2개 이렇게 엑스자로 해가지고
나의신조라고 딱 써놓은게 그게 젤 섬찟하게 마음에 저어 눈에 보였었죠
개 그게 저녁에 보초 설때면은 반짝반짝 윤이 나거든여
비가 부슬부슬 오고 그럴때에는
게 섬광이라고 그런가여 그게 짜악 나면은 뭐 섬찟섬찟하죠
아무리 저 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거기와서 그걸 보면은
풀이 촤악 죽고 그래요

뭐 군대생활하면서 짠밥이라고 그러는데
똑같이 먹고 똑같이 생활했습니다
근데 단지 그들은 비교육자고
우리는 뭐 기간요원으로써
아무래도 비교육자는 뭐 춥고 배고프고
그러지 않앗습니까 졸리고

잠자다가 새벽에 총소리가 막 요란하게 들려가지고
이렇게 일어나려고 하니깐
내무반안으로 비교육자가 들어와 가지고 총을 난사하는거에요
그러니깐 아 육감이 이게 올게 왔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어가지고

개네들이 명사수이기 때문에
머리아니면 심장부분을 쏠거 같애가지고
오른팔로 매트리스 밑으로 들어가지고 머리모양을 하고
납작하게 엎드려 가지고 있어가지고 오른팔과 등에 그 총알이 스쳐가지고
제가 거기서 생존을 했는데요

군사재판전에 살아남은 개네들도 조사받는 네사람이 있었으니깐
개네들도 좀 만나보고 개네들이 악수를 청해요
그냥 손박닥이 그냥 빰으로 올라갔죠
우리 동기들을 죽이니깐 너무 꾀심해가지고
악수를 청하는걸 손바닥으로 빰을 때리고 그랬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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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당시 생존기간병 김태수
개들 훈련하고 내무반 앞에서 총을 맞고 죽었는데
얼굴에만 30발 실탄이 다 들어가 있어여

진짜 어디에서 목표물이 일어나던지 간에
다 백프로 명중할수 있는정도로 아마 훈련을 시킨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실책에도 보면은
개네들 자신감이 북에 언제 넘겨보내도 살아돌아올수 있다는
자신감들이 다 있을정도 였습니다
제가 처음들어가가지고 개네들과 대화를 이렇게 해보면

전에 그 작전 명령이 떨어져가지고 xx까지는 갓었다가
작전이 취소되는 바람에 한번 왔었다구 그러더라구여
그거 한번 외에는 개네들한테 아마 주어질 기회가 전혀 없었던것 같아요

대장명령으로 개네들하고 같이 그 돌아요
그때는 항상 실탄까지 장전을 하고서 근무를 스기 떄문에
그리고 훈련병하고 캄캄한 밤중에 섬주변을 한바쿠 돌적으에는
어떻게 보면 좀 개네들이 두렵습니다
외부침입 세력 보다는 오히려 사실이 개네들이 두려울때가 많아요

훈련병들이 총을 들어가지고 내무반 기간병들로
몰려가면서 총을 쏘더라구여
그래서 항상 그있을때 불안하게 생각했던 사고
그게 바로 현실로 다가왔구나

화장실에서 일보고 있는데 박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나가지고 화장실 문을 열어봤더니
훈련병들의 난동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오질 못하고 문을 열어둔 상태로 그대로 있다가
화장실 밑으로 내려갓습니다
한 이틀전에 화장실을 청소를 했기 때문에
들어가니깐 한 무릎밑에 정도 변이 올라오더라고여
그래서 거기서 있는동안 얘들이 사살을 전부 하는 과정이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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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시 생존 기간병 한상구
그놈들 정신분열증 이 발생되가지고
약을 먹으면 괜찮은데
약안먹으면 또 헛소리 하고 또 옛날생각하고
담배 태어야 되고 얼굴은 바짝 마르고

훈련을 나갓는데 고추밭에서 맞아가지고
이마를 때렸는데 쓰러져 가지고 총을 뺏겼답니다
그래가지고 나중에 잘해줄테니깐 부대들어가서 이야기 하지마라고
그래서 연병장에 세워놓고 피교육자들 빠다를 야구빠다를 줘서
20대씩 그냥 교육자의 지시에 때렸습니다

