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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화

해녀공동체

해녀현황 및 분포

강인한 제주여성의 표상인 해녀들의 모습
강인한 제주여성의 표상인 해녀가 요즘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고령화 되고 있다. 이는 여성들의 고학력화와 산업구조의 다양화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바다에서 하는 힘든 노동을 기피하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물질을 시키지 않는 것도 해녀 격감 및 고령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해녀 수 감소와 함께 어업 종사자도 줄어들고 있다. 2007년 제주특별자치도의 조사에 따르면 제주해녀 5,406명(2006년말 현재) 중 60세 이상이 65.8%(3,557명)로 가장 많고, 50~59세 24.6%(1,331명), 30~49세 9.6%(518명) 순이며 30세 미만은 2명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 70년 전체 해녀 1만 4,143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4.6%였던 것과 비교할 때 고령화가 진행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자료다. 더불어 해녀수의 격감도 알 수 있다.
 
연도별 잠수어업인 현황 (단위 : 명)
연도별 잠수어업인 현황
구분 1970 1980 1990 1995 2005 2006
잠수어업인 수 (%) 14,143 (100) 7,804 (100) 6,470 (100) 5,886 (100) 5,545(100) 5,406(100)
연령구성 30세 미만 4,425 (31.3) 782 (10.1) 271 (4.2) 20 (0.4) - -
30 ∼ 49세 7,760 (54.9) 4,788 (61.4) 2,894 (44.8) 1,843 (31.4) 718 (12.9) 518 (9.6)
50 ∼ 59세 1,310 (9.2) 1,698 (21.7) 2,370 (36.6) 2,247 (38.1) 1,512 (27.3) 1,331 (24.6)
60세 이상 648 (4.6) 536 (6.8) 935 (14.4) 1,776 (30.1) 3,315 (59.8) 3,557 (65.8)

※제주특별자치도 자료

현직 잠수어업인 현황(2006년 현재) (단위 : 명)
현직 잠수어업인 현황(2006년 현재)
구분 30세미만 30~39 40~49 50~59 60~69 70세이상
5,406 - 27 491 1,331 2,180 1,377
제주시 3,038 - 24 305 730 1,166 813
서귀포시 2,368 - 3 186 601 1,014 564

※제주특별자치도 자료

제주도 어업가구 및 인구수(2006년 현재) (단위 : 가구, 명)
제주도 어업가구 및 인구수(2006년 현재)
연도별 어업가구수 어업인구수 어업종사
가구원
잠수의 수 연도별 어업가구수 어업인구수 어업종사
가구원
잠수의 수
1970 16,096 85,230 23,985  14,143 2001 6,356 19,487 7,048 5,047
1975 12,534 68,038 20,572  8,402 2002 6,613 20,390 8,086 5,659
1980 10,054 49,195 12,216  7,804 2003 6,699 19,831 8,548 5,650
1985 9,792 42,730 11,320  7,649 2004 6,738 19,737 8,103 5,650
1990 9,291 37,643 10,837  6,827 2005 6,698 18,612 - 5,545
1991 8,217 32,415 9,774  6,815 2006 6,924 19,388 - 5,406
1992 7,915 28,132 9,613  6,846          
1993 7,627 26,672 9,267  6,135          
1994 7,437 25,196 8,968  6,068          
1995 7,814 26,477 9,463  5,886          
1996 7,727 25,972 9,376 6,298          
1997 7,406 26,752 8,679 5,647          
1998 6,769 24,685 7,728 5,646          
1999 6,844 24,163 7,635 5,678          
2000 6,715 21,281 7,976 5,789          

물질

물질의 종류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물질이라 한다.
해녀의 물질 방법은 해녀 바다까지 배를 타고 나가 작업하는 '벳물질'과 갯바위에 연이어 있는 바다에서 직접 조업하는 '물질'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물질'을 '덕물질'이라고도 한다.
해녀바다가 갯가에 연이어 형성되었으면 작업장으로 이동하기 위한 다른 보조 수단이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환경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제 삼의 수단을 강구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이뤄진게 '벳물질'이다.

