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풍물민속

고좌수와 '좃벤골총' 설화 게시물 상세보기
제목 고좌수와 '좃벤골총' 설화
작성자 관리자 조회 1,155 회

최초로 상위미에 들어와 살았다는 고좌수에 관한 설화는 그의 사람됨과 그의 무덤인 위미2리 대성동의 '좃벤 골총'에 관한 것이 있다.
고좌수는 현재 상위미의 속칭 '큰터왓'에 고대광실을 짓고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살았다.(현재 '큰터왓'의 '쥐두리터'에서는 기와와 각종 질그릇의 파편들이 출토되고 있는데,바로 이 유물들이 당시 고좌수의 집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라 한다)
그는 당시 위미에서 가장 큰 세력을 떨쳤는데, 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하였던지 마을 사람들이 상위미쪽 밭에 일을 가노라면 고좌수가 불러서 자신의 집일을 시켜도 감히 불만을 말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잡혀서 일을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힘이 세고 욕심이 많아서 다른 사람의 물건도 제 마음에 들면 어떠한 억지를 써서라도 제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이러한 고좌수의 재력과 위세는 정의현청에도 알려져, 정의현 안에서는 고좌수의 집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는 식의 말이 돌았다. 이에 현감은 고좌수의 재력 규모를 확인하고, 또 고좌수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일부러 너의 집에 탕건(갓을 쓰기전에 쓰는 건)이 100개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고좌수는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다른 물건은 몰라도 탕건은 갓을 쓸 때만 사용했으니만치 한 집에 남자용으로 1∼2개만 필요한 물건이다.) 이에 현감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 확인하도록 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에도 고좌수는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직접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정의현 관리와 함께 상위미로 출발했다. 그런데 한남리 지경인 '사령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고좌수는 '감히 현청의 높으신 관리를 땅을 밟게 모실 수는 없다. 지금 이곳에서부터 저의 집 앞까지 베와 무명을 깔아 놓을테니 그걸 밟고 오십시오. 저가 즉시 집에 가서 지시하고 올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하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와 하인들에게 즉시 베와 무명을 깔도록 지시를 했다. 그래서 상위메에서 '별진밭'까지 베와 무명을 길에 깔아 현청의 관리를 모셨다. 물론 이 시간에 고좌수는 다른 하인들을 시켜서 마을안의 모든 탕건을 수거하여 창고에 가지런히 쌓아두었음은 물론이다.
한참후에 정의현의 관리가 고좌수의 집에 도착했고, 고좌수가 정색을 하고 맞이하여 창고의 문을 여니 거기에는 100여개의 탕건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보관되어 있었다.이일이 현청에 보고되자 고좌수의 재력과 위세는 더욱 더 정의현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였다.
이처럼 재력과 위세를 떨치던 고좌수였지만 그의 죽음은 너무나 허무하고 비극적이었다.어느날 정의현청에 다녀오다가 혼자 술에 취해, 한남리지경 '사령굴'에서 얼어 죽은 것이다. 그런데 그후 길을 가던 청년에 의해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이 청년이 자세히 그 주검을 보니 이때까지 자신들을 못살게 굴었던 바로 그 고좌수가 아닌가? 분노와 심술이 난 그청년은 고좌수의 주검에서 성기를 자르고 그것을 주검의 입에다가 물려 버린 것이다.
한편 상가에서는 뒤늦게 고좌수의 사망소식을 듣고, 비참한 죽음이지만 체면 때문에 성대한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일부러 육지에서 지관을 청해다가 명당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육지 지관이 현지에 와서 보니 고좌수가 비록 생전에 재력과 위세가 대단했지만 워낙인심을 잃고 있어서 좋은 묘터를 보아 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 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차일 피일 시간을 미루고 있었다.그러나 이 집 부인은 지관이 하는 일없이 빈둥거렸지만 지관에 대한 정성이 지극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10여일이 지났지만 부인의 정성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그 지관은 망인은 비록 달갑지 않았지만 그 부인의 마음씨에 탄복하여 부인과 자손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명당자리를 골라 주어야 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서 정의현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바로 지금의 우미2리 대성동 지경인 '좃벤 골총'터를 발견한 것이다.그런데 맘ㄱ상 장사를 지낼 묘터가 정해지자 지관은 어느날 조용히 부인을 불러서 이상한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곳은 '황년지지'라는 명당터인데 단, 관을 묻을 때는 누구도 접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충직한 종놈 한명만 거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은 시신의 위아래가 바뀌도록 엎어서 매장하고, 일이 끝난 후는 앞으로 3년간 무슨 일이 있어도 무덤을 파헤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지관은 부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떠나가 버렸다. 이래서 임시 토롱을 했던 고좌수의 시신은 제대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하관 시에 부인은 일가 어른들에게 "지관이 특별한 부탁이 있어서 그러니, 하관은 저와 저 종놈 둘이서만 하겠으니 제발 이해해 주십시요"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말을 들은 일가에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관의 특별한 부탁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해를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며느리와 그 종놈은 ,밖에 사람이 하관하는 것을 볼 수 없도록 주위에 장막을 둘러치고 하관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놈이 보니 관을 엎어서 묻으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부인에게 관을 잘못 모시고 있다고 지적하자 부인은 '다 지관이 시켜서 하는 일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앞으로 이 일을 입밖에 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고좌수의 이상한 장례는 모두 끝났다.그런데 장례를 치룬 1-2년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좌수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19살정도, 작은 아들은 그보다 조금 어렸다. 바로 이 두 아들의 힘이 자신들도 모를만치 점점 강해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 아들들 스스로 자신들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여 자꾸밖에 나가 힘내기 하거나, 괜히 싸움을 걸었는데 그때마다 이 두 아들의 힘을 당해낼 자가 없었다. 이 소문은 어느 사이에 정의현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이에 그부인은 생각하기를  '바로 고좌수의 묘자리가 장수가 날 자리였구나' 하고는 어느날 두 아들을 불러 신신당부하였다.


 

페이스북 공유 트의터 공유


풍물민속 게시물 목록을 게시물번호, 제목, 첨부파일 수,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로 나타낸 표입니다.
No. 제목 첨부 작성자 조회
4313 한무덕골동산 관리자 930
4312 무어신굴/우어신굴 관리자 949
4311 무대기왓 관리자 858
4310 답다니 관리자 865
4309 활어회 관리자 1120
4308 위미항 방파제 관리자 941
4307 윗뙤미/상위미 관리자 976
고좌수와 '좃벤골총' 설화 관리자 1155
초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