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실안내

15. 연희각

  • 연희각 전경

    연희각 전경

  • 연희각 편액

    연희각 편액

  • 연희각 집무실1

    연희각 집무실1

  • 연희각 집무실2

    연희각 집무실2

 

 

 

연희각은 목사(牧使)가 집무(執務)하던 곳으로, 상아(上衙)의 동헌(東軒), 목사의 정아(正衙) 등으로도 불리웠다. 상아라 한 것은 판관(判官)의 집무처(執務處)인 이아(二衙)와 구분해 명명(命名)된 것이다. 이원조(李源祚) 목사의 '연희각기(延曦閣記)'에 의하면, "연희각은 예전에 기문(記文)이 없어서 건치(建置) 연월일을 상세히 알 수가 없다. 현판(懸板)도 누가 명명(命名)하고 누가 쓴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건물은 겹처마에 깊숙한 지붕으로 좌대(座臺) 위에 높게 지어져 있다. 그 이름을 연희(延曦)라고 한 것은 외신(外臣)이 충성(忠誠)을 다하고자 하는 정성(精誠)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탐라지(耽羅志)}에 의하면, 심연(沈演, 1638. 6∼1640. 9) 의 시(詩)가 부기(附記)되어 있고 또 이 때 목사의 겸직(兼職) 이었던 절제사(節制使)가 방어사(防禦使)로 바뀌는 것으로 보아 연희각도 이 때 건립되었거나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목사의 겸직은 1642년(仁祖 20)에 다시 절제사로 바뀌었다가 1713년(肅宗 39)부터 다시 방어사라 하였다. 그 뒤 이 건물은 1884년(高宗 21)에 홍규(洪圭) 목사가 중수(重修)하였으나 1924년 여름에 일제(日帝)에 의해 강제로 헐리고 말았다. 본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가구는 2고주 5량구조, 공포는 무출목 이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면적은 136.63㎡(41.33坪)이다.

 

담당부서
세계유산본부   세계유산문화재부
담당자
김현아
연락처
064-710-6713
Q.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