바다까지 배를 타고 나가 작업하는 뱃물질하는 해녀의 모습과 배의 모습

무엇을 생산하는 작업인가에 따라 물질방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물질'을 하는 곳에서도 밑거름으로 쓸 듬북 등의 해조류를 채취할 때는 배를 띄우고 조업을 한다.
해녀의 물질에 이용되는 배를 '해녀배'라고 통칭한다. 바닷가마을 어디나 다 배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 바로 앞이 해녀바다인 경우는 주로 '물질'을 한다. '물질'을 하면서 또 '벳물질'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해녀계층은 그 기량에 따라 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으로 구분되는데, 상군은 작업기량이 뛰어난 해녀를, 중군은 보통기량의 해녀, 하군은 기량이 떨어지는 해녀를 말한다. 상군 가운데도 특출하게 뛰어난 해녀를 대상군(大上軍)이라 한다.

지역에 따라 잠수의 기량으로 물질의 종류가 결정되기도 한다. 가파도에서는 '물질'을 '덕물질'이라고 하는데, '덕물질'은 물질기량이 얕은 신참잠수나 '톨파리 잠수'가 주로 하고 이들을 '덕잠수'라고 부른다. 또 하군의 해녀들을 '수'.'녜'라고도 부르는데, '수'는 바닷가 얕은 곳에서나 물질하는, 이른바 '물질'이나 치르는 해녀라는 뜻이다. 노련한 해녀들은 '벳물질'을 한다.

잠수기법

해녀들이 물질하는 것을 ‘나잠어법’이라고 하는데, 나잠(裸潛)이라는 말은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해녀들은 잠수복을 착용하고 수심 10m 이내의 연안 어장에서 물 속에 잠수하여 빗창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소라, 전복, 성게, 해조류, 홍합 등을 채취한 후 부상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해녀들은 물질에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인 ‘테왁’과 ‘망시리’를 사용한다.
테왁은 작업장소까지 헤엄쳐 갈 때 가슴을 얹고 헤엄치기도 하고, 물질을 반복할 때 물 밖에서 숨을 고를 때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채취한 것들은 테왁에 달린 망시리라는 그물주머니에 넣어둔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

해녀들의 물질 기량은 대대로 세습되는 것도, 갑자기 숙달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수련에 따를 뿐이다. 선천적 또는 유전적 소질로 말미암아 태어날 때부터 기량을 몸에 지니고 태어난 이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에서 살면서 거듭거듭 꾸준하게 익혀온 반복 훈련의 결과인 것이다.
해녀들은 '하군'에서 출발, '상군'이 되었다가 다시 '하군'으로 회귀되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중군'이 되었다가 미처 '상군'도 되어보지 못하고 '하군'으로 회귀해 버리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군 해녀들은 일반 다른 해녀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깊은 바다 속까지 물질을 한다. 동네 전체 해녀가 25명이라면 이중 깊은 바다밭까지 나가 작업하는 해녀는 5명 내외다. 망망대해 깊은 바다밭을 찾아가는 데는 그만한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멀고 깊은 바다밭을 찾아가는 지혜가 바로 '가늠'과 '헛숨'이다. '가늠'은 바다 위에서 자신이 위치한 곳을 알아내는 기술을 말하고, '헛숨'은 자맥질하여 바다밭의 위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여 찾아내는 것이다. '가늠'만으로 바다밭이 찾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헛숨'이 필요하며 '헛숨' 한번만으로 바다밭을 찾는 일은 흔치 않다.
제주 해녀들은 바닷물 속 15~20피트에서 물질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재래복을 입고도 22m까지 무자맥질한다.
나잠(裸潛) 기술자들은 바람에 대한 인지력도 키워둬야 한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어로활동이 가능한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방향 그 반대쪽이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의지가 되기 때문에 해녀들은 그런 곳으로 가 일한다. 그리고 바람이 의지되는 곳에 조류 조건까지 맞아떨어지면 작업하기에 썩 좋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작업을 포기해야 하는 수도 있다.
조업은 보통 수심이 얕아진 조금 때 하며, 보통 15명 정도의 해녀들이 연안의 조업구역에서 무리지어 한다. 잠수시간은 해녀의 폐활량에 따라 다르나 보통 1분 내외이나 2분 남짓 잠수하는 해녀도 있다. 한 번 잠수 후 물 위에서 테왁을 잡고 휴식을 취하는데, 그때 숨을 고르며 내는 소리가 '숨비소리'다.