샅샅이 찾으면 다 죽을수 있지만은
우리하고는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아마 그리 6명이나 생존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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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시 실미도 특수부대 소대장 김방일
차라리 가슴에 묻어두고
내가 같이 땅에 묻히는게 더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여 지금까지

가서 일단 입고 들어가니깐
연병장하고 기간병 내무반앞에 또 내무반안에 들어가니깐
담요 뭐 매트리스 뒤집어 쓰고서 시체는 널려져 있고
기간병내무반 앞에 훈련병 하나가 서서 죽었더라고여

또 특수기술 이라던지 뭐 요런거 말씀드릴수 없으니다만
최고의 다랬다고 볼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실망이고 당혹하고
또 쏜 화살이 다시 돌아올수 없는건데
이게 다시 돌아온다는 애길들었을때 낙담을 했고
또 돌아오는 사람들도 굉장히 실망감이란건 말도 못했어여

부대는 전부 쑥밭이 되서
난장판이 되고
또 여기저기 시체가 늘어지고 해서
우선 제 1소대 방엘 들어갓더니
제옷하고 뭐 무기 등등을 다 가지고 나가면서
앞에 쪽찌가 하나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봤더니
짤막한 글씨로 소장님 죄송합니다 어쩔수 없었습니다
이런식의 쪽찌를 남겨 놨더라고여
그걸보곤 그땐 아무 감정이 없었었는데
지금 세월이 가면서 보니깐 참 나하고 교감이 있었구나
내가 자기들 아겨준만큼 자기도 날 생각했구나 하는
개인적인 감정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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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가슴속에 묻고 싶었던 기억
28년전 실미도에선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년이 된 기간병들이 28년만에 다시 모였다

사건이 난지 28년이 지난후에야
부대원들은 처음으로 실미도 부대를 찾아봤다
죽은자는 사라져 말이 없고
살아남은자도 상처를 품은채 침묵할수 밖에 없었던 실미도 사건
그 비극의 현장을 다시 보려는 것이다

실미도는 인천에서 남서쪽 직선거리로 20킬로 떨어진
해발 80미터 면적은 2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작은 섬이다

중앙 정보부가 북파특공대를 훈련시킬 최적의 장소로 지목한
청리도에서 훈련병과 기간병들은
청춘과 전우를 모두 잃었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수 있는 섬 실미도
~ 복받은 사람들이지 뭐 죽은사람들은

실미도 공식명칭은 이삼이오전대 이공고파견대
그러나 부대 이름도 68년 4월에 만들어 졌다고 해서
684 특공대로 불렷고
부대인원도 김신조 특공대와 같은 31명으로 구성됐다

2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더구나 사건후 군이 실미도 부대의 모든 증거를 제거했던터라
실미도 부대의 자취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북한 침투 훈련을 위해
부대원들이 위성사진을 본따 만들었다는 북한의 산악모형도
이섬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던 우물터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우물은 여전히 가득했고 수질도 아주 좋았다
~ 우리 요원들하고 훈련병들하고 한70명 쓰고도 여름에 목욕도하고
물이 말른 적이 없는데 뭘

물맛이 좋아 아주 예감이 좋았다는 부대 창설 초기
실미도 대원 모두가 사기 충천해 있었다고 한다

하루 일과는 6시 기상과 점호
6킬로 산악구보로 이어지고
적재 침투와 생존을 위한 독도법 생활법 폭파기술 호신술등을 훈련받았다

실미도 특수부대 편성은
모든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대장
직접 교육훈련을 담당하고
내무반에서 함께 기거하는 소대장과 통신병 의무병 보급병등
훈련병수와 동일한 수의 기간병이 배치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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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미도 특수부대 소대장 김이태
처음엔 모든 훈련병들이나 기간요원들이 뭐 사기가 출정했져
나라를 위해서 한번 해야 되겠다
이제까지 또 우리가 교육받고 또 내자신이 가지고 잇었던
모든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를 해보자

저희들이 명령을 받기는
어쨋든 일이일사군 부대를 능가해야한다
그래서 그 모든 기록이 일이일 사군부대가 산악행군을 뭐
만약에 사킬로를 몇분에 뛰었다 치면 으 자세히 기억은 안나는데
단 1초라도 더빨리 달리게 으 만들도록 목표로 했었습니다
근데 그게 한 3개월간 교육을 시키니깐 그렇게 됐었습니다

