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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풍물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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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을제
작성일 2011-01-21 11:13:31 조회 460 회
작성자 관리자 연락처

서기 1732년 당시 여름에는 가뭄도 심하고 물도 모자라게 되었고,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우환과 사람들의 고통이 심하고 사람들이 죽는 일이 많았다.
이런 재앙에 염려하면서 그때에는 신앙심이 많은 때라서(돌, 나무, 해, 달에 관한 신앙) 천제를 지내자는 씨족들이 지배적인 때라 이 마을에서도 마을제를 지내기로 결의하였다. 그래서 마을 중심인 곳에서 1년에 두 번씩(봄, 여름) 천제를 지내기로 하여 그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처음에는 마을제(천제)와 소위 할망당으로서 손천당이라 하여 소날에 기도를 드리는 곳으로 되어 있었으나 이곳에 여러 씨족들이 생활하게 되자 할망당을 구릉물로 옮기게 되자 씨족들은 천제와 소날의 할망당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할망당은 구릉물로 옮기기로 하고 천제(마을제)를 지내는 장소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고 깨끗하며 물 얻기가 쉬운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의논에 따라 마을에서 서남쪽으로 약 1킬로쯤 떨어진 마을 공동소유지 임야 속칭 포제동산이란 곳으로 정하고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과 그것들을 관리할 사람들이 며칠 간 합숙도 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1년에 처음에는 2번씩(봄, 여름)지내다가 얼마 후에는 1년에 한번 지내되 시기는 봄의(3월) 첫 丁日에 올리다가 몇 년 안 가서 또 시기를 바꾸었다.
시기는 가을 10월의 첫 丁日에 새 곡식을 마련해서 지내기로 決議 하여 계속 마을祭를 지내어 왔다. 祭官은 마을 회의에서 선출하는데 대개는 名 氏族에서 1명씩 선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祭官의 數는 12명을 선출하여(초헌, 아헌, 종헌, 봉작, 봉독) 중국의 의식 즉, 공자의 유교식으로 거행하였다. 제수物로는 유교법에 준하되 처음에는 1번씩 윤번제로 하여 왔고 제관 연령도 대개 40-60세 사이에서 선출하고 제를 지내어 왔다.
제관으로 선출되면 天祭日前 1주일 전에 제 지낼 장소에 지어져 있는 제관 집에서 合宿 하면서 외출이 금지된 채 每日 목욕하면서 精誠을 드리고 지내다가 祭日 밤에는 이 밤과 저 밤사이 12시-1시 사이에 제를 지내었다.
제수물로는 일반제례식과 대동소이 하였으나 제육은 약 70-80斤 정도 되는 돼지 1마리를 잡아서 내장만 빼고 생체로 제단에 올려서 제를 지내었다.
천제를 거행 할 때에는 마을의 이장과 각 씨족대표 그리고 마을의 유지와 노인들의 봉제시간에 맞추어 참석하였다. 이렇게 마을제를 지내었는데 여름에는 그래도 물이 귀하게 되었다. 그래서 각 씨족대표들은 또 모여서 이제는 여름에 비가 잘 안 와서 가뭄이 심하니 언제나 여름에는 해안 가에 가서 식수를 길어오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뭄으로 인하여 가을 농사에도 막대한 지장이 있고 가축에도 지장이 있고 하니 한 여름 가뭄이 심하니 여름에 기우제 겸 천제로 바꾸어 지내면 여름에 자주 비도 와서 가뭄이 덜하고 식수는 물론 농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 뜻에 따라 음력 7월 백종일에 기우제겸 천제일로 개정하고 제를 지내었던 바 마을 사람들의 뜻대로 여름에도 그리 가뭄이 없어지고 식수와 가축급수는 물론 농사에도 큰 지장이 없어졌으며 물통을 파서 물이 모여져도 세지 않고 오래 지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제는 계속 지내어 오다가 해방된 이후에 2년간 계속 하다가 4.3사건으로 제단과 제실이 소각되어 없어지면서부터는 마을제는 끝이 났으며, 해방후에도 里 소유였던 임야는 개인의 소유로 되어져 있었고, 또한 조수리가 소개로 인하여 전 가옥이 소각되어 없어진 후 마을의 재건할 무렵 약삭빠른 사람들은 이곳 里 공동소유지 임야의 老松은 물론 좋은 나무들을 베어가서 집을 짓는데 사용하였고, 제단으로 쓰던 그 넓은 大石 마저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다. 그 후 6.25사변이 있었던 1950년 이후부터는 과거에 마을을 이끌어 오시던 분들은 거의 타계하였고 젊은 청년들은 군에 입대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여 거의 쓸만한 사람은 타계하거나 각지로 출타하여 고향에 무관심한 상태이고, 이곳에는 과거 이장을 했던 분이 墓가 있다. 이상과 같이 선조들은 마을을 위해 일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이 사실을 어느 누가 알며, 후세에 전달코자 해도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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