나잠어법
영상재생
제주해녀의 잠수기법 중 나잠어법을 표현한 영상으로 잠수장비없는 전통해녀복을 입은 해녀가 바다 깊숙히 잠수를 하여 소라를 캐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영상입니다.

해녀문화

출가해녀

출가물질이란 제주해녀들이 제주특별자치도 밖으로 나가 물질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배꼈물질(바깥물질)' 이라고도 하며, 한반도로 출가물질 나가는 것을 따로 '육지물질'이라고도 했다. 예로부터 제주 해녀들은 제주특별자치도 연안뿐만 아니라 한반도 연안 곳곳과 동북아시아 일대를 자신들의 활동무대로 삼았다.
출가물질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집단적으로 물질을 나간 것은 19세기 말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 해녀들의 출가는 처음 부산 지역이었으나 점점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갑오경장(1894년)을 전후하여 해조류의 효용도가 높아지면서 부산 일대에 해조상이 많이 생겼고, 해조상들이 직접 제주로 와서 해녀들을 모집해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1937년에 펴낸『제주도세요람(濟州道勢要覽)』을 보면 그 해 3월 말 현재 한국 각 연안에는 2801명이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경상남도에 1,650명, 경상북도 473명, 전라남도 408명, 충청남도 110명, 강원도 54명, 황해도 50명, 함경남도 32명, 전라북도 19명, 함경북도 5명으로, 경상남도 일대로 출가한 해녀수가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디보스톡 출가해녀 얼굴사진
브라디보스톡 출가해녀(용담)
마라도 (일본출가해녀)얼굴 사진
마라도 (일본출가해녀)
 

제주해녀들이 섬 바깥으로 물질 나갈 때에는 돛단배와 발동선ㆍ기선 등을 이용했으며, 출가지역의 민가의 방을 얻어 생활했다. 민가가 없을 경우는 나무를 베어다 임시로 오막살이를 만들어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출가해녀들은 먼바다로 나가 여러 날 동안 배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물질하는 '난(나가다,出)바르(바다,海)'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한 배에서 생활하는 해녀들을 일컬어 '벳수'라 한다. '난바르'에 반해 가까운 곳에서 치르는 물질을 '앞바르'라고 한다. '난바르'를 할 때의 채취물은 주로 전복과 소라 등의 패류였다. 난바르는 보통 한 곳에서 물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치러졌다. 식사시간과 불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물질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해녀들에게는 상당히 고달픈 작업이었다.
출가물질을 나간 제주 해녀들은 물질 나간 지역의 해조상 등에게 착취를 당하거나, 난바르처럼 힘든 물질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해녀들이 출가물질을 나가는 까닭은 목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라는 공간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목돈마련이 쉽지 않았다. 그만큼 제주에서의 생활이 힘들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해녀들은 힘든 출가물질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고생은 심하더라도 답답한 섬 생활을 벗어나 홀가분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해녀들에게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찾아내고 열심히 생활하는 제주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주 해녀들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마도, 동경, 고지 등지와 중국의 칭따오(靑島)나 따리엔(大運),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진출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에 나가는 해녀들은 분명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돈을 마련하려는 제주해녀들은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바다를 개척해 나갔다. 해외 출가는 보통 3월에 나가 8월에 돌아왔으며, 테왁, 빗창 등의 도구들과 식량을 넉넉히 챙겨가서 불필요한 낭비를 막았다. 출가물질을 통해 제주해녀들의 개척정신과 절약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제주해녀의 한반도 출가실태 (단위 : 명)
제주해녀의 한반도 출가실태
연도별 경남 경북 전남 강원 기타
1962 4,090 1,356 1,584 232 787 131
1963 2,215 696 1,320 71 71 3
1964 2,071 378 1,354 108 108 66
1965 1,538 258 1,049 56 56 62
1966 1,903 338 1,103 143 143 131
1967 1,909 788 635 248 248 109
1968 1,093 159 654 84 84 115
1969 1,167 457 216 282 282 67
1970 1,023 239 85 188 188 511
1971 1,230 302 126 284 284 352
1972 917 264 249 158 158 142
1973 867 254 199 238 238 112