생리적인 욕구는 그래 그것도 큰 불만이고
혹시 사고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 생각이 들어서
그 시기는 잘 모르겠는데 그 가까운 항구에 가서
그 당초를 데리고 와서 해소를 시켜준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어선 안됩니다 사고로이것 또 뭐
수영훈련중 물에 빠져 죽는 훈련병도 있었고
자꾸 그러니깐 이래선 안됩니다
웃선 어디 처우 개선을 하던지 그래야 될거 아닙니까
그런 방안으로 훈련병들을
뭐 하사관이나 장교로 민간 시켜주자
그런 방안도 있었고 그것도 상부로 보고도 되고 그런적이 있던걸로 생각됩니다

정말 청춘을 다 바쳐서 그렇게 했는데
그게 결국 작전 실패로 돌아가서
뭐 다른 사람한테 참 뭐 잘하고 싶어서 돌아갓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는데
음 그떈 정말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뭐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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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미도 특수부대 기간병 김정현
훈련 개들은 참 잘해요
하여튼 뛰어오는것도 참 완전히 날라다니다 시피 해요
그 실미도 섬을 완전히 몇바퀴씩 돌거든여
세바쿤가 일곱바쿤가 도는데 순식간에 돕니다
피티체조 같은것도 많이 하고
단련을 하여튼 개들 잘시켯습니다
어디갓다놔도 빠지지 않는 그런 운동을 했어요 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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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가졌다는 것
인생의 한고비에서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의미있게 살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은
훈련병들에게 투지와 희망을 주었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
훈련은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가혹한 강도였지만
훈련병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실제로 훈련과정중에 7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실미도 특수부대 원들은 북한침투목적을 위한
일당백의 정신으로 버텼다 ~ 무신 감녕인가

출정명령만 기다리며 이를 악문 석달
그러나 예정되었던 68년 8월에 북방침투 계획은 취소되었다

실미도 바로 옆섬 무의도
물이 빠지면 갯벌을 따라 걸어다닐수 있는 거리인 이곳에서
대대로 고기를 잡고 밭을 일구며 살아온 무의도 주민들

실미도 특수부대의 존재를
곁에서 지켜보며 고초를 격기도 한 또하나의 증인이다
그들은 30년전의 일을 오늘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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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주민 장해섭
보통 산꼭대기에서 한번뛰면은여
내리막길에서 한 사오메터는 날으는것 같애여
왠만한것들은 붕붕 뛰어서 넘어가는것 같아여 엄청빨라여
굉장히 빨라여 우리 어렸을떄 봤는데도 야 무섭다 요정도로 느낄정도로
날렵했져 훈련받는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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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주민 김종원
그사람들 무지 작업파였어여
강것은데 보면은 물같은거 고구마 막 캐먹고
질주한단 말이여우 질밟아 버리더라고여

초등학교 옆에 관저란게 있어요
그냥 선생님들이 외지에서 오니깐
집하고 잠자는 그런데라
시골이니깐 동네 젊은이들이 가서 아마 놀고 그런모양이더라고여
근데 두놈이 들어가가 지고서 아마 모포 뒤집어 쒸우고서 겁탈한 모양이더라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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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던 삼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상부로 부터 지원과
보급은 줄어갓고 민간의 모든 조건이 배제된
실미도의 문제점들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기간병보다 연장자인 미수출신의 훈련병과
기간병사이의 갈등도 깊어갓고
하극상 사건도 발생했다

실미도 지옥훈련의 장기화는 급기야
무의도의 용유초등학교 인질사건을 불렀다
훈련병 3명이 관사에 난입 마을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마을 처녀 2명을 강간한 사건이 발생한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생명을 포기할만큼 절박했던 것일까
사건을 일으킨 훈련병 세명은 현장에서 자살을 기도
2명은 숨지고 1명은 실미도로 끌려가 죽었다

