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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련당

  • 우련당 전경

    우련당 전경

  • 우련당 편액

    우련당 편액

  • 목사기 주재하는 연회모습1

    목사기 주재하는 연회모습1

  • 목사기 주재하는 연회모습2

    목사기 주재하는 연회모습2

 

 

 

우련당은 1526년(中宗 21)에 이수동(李壽童) 목사가 성(城) 안에 우물이 없으면 적(敵)이 침입하여 성(城)을 포위(包圍) 하거나 화재(火災)가 발생하였을 때 구급(救急)하기 어렵다 하여, 못을 파고 물을 가두어 연꽃을 심은 뒤 그 위에 세웠던 정자(亭子)이며, 연회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그 뒤 양대수(楊大樹) 목사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연못을 메워 평지(平地)로 만들었는데, 여기서 "양대수(楊大樹) 개구리 미워하듯 한다."는 속담이 유래되었다. 1694년(肅宗 20) 9월에는 이익태(李益泰) 목사가 중건 (重建)하였다. 영조(英祖) 때에는 김정 목사가 다시 정자 (亭子)를 중수(重修)하고 못 가운데 석대(石臺)를 쌓아서 꽃과 대나무를 심고 향의실(享儀室)이라 개명(改名)하여 공물(貢物)을 봉진(封進)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즉, '향의실기(享儀室記)'에 의하면, {서경(書經)} 낙고편 (洛誥篇)에"공물(貢物)을 바치는 데는 의식(儀式)이 많은데, 의식(儀式)에 바치는 물건의 정성(精誠)에 미치지 못하면 공물을 잘 바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임금님께 바치는 것을 향(享)이라 하고 예(禮)를 갖추는 것을 의(儀)라 하니, 이에 그 집의 편액(扁額)을 고쳐서 향의(享儀)라 한다고 하였다. 본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가구는 1고주 5량구조, 공포는 초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면적은 88.98㎡(26.91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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