※ 자료: 제주도『한국의 해녀』(1999)에서 재인용

일본 물질

제주 해녀들이 언제부터 일본으로 물질을 나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으로 보아 5세기 이전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하지만 일본물질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로 보여지며, 광복 전까지는 해마다 1500∼1600명이 일본으로 나갔었다.
1937년 발행된『제주도세요람(濟州道勢要覽)』의 내용을 보면, 일본출가 제주 해녀수는 1,601명이었다, 대마도 750명, 정강(靜岡) 265명, 동경(東京) 130명, 장기(長崎) 65명, 록아도(鹿兒島) 55명, 천엽(千葉) 51명, 덕도(德島) 50명, 애원(愛媛) 10명, 도근(島根) 10명이었다.
일본물질의 특징으로는 제주도에서 사용하는 해녀도구를 가져가지 않고, '담뿌'라고 하는 부통(浮桶)을 사용했다. 부통은 북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그 밑에 그물주머니가 달려있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물질을 '담뿌물질'이라고 했다. 담뿌 대신 널빤지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때는 '이다아마(판해녀,板海女)'라 불렀다.

중국 물질-칭따오(청도,靑島), 따리엔(대련,大連)

다른 곳과는 달리 칭따오는 제주도 사람인 문씨가 미역을 옮겨가 의도적으로 개척한 곳으로 문씨가 어업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곳에 비해 현지인과 관리들이 우호적이며 물질도 편했다고 한다.
제주의 상군 해녀들은 보통 5월에 칭따오에 가서 8월에 돌아오곤 했다. 수입이 상당히 괜찮았던 것으로 보이며, 제주 해녀들이 캐는 미역의 양이 많아서 산동성(山東省) 일대에서의 미역 수입이 중단되기도 했었다.
칭따오로 간 해녀들이 미역을 캔 것에 반해, 따리엔으로 나간 해녀들은 우뭇가사리나 미역을 캐지 않고 오직 전복만을 땄다. 따리엔의 전복은 그 크기가 자잘했다고 한다. 칭따오나 따리엔으로 물질간 해녀들은 식량과 테왁, 빗창만 챙겨 갔으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 따리엔에는 해녀가 없었고 어설픈 모습으로 물질하는 남성들이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물질-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로 물질을 나갔던 해녀는 다른 곳에 비에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출가했던 해녀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여름철에도 눈이 쌓여있을 정도로 무척 추웠으며, 여기서는 주로 다시마를 채취하였는데, 이곳의 다시마는 그 크기가 무척 커서 배로 끌어올리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래가 많아 고래와 마주치는 일이 많았는데, 배가 기우뚱거리는 등 곤혹을 치렀다. 그럴 때마다 쌀을 한지에 싼 '지'를 바닷속으로 던지곤 했다고 한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물질을 살짝살짝 치르도록 인솔자가 당부하곤 했는데, 당시의 입어권(入漁權)이 비정상이었는지, 임시방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드림

해녀는 바다에서 물질 하는 것을 생활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바다는 해녀들에게 해산물을 제공하지만 목숨을 앗아가는 위험들이 산재한 곳이기도 하다. 해녀들의 신앙의지는 다른 곳에 비해 각별할 수밖에 없다.
해녀사회의 신앙을 살펴보면 개인의례와 집단의례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의례는 정초에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택일해서 새벽에 바닷가로 나가서 빈다든가, 집안에서 치성 드리거나, 용왕에게 빌거나, 할망당에 치성을 드리는 것 등을 말한다. 집단의례로는 마을 단위로 치러지는 무혼굿ㆍ영등굿ㆍ수굿이 있다.