동료 7명의 목숨을 잃고도
가혹한 훈련을 견디며
작전명령만 기다리는 실미도 특수요원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한계획은 보류처분을 받았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것은 희망을 잃는것이였다
그러나 무려 3년4개월이 지나도록
상부로부터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한편 실미도 특수부대를 만든 장본인이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1969년 이후락으로 바뀌고
실미도 처리 문제는 계속 미루어진다
~ 마치 건입동에서 자연의 색으로 정치하려는애처럼 방관했네

실미도 바같의 상황은 변하고 있었다
박정희 1970년 8 15선언 을 기점으로
남북관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은 마침내 전면에 나서서
1972 7 4 남북 공동성명
평화통일안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화해분위기는 남북회담으로 이어지고
실미도 특수부대의 필요성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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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연구소 박사 이종석
중국입장에서는 소련과 중소문제에서 많은
그런 에너지를 소모했기 때문에
미국과의 화해를 원했고
미국은 또 월남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데땅뜨를 원했습니다
이런 데땅뜨가 70년대 들어와서 본격화되고
이런것들이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그동안의 군사주의 적인 그런 노선들을 일관되게 나갔던
북한의 김일성의 군사주의 노선이나
또는 실미도 부대같은것들을 만들면서
보복노선으로 나섯던 그러한 두박정희 정권의
군사주의노선 양쪽이 다 영향을 미치게 되져
여기서 또 한반도의 남북한 역시
그러한 국제 데땅뜨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제 대화노선으로 나가게 되는
그러한 계기가 마련된겁니다
~ 하지만 건입동 자연의색은 소통이란 모른다 한동네서 오직 등기뿐

결국 국가간 북한에서 그들의 군대를 갖다가
이 게릴라를 남파를 시키는것처럼
우리도 사지로 우리 국민을 죄수라고 하더라도 국민이니깐여
결국 뭐가 남느냐
결과론 적으로 약속을 지킬수도 없는것이고
또 우리국민을 갖다가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비록 범죄자라 하더래도 결국은 당시에 국가가 가졌던
어떤 야만성이라던가 그런 비인권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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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실미도 중앙유격 사령부 684특공대
마침내 파국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1971년 8월 23일 아침 6시경
훈련병들은 탈출을 위한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미숙한섬 실미도는 삽시간에 비피린내 진동하는 난장판으로 변했다
훈련병들은 3년 4개월동안 훈련받은 실력으로
연병을 습격하였다
그당시 24명의 기간병중 현장에서 살아남은 기간병은
매트리스에 몸을 숨기거나 화장실에 갓다가 숨어있던 이 등 6명뿐이었다

이날 교육대장이던 김슨웅 중위를 비롯 12명이 사살되고
6명은 바다로 도망치다가 익사
모두 18명의 기관병들이 희생되었다

훈련병들은 무의도에 건너가 당시 이장에게
부대장이 급성맹장에 걸렸다면서
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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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주민 차성교
훈련병 2명이 선착장 쪽에서 마당으로 걸어들어오더라고여
이장님 어디 계시냐고
그렇게 물어보는데 제가 복장을 보니깐
먼지만 입고 훈련을 뛰던 그런 사람들이
그날 아침따라 완전히 에이급 전투복에
자동소총을 어깨머리하고 실탄은 주머니마다 가득찼고
피어보지 못한 신탄지 담배 빨간 그 뚜껑이었엇습니다
담배곽도 몇갑씩 주머니에 집어넣고
완전히 저희가 볼땐 생소한 복장이었어여
이장님 불러내가지고 부대장이 급성맹장으로다가 위급하다는거에여
이송해야되는데 배좀 지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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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12시 20분경 인천시 남구 독배부리 해안
훈련병들은 상륙한다
삼년사개월만에 육지구경이었다
이때 해안초소에 근무하던 초경이 이들을 소대본부에 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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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시 목격자 최수광
그때는 물이 많이 나가갓고
배가 육지로 다가 닿지 못하고
그래가지고선 여러명이서 걸어가지고 육지쪽으로 다 나왔어여 총메고
그리고 그떄는 독배부리란 대가 바로 요긴대 승도유원지 암도 하나있는데
그 중간지점으로다 나온걸로 기억이 되네여

