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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혼상제례(冠婚喪祭禮)
작성일 2011-01-25 16:27:04 조회 1,154 회
작성자 관리자 연락처

관혼상제례는 다른 마을과 비슷하다. 지금은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많이 사라지고 약소화되는 경향이지만, 지금도 그 원형이 남아 있는 것들이 많다. 이를 혼례편과 상례편으로 나누어 그 절차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 혼례편

혼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사회의 2대제례(二大祭禮) 중의 하나로 꼽아왔다. 지금은 현대화와 더불어 면사포를 쓰고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게 보통이지만, 옛날에는 사모 관대를 착용하고 신부는 족두리를 쓴 채 초례상 앞에서 엄숙히 혼례를 치루었다. 이를 되살려 보는 의미에서 1940년대 전통혼례 절차를 간단히 약술해 보겠다.
혼례날이 되면 신랑은 사모(紗帽)·관대(冠帶)·관복(官服, 예복) 등을 착용하고, 모선(慕扇 ; 부채 모양으로 얼굴을 가리는 혼대)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암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출행한다. 이때 마두납채(馬頭衲采)라고 하여 납채함을 등에 진 용인녀(庸人女 ; 부락 하인으로 혼례 떄 심부름하던 당시의 천인)가 마을 타고 신랑 행렬을 인도하며, 신랑의 말고삐를 쥔 용인(마부)과 신랑측 상객 2 ∼ 3명이 가마를 메고 그 뒤를 따르게 된다.
신부집으로 가는 도중에 간혹 혼례행렬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서로 좋은 길(주로 노면상단)을 차지하기 위해 쌍방이 치열한 경쟁을 한다. 이는 경쟁에서 패하여 나쁜 길(노면하대)을 택하게 되면 불길하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신부집에 도착하면 용인(하인)이 횡 -, 하고 신랑이 도착을 알리고, 수상객(首床客)을 납채함에 받아 신부댁에 납채한다. 신부집에서 제반의식이 끝나면 신랑은 신부를 가마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신부는 예복을 입고 족두리를 쓰고 창신(가죽으로 만든 예화)을 신은 채 가마를 타는데, 신랑집이 먼 경우에는 가마 안에 요강을 넣어 주어 용변에 이용토록 한다.
신랑집에 도착하면 신부를 신랑측 여인이 신부방으로 인도하여 좌정케 한다. 가마문은 신랑 부친이나 신랑이 직접 여는 게 상례로 되어 있으며, 신부를 좌정시킬 때는 형살(刑殺)·좌살방(坐殺方)을 피하여 앉도록 한다. 전통혼례의 일례로서 《 오리신침 》이 있는데, 신부가 도착한 즉시 신랑집에서 방내외의 적소를 선정, 중앙에 제상을 세우고 오리(목제 모형) 1개를 비롯하여 음식물과 과실 그리고 잔대 및 술잔 2개를 준비한다. 준비가 끝나면 신랑·신부를 동서로 마주 보게 세우고 집례의 홀기에 따라 엄숙하게 식을 거행한다.

。 전안례(奠雁禮)와 초례상(醮禮床)
혼례식을 전안례라 하는데, 납폐가 무사히 끝나면 신부집에서 전안홀기에 따라 예식을 올린다. 이때 신랑은 사모·관대·관복·묵혜(墨靴)를 착용하며, 신부는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녹색 비단저고리와 홍색 비단치마를 입는다. 이외에도 신부는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고 면사로 앞을 가렸으며 치미·저고링 위에 다시 원삼(圓衫 : 여자용 예복)을 껴 입었다.
초례상은 신랑·신부 사이에 놓이는데 교례상(交禮床)을 의미한다.