할망당의 모습

※ 할망당 : 제주어에서 '할망'은 할머니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신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할망당은 여신의 집이라 하겠다.

지드림

제주 해녀들은 한 해가 시작돼 처음 물질 나갈 때 쌀을 한지에 싸서 바다에 던지는 의식행위를 한다. 이를 두고 '지드림'이라 한다. '지드림'은 조업의 안전과 채취물의 풍요를 위해 요왕(용왕(龍王))에게 드린다. '지'는 요왕할망과 요왕하르방의 몫인 '요왕지'와 자신의 몫인 '몸지'가 있다. '요왕지'는 '요왕할망지'와 '요왕하르방지'로 나눠 진다.

지드림 하는 모습
보통 해녀들은 '요왕할망지'와 '몸지'만 마련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요왕하르방지'도 같이 마련하기도 한다. 한 해녀가 '요왕할망지'와 '몸지'만 마련하고 요왕할망과 하르방에게 전복을 많이 캐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요왕하르방이 요왕할망에게 "'지'를 받지 못한 자신은 상관없는 일"이라며, 그 해녀를 외면했다고 한다.
이렇듯 제주 해녀들은 한 해의 첫 물질을 시작하기 전과 출가물질을 나가 첫 입어(入漁)할 때, 그리고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위험한 상황이 부닥치면 요왕에게 '지드림'을 한다. '지드림'을 할 무렵 근처에서 해녀사고가 있었다면 그 해녀 몫의 '지'도 함께 마련 한다.
 

무혼굿

제주특별자치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있어 예로부터 농사와 더불어 어업에 종사해 왔다. 바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액사한 영혼을 위해 치러지는 굿이 바로 무혼굿이다.
무혼굿은 옥황상제 이하 모든 신, 특히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신에게 영혼의 구제를 간절히 빌고, 바다를 떠도는 넋을 건져내고, 그 시체의 행방도 찾아내고, 그래서 빠져죽은 원한의 영혼을 위무하여 정상적 죽음의 영혼으로 환원시켜 놓은 후, 저승으로 곱게 보내는 절차를 취하는 굿이다. 간절하고 애절한 양상을 띤다.
무혼굿은 한문지식이 풍부한 이에게 가서 택일한 후, 제주(祭主)가 심방(무당)에게 굿을 의뢰한다. 이때 언제 어떤 사고로 빠져죽은 영혼이며, 그 윗 조상들이 천도를 위한 굿(시왕맞이)을 했는지 여부 등 집안의 사연을 알린다. 이는 굿의 규모를 정하고 준비를 하는 데 필요하다. 의뢰를 받은 심방은 제주와 상의하여 굿의 규모를 정하고 준비사항을 알려 준다.
제주는 굿 날짜 3일 전 집에 금줄을 쳐 부정을 막고 준비에 들어간다. 폐백·다리 등으로 쓸 광목, 지전, 기메 등을 만들 창호지와 백지와 제물을 준비한다. 그 준비물의 양은 굿의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무혼굿 현장사진