12시53분경 인천송도역삼거리 앞에서 첫번째 시내버스탈취해
서울로 향했으나 연락을 받고 대기중이던
육군 24명과 총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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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시 목격자 김수덕
바로 요자리야요 요자리에서 여기가 도로가 요렇게 올라가는 도로가 있었는데
거기 군인들이 막 도착해가지고 버스를 세웠어여
버스를 세우니깐 버스에서 군인들처럼 군복을 입은사람들이
유리창을 막 깨더라고여
깨더니 총을 쏘니깐 이사람들은 맞아서 쓰러쪗고
그걸 보고선 군인들이 막 버스에 대고서 막 쐇어여
그떄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자기집으로 간다고 막 하다가
골목앞에서 개는 바로 죽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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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옥련고개에서 13시 10분 1차교전
이교전으로 저지하던 군인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주한동 정류장에서는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나자
맞은편에서 오던 시외버스를 강탈했고 다시 서울로 향해 달린다
당시 승객의 증언에 따르면
버스에 오른 훈련병들은
겁에 질린 승객들을 향해 해치지 않을테니 몸을 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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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버스운전기사 정영소
말하는걸 들으니 배를 많이 굶은것 같더라
즈그는 따신밥에 잠자고 우리는 왜 섬에다 가둬 놨느냐
우리를 죽일려고 가두어 놨느냐
그러니까 박정희를 죽여야 한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고속도로도 그소리를 듣고 안갔고
국도로 가야 검문소가 있고
혹시 내가 전조등를 켜고 난리를 치고 가면
대낮에 라이터를 4개를 키고 가면
위반차량이니까 경찰관이 안 잡겠나
헌병 초소가 있으면 헌병이 나와서 안잡겠나
이런 생각을 하고 국도로 들어섰는데
아무도 잡는 사람이 없었다 그당시에

순찰오토바이 순경이 죽은후 연락이 되었는지
커브 길을 싹돌아가니깐 경찰관이 권총을 들고 서 있더라
그러니까 그들이 하는말이
대가리를 갈기삘까 목아지를 갈끼삐까 하더라고
그리고는 50미터 남겨두고 탕소리가 났고
경찰이 서있던데를 가니까
목아지에서 피가 촥 나면서 탁 쓰러지더라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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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소사삼거리 13시30분 오토바이를 타고 추격하며 정지명령을 내리던
용인소속 경찰관순경이 사살당해 순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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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버스 승객아줌마 김준희
뒤에서 보니간 싸이카가 막 쫏아와여
뒤에 그아저씨들 잔뜩 있었잖아여
안에서 쏴죽인다고 하더라고여
그러니 앞에 소대장이 내버려 두라고 그러더라고여
근데 아무래도 차보다 속력이 빨르더라고여
딱오더니 옆으로 와서 앞에 딱 서요
그대로 앞에서 소대장이 쏴죽이더라고여

차를 몰고 가는데 그땐 운전기사가 뛰어내렸을때니깐여
아마 엉망으로 갓잖아여 제생각엔 가다가 이대로 사고라도 낫으면 좋겠다
그냥 어떻게 그걸 끌고 가더라고여
조금 가다가 제가 창밖을 딱 보니깐
그냥 완전 무장한 군인 인지 경찰인지 모르겠어여
쫙 깔려있어여

잠깐 교전이 붙었어요
그떄 제 기억으로 확실하게 안에서 먼저 쏘진 않았어여
바깥에서 먼저 들어왔어여
그래서 교전이 시작이 됬어여
차가 좀 갓는지 어쩃는지 유아무야 가면서 가로수를 들이박고 멈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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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역에서 2킬로 떨어진 지점에서는 신앙촌 경찰들이 부상을 당한다
인천 신앙촌 검문소 13시 38분 경찰관 사살
경인가도차 희생된 이들은 이처럼 사고 연락을 받고 급히 출동한 경찰들이 많았다

