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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마을약사속 칭 '신술목'이라 하며 현재 위치는 신산리에서 동쪽으로 약 700m거리 일주도로변에서 약 200m 지경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동네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당시 이곳의 마을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알려지고 있는 이름은 '끝동네(末洞)리라고 부르고 있다(일명 '그등매'라 부름) 신산리 마을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유래를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1000여년전부터 중산간 지형의 요소요소에는 기후, 물, 경작지 등 자연환경이 비교적 적은 곳을 찾아 사람들이 정착되면서 살기 시작하였으며, 차차 생활이 장착되어 민족을 중심으로 한 동네가 형성되어 살아왔다. 특히 현재 성산읍 신산리의 윗지경인 '면의 모르동산'주변에 일착으로 선비들이 정착하면서 중심마을이 이루어졌으면 현재 신산리 지경인 곳으로 속칭 '신술목'근붕에도 마을이 형성되어 살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주로 정주 현(玄)씨가 먼저 정착하면서부터 이 마을이 이루어져 마을 이름을 '끝동네'라고 불렀다고 한다. '끝동네'라는 이름은 유개가 그렇다할 의미는 내포되지 않았으나 그 당시 중산간 지대의 마을들 중에서 중심 산간마을로부터 가장 끝 해변가 가까운 곳에서 위치한 동네라고 해서 '끝동네(그등애)'라 불렀다 하며 그곳에는 약 100년간(20여호)살다가 약수사정이 어려워 생활에 불편을 느끼게 되어 물이 좋고 쉽게 얻을수 있는 곳을 따라 옮겨진 곳이 현재 신산리 해변가였으며 그후 인구수가 늘어 호수가 증가해 가며, 약 100년후(지금으로부터 200여년전) 어떤 풍수지리 학자의 도움으로 동리명을 '신산'으로 개명 현재에 이루었으며 지금도 해변가 곳곳에는 용수가 용출되는 곳이 많아 물 좋은 동네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곳에 경작했던 농산물로는 조, 메밀, 보리 밭벼 등으로 밭에서 경작하여 주식으로 삼을 재배하여 삼베와 무명을 생산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물론 모든 매매거래도 삼베와 무명으로 하였다 하며 해변에서는 해초류 및 어물을 얻어 생활에 도움을 받아 살아왔다 한다. 특이한 마을의 풍습이나 역사적인 유물이나 사적이 될 만한 것은 없으나 사람들이 순박하고 활동적이며 이웃간에 협동하는 마음과 마을을 위한 단결심이 강하여 평화롭게 사는 '강씨(康氏, 현씨(玄氏),' 민족이 주가된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