무혼굿은 규모에 따라 큰굿과 작은굿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집안 사정에 따라 선택한다. 큰굿으로 하는 경우는 1만 8천 신을 모셔서 4일 이상 굿을 한다. 작은굿으로 하는 경우는 개별적인 굿은 생략하고 꼭 필요한 의례만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2일 정도면 된다. 무혼굿은 큰굿이든 작은굿이든 간에 '초감제→추물공연→요왕맞이→시왕맞이→도진→영가루침'의 기본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1. 초감제 : 무혼굿의 맨처음 하는 제로 영그릇을 바닷물에 담가 넣어 시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이라도 건져 올리도록 조치한 후, 무속의 모든 신을 청하여 망인의 시체를 건지게 해 주고, 그 영혼을 저승으로 곱게 보내 주도록 비는 제차(祭次)다.
  2. 추물공연 : 모든 신들을 청하였으니 차려놓은 음식을 잡수시라고 노래하는 제차이다.
  3. 요왕맞이 :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과 그 차사를 바닷길을 치워 닦아 청해들이고, 망인의 시체를 돌려주고 고이 저승으로 가게 해 주도록 빌며, 동시에 망인의 혼을 불러들이는 순서이다.
  4. 시왕맞이 : 저승을 관장하고 있는 시왕과 그 사자인 차사를 청해서 영혼을 저승의 극락으로 고이 데려가 주도록 비는 제차이다. 이때, 용왕에게 망인의 영혼을 시왕에게 넘겨주도록 합의시키고, 바다에서 헤매는 넋을 건져 정상적인 죽음으로 온전히 환원시킨 후, 저승의 험한 길을 치워 닦아 영혼을 저승으로 고이 보내는 것이다.
  5. 도진 : 이 굿당에 모셨던 신들을 돌려보내는 제차로 신들에게 돌아가시라고 북과 장고를 치며 복창한다
  6. 영가루침 : 무혼굿의 마지막 순서로 죽은 영혼의 환생여부를 알아보는 제차다. 술과 쌀가루를 이용하며, 천당으로 가서 청나비, 청새로 환생할 수 있길 기원한다.

영등굿

<영등굿놀이>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는 ‘연등제(燃燈祭)’ 또는 ‘약마희(躍馬戲:말뛰기 놀음)’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월 초하룻날 제주특별자치도의 귀덕, 김녕, 애월 지방에서는 열두 개의 나무 장대(목간(木竿))를 세우고 신을 맞아서 제신을 즐겁게 하기위해 긴 나무 장대 끝에다 색채 비단으로 말머리 같이 꾸며 가지고 말뛰기 놀음을 한다. 밤에는 등불을 매달아 켜므로 이 제를 영등굿(연등제(燃燈祭))이라고 하며 초하루에 시작하여 보름날에 마치는 것이다."
아직도 제주 해안마을에서는 2월이 되면 이 영등굿을 성대하게 치른다. 그러나 광복 전까지는 산간마을에서 치러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영등굿은 무당에 의해 해산물의 풍요를 비는 풍어제로써, <영등굿>,<잠수굿>,<해신제>,<해녀굿> 등이 이 계열의 행사이다. 영등신은 외래신이며, 2월 초하루에 강남천자국 또는 외눈배기섬으로 들어와 2월 보름날 소섬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영등신이 제주특별자치도에 머무는 동안 해산물의 씨를 뿌려준다고 신앙민들은 믿었다.
영등신은 바다의 신이며 바람의 신이고 해상안전, 풍어, 해녀채취물의 증식 보호신의 성격을 가진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영등신을 ‘영등’ 또는 ‘영등할망’이라고 부르지만, 가끔 ‘영등하르방’ 등의 남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영등굿하는 모습