오후2시 15분경 서울영등포구문래동 버스운정자 정영소씨가 탈출
실미도 훈련병이 직접 버스를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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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시 기동타격대원 이무부
갈비(칼빈)총과 실탄을 지급받아 대기하고있었습니다
당시 여기 대봉동 로타리에는 잔디밭이 잇었습니다
잔디밭에 막 내려서 대기할려는 그 찰나에 벌써 이미 들이 닥치면서
사격을 가하기 때문에
타이어를 향해서 쐇던것으로 기억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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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영등포구 대방동 14시25분 마지막 교전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만일 고도로 훈련된 이들이 뿔뿔히 흩어졌다면
피신이 훨씬 용의했을텐데
왜 굳이 무리지어 청화대로 향했을까
이들은 결국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수류탄으로 자폭 생을 마감한다
이들은 왜 가장 위험한 선택을 한것일까

또하나 떨쳐버릴수 없는 의문
훈련병들이 실미도에서 행동개시에 돌입해
통신을 끊어버린 시각은 아침 6시15분경이다
헬기로 19분이면 닿을거리에 있는 공군 정보부대
그리고 중앙정보부는 실미도의 난동을 정말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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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당일 공군정보부대 통신병 이준영
통신실에서에 그 통신을 접수하는거를 제가 맡았었는데
제가 30분마다 한번씩 교신을 합니다 우리 본부하고도
교신을 하는데 첫번교신이 안되었어요
통신실에다 다시 넣어바라
두번쨰 교신이 또 안들어왔어요
그래서 바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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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사건의 보도도 많은 의혹을 남긴다
군은 공비 죄수 특수범 특수부대 요원등으로
계속 말을 바꾸어 발표함으로써
보도에 혼선을 빛었고 ~ 세우러호와 유사하네
대방동 주민들의 협조를 받기위해
공비로 발표했노란 식에 유약한 변명을 해
은폐의혹을 가중시켰다
사건 2틀만에 정대혁 국방장관의 사표가 전격수리됨으로써
실미도 사건은 전격 초기에 종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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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당시 국회의원 강근호
그후에 그날 오후3시쯤
특수범에 의한 난동사건이라고 그랬어요
그러고 난다음에 일체 그 신문사건에 대한 진상이
국회에서도 또 언론에서도
일체 합동조사의원회에서만 보도되는것만 보도되었지
내용에 대한것은 전혀 보도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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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국회특별위원회 1971 8 24
국회내무회 합동조사단이 현장조사를 했지만
역시 별 성과없이 막을 내리고
이후 실미도 사건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것을 금기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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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당시 국회의원 김한수
실미도의 눈이라고 장소도 비밀인데 비밀을 누설해서
김일성에게 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강력법을 적용해서
관제공산당으로 몰려가지고 복역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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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 합동 영결식
말할수 없는 사건 실미도
실미도 사건과 연관된 이들은
상처를 묻은채 소리죽여 울어야 했고
그렇게 잊혀졌다
그리고 그나마 울어줄 가족도 없는
네명의 생존 훈련병은
사건 한달만에 군사재판을 통해 총살당한다

대한민국을 위해 산화하리라 했던 젊은이들
아무런 명분도 없이 비명속에 죽어간 이들을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28년만에 위령제를 실미도에서 올린다

~ 아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방송에서 공짜로 차비줘서 와봤어여
총살당하기전에 빰떄려서도 미안하구여
일동 묵념
아이고 18울면서 담배핀다

이 한몸 다바쳐 충성하면
세삶을 얻을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31명의 훈련병들
그리고 그들을 열심히 훈련시키다
희생양으로 숨진 18명의 기간병들

그들은 죽을 각오도 되있었다
그러나 죽더라도 의미있게 죽고 싶었을것이다
누가 이들에게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했는가

우리는 대의를 위해 개인을 버리는일이
소중하다고 교육받아왔고
또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문틀리고 뒤틀린 역사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제 과연 누구를 위한 안보였던가
묻지 않을수 없다

전쟁과 분단의 시대가 요구한
공포와 분노가 애국의 이름으로
한정권의 야욕에 이용된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들은 물을 것이다
국가가 개인과 했던 약속은 저버려도 좋은가
숨겨진 힘없는 생명과 인권은 무시해도 좋은가

그리고 한시대의 무모함이 빛은
끔직한 희생이 국익에 위배된다는 명분으로
은폐되는것이 과연 온당한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대답할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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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으면 똥통엔 못드갈듯
그런데서 총맞고 뒤지면 더 비참하니깐

