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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문화

돌과 진흙, 그리고 새로 지어진 제주 초가(草家)는 제주 특유의 건축양식으로 험한 자연조건을 이겨낸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소박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한 울 안에 안거리와 밖거리 두 채의 집이 평등하게 배치된 ‘두커리집’은 제주 초가의 대표양식으로 꼽히는데 안거리는 부모세대가, 밖거리는 출가한 자녀가 거처하였다. 각 채에 부엌과 창고가 별도로 마련된 것은 부모와 출가한 자녀의 독립된 경제생활을 인정해 온 풍습에서 기인한 구조다.

돌과 진흙으로 지어진 제주초가의 모습
제주가 바람 많은 섬이기 때문에 집의 건축 자재나, 구성, 구조에도 바람을 이겨내려는 지혜가 깃들어 있다. 초가를 주위 지형보다 낮은 곳에 ‘웅크려 앉은 듯’ 낮게 짓고, 초가지붕도 모 없이 유선형으로 만들어 격자로 꽁꽁 동여맨 것도 그러한 궁리에서 비롯 된 것이다. 제주는 ‘풍다(風多)’일뿐 아니라 ‘우다(雨多)’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풍토하에 돌은 제주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와 바람에 강하기 때문에 건축외장재로 널리 사용됐다.
실제 제주의 대표 상징물의 하나인 ‘정낭’을 지탱하는 ‘정주석’은 원래 나무로 만들어진 ‘정주목’이었다. 고온다습하고 비가 많은 제주에서 땅속에 박아 둔 정주목은 밑둥이 쉽게 썩어 1~2년마다 교체해야 했다.
 

돌로 만든 정주석은 이런 불합리를 한번에 해결해줬기에 정주목을 대신하게 됐다. 초가의 몸체인 벽은 다듬지 않은 큰 돌을 쌓고 짚을 섞어 반죽해 놓은 진흙을 채우며 난층(亂層)으로 쌓아 올려 만들었다. 제주에서 나는 흙은 화산회토이기 때문에 응집력이 약해 건축에 맞지 않다. 돌을 의지해 흙을 채워 놓음으로써 제주의 강풍과 풍우를 이기는 제주 특유의 ‘바람벽’을 완성하게 됐다.
제주 초가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본채 외에 성기게 쌓아 올린 울담 주변으로 ‘안뒤’, ‘우영’, ‘눌굽’, ‘통시’, ‘쉐막’ 등이 있다. ‘안뒤’는 안거리 뒷벽 양끝에서 울담까지 연결해 돌담을 쌓아 외부로는 출입할 수 없도록 만든 폐쇄적 외부 공간으로, 이곳으로의 출입은 오직 안거리 상방의 뒷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대문 없는 마당이 열린 공간이라고 한다면, 담을 높게 쌓아 만든 ‘안뒤’는 외부와 차단된 ‘사적 공간’으로서 의의가 크다. 이곳에 동백나무, 감나무, 귤나무 등을 심어 후원처럼 사용했다.
‘눌굽’은 눌을 누는 자리를 말한다. ‘눌’은 탈곡하기 전의 농작물을 단으로 묶어 쌓아두거나, 탈곡하고 난 짚이나 땔감 등을 쌓아 놓은 낟가리를 말한다. 제주에서는 눌을 만드는 행위를 ‘눌을 눈다’고 한다. 이 눌을 누는 자리는 마당 한 켠에 마련되는데 우천시 침수를 피하기 위해 지면보다 40~50cm 높게 돌을 쌓아 평평한 단을 만들었다. 물 빠짐이 좋아 눌이 젖더라도 썩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우영’은 집 울 안에 있는 텃밭으로 채소 등을 심어 부식을 얻는 장소다. 우영밭 둘레에 잔 돌로 낮게 담을 둘러 마당공간과 구분했고, 흙이 유실되는 것을 막았다. 큰 돌덩이를 쌓아 만든 통시는 변소와 돼지사육의 장소이며, 쉐막은 초가의 벽처럼 돌과 진흙으로 벽을 만들어 소를 키우고 농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했다.
이렇듯 전통초가는 비바람 심한 제주 기후를 이겨낸, 쾌적하고 합리적인 돌로된 주거양식 이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일환인 지붕개량으로 전통초가는 사라져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지만 성읍민속촌, 표선민속촌, 박물관 등지에 가면 초가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제주도(1998), 『제주의 문화재』 (증보판).
  • 제주도(1993), 『제주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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