。 전안홀기(奠雁笏記)
 · 주인이 나가 신랑을 맞이함
 · 신랑이 두 손을 마주잡고 허리를 굽혔다 펴는 수례를 하고 들어옴
 · 시자가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가지고 신랑을 자리로 안내함
 · 신랑이 예석에 도어섬
 · 신랑이 기러기의 머리를 왼쪽에 가도록 안음
 · 북쪽을 향하여 안음
 · 기러기를 소반위에 올려 놓음
 · 엎드려 일어남
 · 약간 뒤로 물러서 두 번 절을 함
 · 신랑이 초례청 동쪽 자리에 들어섬
 · 신랑의 시자(한님이라 함)가 신부를 부축하여 나오되 백포를 까록 그 위를
    밟아서 나올 것
 · 신랑은 동쪽, 신부는 서쪽에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섬
 · 신랑이 손을 씻는 물 그릇은 남쪽, 신부가 손을 씻는 그릇은 북쪽에 둠
 · 신랑·신부가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음
 ·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함
 · 신랑이 한번 절을 함
 · 신부가 두 번 절함
 · 신랑이 또 한번 절함
 · 신랑이 신부에게 수례하고 각각 꿇어앉음
 · 시자가 술잔을 신랑에게 줌
 · 시자가 술잔을 잔에 부어줌
 · 신랑은 수례를 하고 술을 땅에 조금 붓고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상위에 놓음
 · 시자가 신랑·신부에게 술잔에 다시 술을 부어 줌
 · 신랑이 읍을하고 신랑·신부가 술을 마시되 안주는 들지 않음
 · 바가지를 신랑·신부에게 줌
 · 시자가 바가지에 술을 붓는다
 · 신랑·신부 술을 마심
 · 예를 끝내고 상을 치움
 · 신랑·신부 각각 처소로 들어감

이상으로 예식이 끝나면 관습상 여러 가지 행사가 이어지나 생략한다.
부유하고 권세있는 가문의 혼례에는 신랑행렬에 사령행렬(使令行列)이 간혹 있었으나 극히 근소한 가문에 불과했다.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혼은 매파의 증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였으나, 요즘은 세속의 변천에 따라 당사자의 의견만 맞으면 자유롭게 결혼하는 혼인풍토가 일반화되고 있다.
그리고 전통혼례시대에는 신랑집에서 속칭 '아버지'라고 하여, 결혼 전날에 용인을 시켜 연수예물(宴需禮物 : 쌀, 돼지 1마리, 닭 2마리, 계란 100개, 술 1동이)을 신부집에 납품하는 예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예의 간소화 경향에 따라 전통혼례의 풍속이 거의 사라지고 있으며, 결혼 연령 역시 점점 늘어나 만혼(晩婚)이 일반화되고 있다.

◎ 상례편(喪禮篇)