어릴떄 이발소가면 성인만화로도 많이 봤고
소설로도 읽어봤지

허총재강좌보면 아직도 유신시대같이 강력한
독재자를 원하던데 그게 자신이 될수 있다고
그렇게 사회내부 갈등만 조장하니깐 안되는거지
지금 때가 어느때인데 봉이김선달이 통하리

마치 건입동에서 자연의 색으로 포장하려는 정치인같네
해준것도 없이 충성을 강요하고 있고
쓰다 버리듯 합의조건 2개중 1개도 무효로 만들어버리고

교도소에가바도 그렇더라고
아무것도 교육해준것도 없이 각잡길 바라던데
점호하는 법도 배우지 않았다고

사실 3개월만에 그리 강해질수 없다
원래 무기수나 깡패인걸 보니 운동많이 해서 강했었겠지
부랑아 이런애들이나 힘들어 죽었을테고
팔도 다치면 낫는데 그이상의 시간이 들거든
그사이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고려사에 궁예에게 빌붙엇던 내시같은 아자개가
궁예의 건강이 나빠질수록 더 포악해지자
왕을 바꾸려고 장인과 결탁해 아들을 옹립하려고 했는데

사전에 궁예의 부하 왕건에게 발견되는 바람에 실패했고
사실 어린아들을 올려놓고 섭정하는게 더 조종하기 쉽다는 판단이었지
그러다가 여차하면 자기가 왕이될수도 있고

중국에서도 그런경우가 종종있었거든
진시황의 손자를 데리고 놀다 죽여버린 조고가 그랬지
나중엔 왕이 내시한테 무릎꿇고 목숨을 구걸해야했고

탈북자 강명도 교수가 하는말중에 좀 믿게 어려운게 몇개있던데
처음에 남한으로와서 기자회견할때 북한에 핵이 다섯개있다
발표하라니깐 그걸 빼고 하겠다고 하니 국방장관이
다음날 호텔에 진수성찬 차려놓고 있고

그래서 오늘 무슨날이냐고 물으니
자기가 그 발표도 못시켜서 자리에서 내려와야겠다고 하니깐
측은한 마음에 발표하게되었는데
정작 그러자 진짜로 국방장관이 옷을 벗어야 됫더라고

외냐면 갑자기 국제정세가 바뀐것이지
와이에스와 김일성의 정상회담날짜가 잡히는 바람에
다시 화해모드로 돌아섯고
미국에서도 클린턴이를 이를 반기지 않았다고
원래 사람들은 진실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고
그래서 안하느니만 못하게 된거지

그전에 황장엽비서도 하는말이
믿기지 않는게 많다보니깐 자택감금하고
죽을때까지 산송장이었지

김정일의 조카 이한영처럼 공비를 보내서 암살하겠다고 했지만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결국 멀리 보리 못한 결과였지

십년전 최근에도 그런 기사를 봤다
군대를 제대한 청년이 다시 군대를 갓던데
그게 특수부대였고 오년인가 십년인가
매일 훈련병같이 훈련받으면 제대할떄
몇억 주겠다고 했는데 안주니깐 밝혀진 사건이고

박정희는 에이형인자 좀 성격에 안맞는 비형다운전술인데
그래서 변심한듯 하고
역시 전갈자리의 아방궁은 음침했다

그들을 그렇게 죄없이 죽게하니
자신 또한 믿었던 부하의 총탄을 받아야 했고

물론 그뒤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동남아에 갓을때
그런 피격사건이 잇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의로 돌아간다
실제 동탁이 미오성에 죽으러 갈때도
그런 폭정을 해서 국민들 원성이 잦을텐데도

시민들중엔 누가 여포의 여자를 따서 펼쳐보이기도 했는데
아둔한 동탁이 그걸 못보고 지나쳤지
그것은 이제 여포를 조심하라 이뜻이지

예전에 엄정화 화장품 쎄에프 도도 였나
그것도 보면 앞에 呂자를 딴것 같은데 음률여네
그후에 하리수가 바톤을 이어받기도 했지만

동원훈련가니깐 현역시절 무관고참이었던 선배를
이년연속 같은자리서 만났는데
하루는 힌두꺼비를 잡아와서 관물대밑에 묵어두더라고
풀어주고 싶었으나 칼이나 별다른 도구가 없어서

