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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중문 마을의 설촌은 마을 이름인 중문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찾아야 한다.
고려말에 원(院) 제도가 생기면서 우리 고장에 중문원의 천제연 웃소동편에 생기면서 중문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이 당시 제주에는 제중원(濟衆院), 이왕원(利往院), 중문원(仲文院)이 있었다.
이 제도는 지방에 출장나간는 관리를 위해 마련한 숙소인 것이다. 또한 중문이라는 이름은 대정군 고지의 건치연혁에 의하면 조선왕조 태종 16년 병신년(1416년)에 중문(中文),동중문(東中文), 웃중문(上文里)가 분리되어 기록되고 있다.
중문과 동중문의 지역은 확실히 구분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제연 냇줄기를 따라 물을 중심으로 천제연 웃소부근, 백구부근.상여궤물 부근인 앞거리, 두어물을 가까이한 먼내모슬에 사람들이 살았다.
이 부근은 저수량이 풍부한 고인물이 가뭄에도 마르는 일이 없다. 더구나 산내가 흐르면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었기에 생활용수로 이용하기에 편리했다.
따라서 마을의 설촌은 뜻맞는 사람들 수십가호가 서로 모여 살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기록이 없어 어느 성씨가 설촌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각 성씨의 족보를 따져 마을에 낙향한 설촌은 말하나 그것은 마을의 설촌과 역사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족보가 생기면서 과거에 계속적으로 살아왔던 선인들이 어느 성씨엔가 흡수·통합되어 선인들이 살았던 긴 역사가 족보속으로 감추어져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조 초기인 1392년 이후에서 임진왜란이 들끓던 1580년대까지 약 200여년간 마을의 역사를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중문 마을만이 아니고 다른 마을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점인 것이다.
1935년 제주도내 일부면이 명칭의 소재지의 리(理)명을 중심으로 바뀌는데 중면(中面)은 안덕면, 좌면(左面)은 중문면으로 바뀌고 해방될 때까지 존속된다.
1946년 8월 1일부터 제주도는 전라남도 관할에서 분리, 도(道)로 승격되고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이 신설되었다. 이때부터 완전한 중문면이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불란지야 불싸지라 중문향토지]

역대이장

역대이장을 대수, 직책, 성명으로 나타낸 표입니다.
대 수 직 책 성 명
2 대 경민장(警民長) 이병두
3 대 이도흥
4 대 이재형
5 대 이정희
6 대 고승옥
7 대 고윤원
8 대 고영흥
9 대 이봉옥
10 대 이태진
11 대 김승하
12 대 이달천
13 대 고영흥
14 대 강오인
대 수 직 책 성 명
1 대 리 장(理 長) 이자화
2 대 이찬석
3 대 이재형
4 대 강창언
5 대 변익보
6 대 고영흥
7 대 윤덕환
8 대 임갑련
9 대 이남희
10 대 이기택
11 대 이기택
12 대 이기택
13 대 강두문
14 대 고재룡
15 대 이윤희
16 대 이기택
17 대 김달수
18 대 김승수
19 대 김유부
20 대 임상배
21 대 이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