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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고원방고 이미지

고원방고

1702년(숙종 28) 11월 6일, 고둔과원(羔屯果園)에서 왕자구지(王子舊地)를 탐방하는 그림이다. 과원 좌측에 ‘왕자구지’라 되어 있고, 그곳에서 기녀들이 거문고를 연주하는 가운데 풍악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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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원의 방풍림으로 대나무가 심어져 있고 과원의 밖에는 참나무밭과 매화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운랑천으로 추정되는 물과 인근에는 그 물을 이용한 논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원에 있는 감귤나무는 과실 익어가는 색깔을 달리하여 여러 품종이 재배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고둔마을은 고둔과원 근처에 형성되었던 마을로, 지금의 서귀포시 용흥동 염둔마을을 가리킨다.

고둔과원은 현재 강정동 2012번지 부근이며 조선시대 때부터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둔과원 안에는 왕자구지가 있어서 당시에는 제주로 부임하는 목사들이 즐겨 찾는 경승지였다.

<남환박물>에는 고둔이 ‘고득종 감사(高得宗 監司)의 옛 집터’가 있는 곳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원진의 <탐라지(1956년)>에는 “고둔과원은 대정현서 동쪽 55리에 있으니, 고득종의 농막 터인데 지금도 주춧돌과 계단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득종은 부친 고봉지(高鳳智)를 따라 10세 때 상경했다. 효행이 두터워서 1413년(태종13) 벼슬에 천거되어 직장(直長)을 지내다가 이듬해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여 대호군(大護軍), 예빈사판관(禮賓寺判官) 등의 벼슬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제주목마장에 관해 세종의 자문에 응하며,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두 차례나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39년 통신사로 일본에 가 천황의 서계(書契)를 가지고 돌아온 후 한성판윤,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제주에는 기록상 3번 다녀갔는데 한 번은 배가 난파되기도 했다. 황희(黃喜)와는 제주마를 줄 정도로 친분이 있었으며, 안평대군(安平大君)과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그의 찬시(讚詩)가 올라있을 정도다.

관덕정 창건 당시 고득종의 간청으로 안평대군이 관덕정의 현판글씨를 써주기도 했다. 안평대군이 써준 현판은 후에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고득종은 특히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으나, 전하는 저술이나 작품은 없고,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몇 편의 시가 전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위치

고원방고 현재위치 표시된 지도

조선시대의 지도는 궁궐이 있는 한양에서 바라보는 시점에서 제작된 경우가 많다.

탐라순력도의 '한라장촉' 역시 마찬가지여서, 현재지도와는 달리 남과 북의 방향이 거꾸로 제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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