그냥 나둔것도 같고 지금생각하면 풀어줄것을
주유소알바할때도 그 선배를 본적 있는데
내보고 하는말이 니 영창갓다왔제 그러더라고

무슨 영창가서 내가 이런일 한다 그런뜻 같앴는데
거긴 주유소에 카센터도 있고 그래서 타이어 갈러 왔더라고
선배는 뭐하냐고 물어보니 노가다한다던데 피식하니
노가다는 아무나 써주냐고 그러던데
사실 아무나 한다 전과자도 하고 영창은 전과도 아니매

사자 삼춘처럼 망하고 내려와서 아이고 과거 훈련소 갈때
데려다 줄거 라면서 자신의 잘못을 아는것과
개선하지 않는것은 결국 모르는거와 같은거임
그래서 인지 내집에 못오게 하니 그뒤로 조루같이
역시 코뺴기도 안비추더군
그런 무책임한 일회용 삼춘은 나도 필요없지

누구나 펜팔을 해본 경험이 있겠지만
나도 초딩때 강제로 쓰게해서 국군장병아재에게 써바서 알고
거기서도 결혼도 하고 친구도 하는 케이스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시간낭비더라고
오히려 잘못되면 사기 도 당하고

인면은 제천이라고 했던가
다시 오지 않을 그 젊은 날에 세상과 등져야 하나

어떤 사람은 군대를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꼭 갓다와야 할 곳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곳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이든 간에

한창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제한된 자유와 특수한 상황속에서
일정기간을 보내야 하는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 않아도

얼마나 고되고 힘듬이 남을까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특수한 상황속에서 사고가 없을수 없겠는데여

앞으로 살아할날들 그리고 해야할일들이 많이 남았기에
영혼들의 죽음이 더더욱 안타깝기만 한데여

그전에 김신조 사건이나
96강릉잠수함 침투사건처럼
충격적인 사건들이 또 있었고

물론 한국영화말고 홍콩영화 성룡 주윤발 홍금보 주연의
그런 영화도 있었지 임무를 완수해 오자
그들을 반기는건 사고로 위장한 암살

이승만때도 제주사삼사건이 있었고
이 역시 공비소탕작전은 아니었다
곽영주 같은 내시가 진언을 잘못올린게 아닐까

목욕탕에서 만난할배는 개승만이라고 하던데
사라봉에서 만난 할배는 잘못한것만 볼수있나 잘한것도 바야지 그러던데
김일성과 같이 양자리다 보니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전갈자리의 아방궁이나 비밀스런 처세나
경제성장을 이끌어 냈다고 하나 그당시엔
북한이 더 잘살았다

사람들마다 그렇게 평가가 다르고
최근시장 사건도 그런거지
그들의 넋이라도 풀리고 하는일 잘되시길

진실은 영원히 증명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의 기억속에 믿기지 않은일로 기억될뿐

그들은 죄수의 신분에서 과도한 훈련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단지 헛것을 본건 아닐까 의문을 제기할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혼령이었나 아니었나는
여기서 그다지 중요할지도 아닐지도 모릅니다
바로 미스테리한 현상 이면에 감춰진 메세지

김일성의 목을 따기위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천을 맴도는 혼령
판문전 도끼 만행 사건이나
아웅산 테러 사건이나 못지 않게 충격적인 일들

무주택 군인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급하는 아파트가
결국엔 투기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개성공단 사업도 마찬가지이고
학교다닐때 선생도 말하길 좋지 않게 평가하더라고

회장이나 의원들의 아들들이 군대황제 복무의혹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수사대상에 오른 이들은 심지어 증거인멸까지 자행하고

군청버스가 외출장병 실어와
텅 빈 편의점 식당 금세 북적

상인 자식 손자 같다 반색
장병 상인들에 도움 돼 뿌듯

매달 장병에 지역상품권 제공
상생 넘어 동반자 관계로 발전

자 이 영화속에서나 나올법한 얘기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것은 무엇 때문일까여
빼빼로 데이를 맞이하여 작은 향이라도 올려보리

하늘에 계신 우리 군인들

그래서 칭찬하지 않을수 없다

실미도원을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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