유교적 전통의례로서 상례는 전국 어디서나 거의 비슷하며, 요즘은 상례 간소화에 따라 3일장, 5일장, 7일장 등이 보편화되고 있다. 초상이 나면 일가친척은 물론 가까운 이웃들이 상가에 모여 일단 호상소(護喪所)를 마련하고, 염시(斂屍)를 위하여 남녀별로 소렴(小斂)에 소요되는 호상품(護喪品)들을 준비한다. 이때 상주들은 안장에 필요한 제반 절차를 친천들과 의논하는데, 우선 임종일이 중복중상일(重複重喪日)에 해당되지 않는가를 확인한다. 해당되지 않으면 곧 바로 시신이 누울 관을 짜도 무방하지만, 만약 중상일에 해당될 경우에는 반드시 후일로 연기하여야 한다. 이는 역학적인 택일이치를 적용하는 우리 사회의 진리로서 부인할수 없는 상례제도라 하겠다.
옛부터 내려온 풍속으로 관을 짜는 날에는 죽으로 문상객이나 호상소 인원에 대한 식사대접을 하는데, '죽부지'(粥扶助)는 일반이 하는 게 아니라 상주의 근친이나 사돈이 특별히 부조로서 끊여오는게 관습화되어 있다. 또한 조관(造棺)·입관(入棺)·하관(下棺) 당일에 일신의 생갑(生甲 : 생년·월·일·시)이 상충(相沖)되거나 상중(喪中)인 사람은 반드시 입관·하관 현장을 피하여야 한다.
상가에서는 호상 준비와 동시에 지관(地官)을 초빙하여 안장지(安葬地)를 물색하여야 되는데, 안장지가 선정되면 현장에서 하관 지점을 점취재혈(點取栽穴 : 정확한 하관 방위를 골라 대나무를 꽂아 하관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하고 안장일을 더불어 택일한다.
또한 안장지의 토신에게 엄중히 제사를 봉행하기 위해 토신제 헌관을 미리 위탁한다. 이때 위탁받은 헌관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부정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상례로 되어 있다. 몇 년 전만해도 사람이 임종하게 되면 서둘러 토롱(土龍 ; 가매장)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었다. 토롱의 주요 원인은 명당자리를 선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고 또 길일 택정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상례 간소화로 3일장, 5일장, 7일장이 보편화되어 사라졌지만, 어쨌거나 명당자리를 고른 이후에야 안장준비에 들어가는 것만을 사실이다. 그것은 명당자리를 고르는 것만이, 자식된 사람으로서 부모에게 행하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관습에 기인한다.
안장일이 택정되면 사아에서는 우선 안장에 필요한 '역꾼(장역인원)을 동원해야 한다. 광령리에서는 지금도 상역동원(喪役動員)을 목적으로 하는 상역계가 운영되고 있다. 수 십년 전부터 상·중·하골로 분골되어 운영했는데, 상골 사람의 장일에는 보편적으로 상골인원을 동원하고 하골 사람의 장례에는 하골 사람을 동원한다. 간혹 특수한 가문에서는 전골 사람 모두를 동원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상가 인근 2∼3개 반(班)을 동원하여 장사를 치루는 경향이 보편화되고 있다.
역꾼 동원과 더불어 상가에서는 이들에게 대접할 음식물을 장만하는데, 상주들이 골고루 자금 분담을 한다. 간혹 재력 있는 상주가 혼자서 전담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가문친척들이 〈고적〉(문중고조)이라 하여 식병(食餠 : 물떡이라 부르는 메밀이나 조로 만든 반달형의 떡)이나 돌레떡(메밀이나 조로 만든 원형떡) 등을 역꾼들의 음식물로 부조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가까운 친족은 좁쌀 두되를, 먼 친척은 한 되씩을 내놓으며, 장사 당일 음시물을 장지로 운반하는 등 아낌없이 상주를 도와준다.
역꾼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는, 아침은 밥을 위주로 대접하고 점심이나 '피력음식' 등은 떡으로 대접한다. 그리고 특별히 피력음식(일을 끝내고 먹는 음식, 만찬)이라 하여 큰 딸상주가 전담하는 풍습도 있었다.
안장 전날은 일포제를 지내는 날이라 많은 문상·조객들이 상가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 상주를 위로한다. 20여년 전만해도 고인이 남자(건상)일 경우에는 만장(輓章 : 만서, 직물이나 창호지에 쓴 고인을 흠모하는 작시)을 준비하여 영전에 헌상하는 조례의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의례 간소화로 그 형태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출상(出喪) 당일 아침에는 화단(畵丹)으로 곱게 상여를 꾸며 운구(運柩) 준비를 해야 한다. 〈화단〉은 상여를 꾸미는 꽃가마 형태의 상구(喪具)로서, 상역계원들이 순번제로 관리하며 유사시에 마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상여가 꾸며지고 출상 시간에 맞춰 장지로 운구하는데, 20여년 전만 해도 출상 직전에 마을 부녀자 약 30여명을 초청하여 아침음식을 대접하고 〈설배〉를 메는 장례의식이 행해졌다. 설배는 광목천으로 상여 앞머리(牀)에 두갈래로 길게 매는데, 마을 부녀자들이 그 끈을 잡고 영혼을 인도하는 일종의 위용행렬(威容行列)이다. 이때 부녀자 한사람이 '상여가'를 선창하면 전원이 후렴구로 계속 받아 넘기며 시신을 장지로 운구한다.
장지에 도착하면 시간에 맞춰 일단 하관을 하고 붕분(封墳)을 쌓는데, 반쯤 봉분이 쌓이면 평토례(平土禮)를 한다. 평토례는 막대를 짚은 장정 10여명이 봉분 주위로 동그렇게 둘러서 일제히 달구노래(답산가)를 부르며 봉토를 밟는 의식이다. 이 평토례는 3회 반복하는 것이 상례이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풍속이다.
일단 봉분이 완성되면 다른 마을에서는 '피력음식'을 들고 귀가하게 된다. 그러나 광령리에서는 옛부터 전해 온 풍속으로 상주가 축장(築墻)을 원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장사 당일에 역꾼들이 산담을 쌓아 준다. 이는 다른 마을에서 불수 없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타의 귀감이 된다고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대략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의 관혼상제례는 옛날부터 복잡하고 까다로왔다. 그 중에서도 상례는 더욱 복잡하고 소위 예론도 다양한 편이다. 그러므로 현재 애월읍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상례 절차만 간추려 간단히 알아본다.

