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석상

마을의 수호신 돌하르방

돌하르방의 모습
오늘날 제주가 국제적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제주의 대표 상징인 현무암 돌하르방도 국제적 사랑을 받고 있다. 제주 공항에서부터 만나게 되는 이국적 취향의 벙거지 눌러쓴 돌하르방. 그는 어디에서 왔을까? 돌하르방의 유래에 대해, 『탐라지』는 “영조 30년(1754)에 목사 김몽규가 옹중석(翁仲石)을 성문 밖에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민속학자들은 제주가 태조 16년(1416)에 3읍으로 편제된 직후 각각 읍성(邑城)을 축조한 사실을 들어 돌하르방이 18세기 중엽에 처음 세워졌다고 보는 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돌하르방이 언제부터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돌하르방이 각 읍성의 성문에 나란히 세워진 것은 확실하다. 제주목인 경우 동ㆍ서ㆍ남문에 각 8기씩 24기가, 정의현과 대정현은 동ㆍ서ㆍ남문에 각 4기씩을 세웠다. 조선 시대 성문을 지켰던 이들 돌하르방은 원위치에서 옮겨져 47기가 남아있으며, 모두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그 중 2기는 경복궁 한국민속박물관에, 나머지는 도내 각처에 있다. 돌하르방은 읍에 따라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지고 판매되는 큰 눈망울의 돌하르방은 제주목 돌하르방을 본뜬 것이다. 제주목 돌하르방은 평균키 181.6cm로 정의현이나 대정현의 돌하르방(각 141.4cm, 136.2cm)보다 크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돌하르방의 기능에 대해 민속학자들은 크게 3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성안 사람들의 강녕과 융성을 지켜주는 수호신적 기능을 가졌다고 본다. 둘째, 전염병을 막아준다는 믿음이나, 돌하르방의 코를 빻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은 돌하르방의 주술종교적 기능면을 드러낸다. 김몽규 목사도 당시 제주에 흉년과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원귀가 되어 산 사람들을 괴롭힌다 하여, 이를 막기 위해 돌하르방을 성문 밖에 세우게 됐다고 전한다. 셋째, 돌하르방이 성문에 세워져 있으므로 마을 경계를 분명히 알려주는 위치표지적 기능도 가졌다. 따라서 외부사람들은 함부로 돌하르방을 지나쳐 성내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돌하르방은 한반도 마을 어귀에 세웠던 장승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돌 많고 비바람 잦은 제주섬 선조들은 그들의 기원을 비바람에도 지워지지 않도록 단단한 검은 현무암에 조각했던 것이다. 오늘날 그 후손들도 제주인의 자부심을 표현하듯 돌하르방을 자랑스레 문밖에 세우고 있다.

돌하르방의 특징

돌하르방의 모습
제주의 대표 상징물, 돌하르방. 구멍 숭숭 난 검은 현무암에 조각해 낸 툭 불거져 나온 눈과 뭉툭한 긴 코, 꼭 다문 입매와 불룩한 배에 얹어 놓은 두툼한 손. 돌 할아버지를 뜻하는 ‘돌하르방’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모진 환경에서 한평생을 보낸 우리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그렇지만 이 석상(石像)을 ‘돌하르방’으로 부른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조선조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읍성(邑城) 동·서·남문에 각각 세워져 있었던 제주섬 고유의 석상을 1971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하려 할 때 공식 이름으로 새로 지어 붙인 것이 돌하르방이다.
본래 민간에서는 돌하르방을 ‘벅수머리’, ‘우성목’, ‘무성목’ 등으로 불렀고, 문헌에는 ‘翁仲石(옹중석)’으로 표기한 예가 있다.
제주의 민속학자 고(故) 김영돈 선생에 의하면 광복 전후에 도민들 사이에서 반 장난 삼아 부르던 ‘돌하르방’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결국 많은 민속학자들의 열띤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의 공식 이름으로 등록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돌하르방은 읍성별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제주목 돌하르방은 제주 수부의 성을 지키는 석상답게 가장 크고 호방한 모습에 이목구비가 굵으면서도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어, 무인(武人)다운 기개가 느껴진다.
 

정의현(현재 성읍리)과 대정현(현재 보성리, 안성리)의 성을 지켰던 돌하르방은 제주목 돌하르방처럼 검은 현무암에 벙거지 쓰고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은 모습을 조각했지만 그 인상은 사뭇 다르다. 제주목 것에 비해 작고, 대체로 이등신으로 조각되어 있어 민중적 소박함과 해학이 느껴진다.
김영돈 선생은 정의현 돌하르방은 기하학적 형태처리로 날카롭고 단정하며, 대정현 돌하르방은 곡선적이며 대체로 소탈하고 온후하다고 인상을 적고 있다.
다양한 모습의 돌하르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주목 돌하르방만이 수려한 풍모와 예술성으로 널리 알려져 상품화하고 있어 제주목 돌하르방 외에도 정의·대정현 돌하르방의 상품화가 이뤄질때 제주돌하르방의 위상과 가치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돌하르방이 있는 곳

돌하르방은 경복궁에 전시된 2기와 도내에 있는 45기, 총 47기가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목 돌하르방 -23기

  • 돌하르방(경복궁 한국민속박물관)-2기
  • 돌하르방(제주시 목석원) -1기
  • 돌하르방(제주시 삼성혈) -4기
  • 돌하르방(제주시 제주대학) -4기
  • 돌하르방(제주시 관덕정) -4기
  • 돌하르방(제주시 제주특별자치도민속박물관) -2기
  • 돌하르방(제주시 제주시청구내) -2기
  • 돌하르방(제주시 제주국제공항) -2기
  • 돌하르방(제주시 KBS제주방송총국) -2기

정의고을 돌하르방 12기

  • 돌하르방(표선면 성읍리 동문밖) -4기
  • 돌하르방(표선면 성읍리 서문밖) -4기
  • 돌하르방(표선면 성읍리 남문밖) -4기

대정고을 돌하르방 12기

  • 돌하르방(대정읍 보성리) -9기
  • 돌하르방(대정읍 인성리) -3기
참고문헌
  • 제주도(1998), 제주의 문화재(증보판).
  • 김봉옥(1999),「제주의 돌문화」, 『제주문화』 제5호, 제주문화원.
  • 국립제주박물관(2001), 『제주의 역사와 문화』.
  • 김영돈(1993), 『제주민의 삶과 문화』, 제주문화.
담당부서
세계유산본부 세계유산문화재부
담당자
김영란
연락처
064-710-6643
Q.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