。 초락(初絡) : 환자(주로 부모의 경우)의 병세가 위중하면 가까운 친족에게 통지하고 주위를 정숙히 하여 근신한다. 환자의 의복을 평상복중에서 청결한 것으로 갈아 입히고 유명(遺命)이나 유언이 있으면 이를 기록한다. 가능하면 자필 기록이나 녹음으로 수록하여 보존하는 게 좋다.

。 수시(收屍) : 임종이 확인되면, 시신의 머리가 남쪽으로 향하도록 바르게 눕힌다. 양손을 배 위로 모아 부드러운 베(布)로 묶고 코구멍과 귀구멍을 풋솜이나 탈지면으로 막는다. 침구로 시신을 덮고 병풍이나 가리게로 가린다.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룬다. 수시를 습(襲)이라고 한다.

。 고부 : 초혼(招魂)이라고 하여, 고인의 적삼(內服杉)을 들고 인근 높은 곳에 올라가 고인의 이름이나 댁호(宅號)·나이 등을 세 번 부르고 보(復)·보·보, 세 번 부른 뒤 그 옷을 시신 위에 덮는다. 수시와 초혼은 동시에 진행된다.

。소렴(小斂) : 운명 24시간 후에 행하는데, 시신을 판상(板上)에 눕히고 향탕수(香湯水 : 향나무 삶은 물)로 얼굴과 전신을 깨끗이 닦은 다음 염의(斂衣)로 갈아 입힌다. 염의는 고인이 입는 의복을 말하며, 비단으로 만든 상·하의와 도포 등을 따로 입히기 곤란하므로 사전에 겹쳐서 꾀매어 두면 입히기가 용이하다. 염의로 갈아 입히고 나면 버선을 신기고 행건(行巾)을 치고 요대와 도포의 끈(大帶)을 맨다. 또 흰 헝겊이나 백지로 만든 신을 신기고 머리에 관이나 유건(儒巾)을 씌운다. 그리고 과갑낭(瓜甲囊 : 작은 주머니)을 만들어 두었다가 사지의 손톱, 발톱과 머리카락을 악간씩 따로따로 과갑낭에 넣는다. 귀구멍과 코구멍을 다시 막고, 버드나무 숱가락(유시)으로 물에 불린 쌀 몇 알을 시신의 입에 떠 넣는다. 탱이(탱신)로 턱밑을 고와 악골(顎骨)이 아래로 쳐지지 않게 하고 명목(暝目)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 다음 악수(幄手)로 손을 가리고 염이불을 덮고 염포(斂布)로서 시신을 묶는다. 시신을 묵는 일을 '염'이라 한다.

。  소렴(大小斂) : '장매'는 시신을 종으로 묶는 것이고 '가로매'는 횡으로 묶는 것인데, 비단이나 마포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로매의 수는 5, 7, 9, 11 등 기수로 하며 시신의 신장에 따라 적당히 골라 묶는데, 묶는 끝을 매듭 짓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이런 작업은 상주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측근 친지들이 하며, 시신을 비단이나 마포로 묶는 이유는 유골의 손상을 막는 데 있다.

。 대렴(大斂)과 입관(入棺) : 대렴이 끝나면 입관 시간에 맞춰 입관 준비를 하는데, 우선 관을 시신이 있는 방으로 옮겨 놓는다. 관 이불을 관내에 펴고 관요를 깔고 침(枕 : 모래나 흙으로 만든 베개)을 미리 닿을 부위에 놓고 시신을 관안에 모시고 펴놓은 관이불로 시신을 감싼다. (이상은 대렴과 입관 순서임) 이것이 끝나면 고인의 의복이나 마포 등을 넣어 운구중에 시신이 관안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한 다음, 천개(天蓋: 관뚜껑)를 덮고 나무못(木釘)으로 고정시키고 유지(油紙)나 초석(草席)으로 감싼 다음 묶는다. 입관이 끝나면 관 밑에 편목(片木)을 깔고 실내에 관을 안치하는데, 장일이 임박하면 병풍으로 관을 가리고 그 영전에 사진이나 혼백(魂帛)을 모시고 촉화(燭火)·향로 향합·모사(茅沙)를 구비하여 둔다.

。 성복(成服) : 입관이 끝나면 상주를 비롯한 복인(服人)들은 상복(喪服)을 갖추고 '성복제'를 지내며, 성복제가 끝나야 문상(問喪)을 받는다.

。 발인(發靷) : 상여가 상두꾼들의 어깨에 떠매어져 장지로 떠나는 것을 '발인'이라 한다. 관을 마당에 옮기고 우선 '발인제'를 지낸다. 발인제는 관 앞을 제상을 차리고 발인축(發靷祝)을 고하는 상례다. 이때 상주는 부단히 곡을 하는데 축문을 고할때는 금지한다.

。 출상(出象) : 발인 절차가 끝나면 상여 또는 영구차가 장지를 향하여 출발한다. 도보로 행진할 때는 조기(吊旗)·만서(輓書)·공포(功布)·명정(銘旌)·요거배행(腰擧陪行 : 서 또는 근친)·행사인도자(行喪引導者)·상여(賞與)·상주(喪主)·친족(親族)·조객(적(吊)객(客))순으로 행렬을 짓는다.

。 도중정상(道中停喪) : 운상 도중에 상여를 멈추고 노제(路祭)를 지낼 경우에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여 제상을 차리고 제를 지낸다. 이것은 고인의 제자 또는 친구가 축문을 읽어 고별 인사를 대신하는데, 고인의 유덕을 추모하고 찬양하는 내용이 된다. 정상(停喪)이 끝나고 운구가 장지에 도착하면, 천막을 치고 관앞에 제상을 차려 조객을 받는다.

。 하관(下棺) : '하관'은 관을 묘혈(墓穴)에 넣는 일로, 베(布)나 비단천을 관 밑에 넣어 조용히 들어서 수평이 되도록 묘혈에 넣고 베나 비단천을 빼어낸다. 관 위에 명정(銘旌)을 덮고 동천개(東天蓋 : 개판)을 덮을 때 상주는 페백을 드리고 호악재배(號樂再拜)한 다음 흙을 붓고 성토(盛土)한다. 봉분이 완성되면 반혼(返魂)이라 하여 상주는 혼백을 봉안(奉安)하여 귀가한다. 귀가와 동시에 제상을 차리고 즉시 추우제(初虞祭)를 지낸다.

。 재우제(再虞祭) : 장례 다음 초유일(初柔日 : 을, 정, 사, 신, 계일)에 '재우제'를 지낸다.

。 삼우제(三虞祭) : 장례 후 초강일(初剛日 : 갑, 병, 술, 경, 임일)은 장후 3∼4일 만이 된다. 이때 '삼우제'를 지내고 성묘(省墓)한다.

。 졸곡제(卒哭祭) : 삼우제 3개월 이내의 강일에 지낸다.

。 상식(上食) : 매일 아침·점심·저녁 생시와 같이 음식을 마련하여 헌상한다.

。 삭망(朔望) : 매월 1일과 15일에는 제물을 준비하고 '삭제'를 지낸다.

。 대·소상(大·小祥) : 소상은 임종 1년 후 기일에, 대상은 2년 후 기일에 지낸다. 대상의 제사가 끝나면 상에 모셨던 '혼백'을 묘소 앞에 묻는다.

。 담제(潭祭) : 대상후 3개월 만에 정일이나 해일에 지낸다.

。 길제(吉祭) : 담제후 1개월만에 '정일' 혹은 '해일'에 지낸다.
최근에는 상례 간소화의 세태 변천에 따라 3년 봉상(奉喪)하던 상례양상이 1년 봉상으로 보편화되는 실정이며, 간혹 백일 봉상으로 상기(喪期)를 단축하는 가문도 있는 실정이다. '길제' 이후의 상례 절차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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