영등굿은 영등신이 들어오는 2월 초하루에 시작되는데, 이날은 영등을 맞이하는 영신제라고 하여 아침 4~5시 경 간단하게 치른다. 그러나 영등을 떠나보내는 송신제는 매우 성대하게 행하며, 배를 가진 선주의 부인들과 해녀들이 대거 참여한다. 송신제의 마지막에 볏짚으로 만든 배에 오색 단장을 하고, 갖가지 제물을 조금씩 실어 먼바다로 띄워 보낸다. 이것은 영등할망이 떠난다는 표시이며, 동북풍이 불면 영등의 넋이라고 한다. 영등굿을 하는 기간 동안에 날씨가 맑으면 옷 벗은 영등이, 비가 오면 우장 쓴 영등이, 추우면 옷을 치레한 영등이 왔다고 한다. 날씨가 맑으면 딸을, 날씨가 궂으면 며느리를 데리고 들어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으로 일년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영등굿 기간에는 금기사항이 많았다. 빨래를 해서 밖에 널면 옷에 벌레가 생기고, 농사를 지으면 흉작을 면하지 못하고,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은 보말이나 소라 등을 잡으면 속이 텅 비어 있는데, 이는 영등이 모두 먹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기간에는 해산물도 잡지 않았다.
제주특별자치도의〈영등굿>에는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굿, 조천읍 북촌리 영등굿, 조천읍 함덕리 영등굿, 구좌읍 김녕리 잠수굿, 구좌읍 하도리 영등굿, 구좌읍 세화리 영등굿, 성산읍 오조리 영등굿, 성산읍 수산리 영등굿, 성산읍 신양리 영등굿, 성산읍 온평리 영등굿, 구좌읍 우도면 영등굿, 안덕면 사계리 잠수굿 등이 있다. 영등굿의 제차(祭次)는 마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해녀들의 안전과 해조류의 증식을 비는 대목이 많다. 영등굿의 한 가지인 칠머리당굿의 제차를 살펴보면 초감제→본향듦→요왕맞이→마을 도액막음→씨드림→배방선→도진 등으로 진행된다.

잠수굿

잠수굿은 영등굿의 일종으로 물질이 극성스러운 해안마을에서 '수굿','녜굿','해녀굿'등으로 일컬으며 따로이 치르는 굿이다. 이 굿도 영등굿과 마찬가지로 해녀들의 안전과 채취하는 해산물의 등풍(登豊)을 기원하는데, 채취물의 등풍이 해안마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에 이 굿을 마을의 주요 행사로 여겼다.
김녕리잠수굿 모습
 

물질을 극성스럽게 치르는 대표적인 마을이 김녕리이다. 다른 마을에서의 '잠수굿'은 음력 2월 '영등굿'과 함께 하거나 해녀들끼리만 조촐하게 치른다. 하지만 김녕리의 '잠수굿'은 예로부터 마을의 전통 굿으로써, 요왕문이 열리는 음력 3월 8일 해녀탈의장 근처 '사계알(굿터 이름)'이라는 곳에서 치러진다. 김녕리 잠수굿은 문순실 심방 주관으로 아침 9시경부터 저녁 5시에 이르기까지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종일 굿판을 벌인다. 잠수굿은 촌락공동제면서 마을의 축제적 성격도 띠고 있다.
김녕리 해녀들은 음력 3월 초부터 몸을 정갈히 하고, 굿 시작일 3∼4일 전에 모두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여 제물을 준비한다. 마을·기관·단체·학교는 물론 선주, 마을 유지들이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열명서'를 올리는데, 다른 의례들과는 달리 남성들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할 수 있다. 굿이 끝날 때쯤 요왕상에 올렸던 제물들을 자루에 넣어 바다에 던지는데, 이를 ‘지들인다’고 한다. 굿의 마지막에는 해녀들이 좁씨를 바다에 뿌려 한해의 풍년을 기원한다.
잠수굿은 김녕리 외에도 용왕제라는 이름으로 안덕면 사계리, 성산리 등지에서도 치러진다.

해녀노래

수질 는 해녀들이 물질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해녀노래'라고 한다. '해녀노래'를 제주에서는 <해녀벳 노래>,<해녀질 노래>,<해녀질 소리>,<해녀질는 소리>,<녜(녜) 소리>,<녀질소리>,<녀질는 소리>,<수 소리>,<수질 소리>,<수질는 소리>,<물질는 소리>,<네 젓는 해녀노래>,<네 젓는 해녀뱃노래> 등으로도 말한다.

해녀의 물질은'물질'과 '벳물질'로 나눌 수 있다. 테왁 위에 가슴을 얹고 '물질'할 곳까지 헤엄쳐 가는 동안 해녀들은 해녀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벳물질'을 할 때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물질할 곳까지 가면서도 해녀들은 노를 저으면서 해녀노래를 불렀다. 해녀노래는 즉 해녀들의 노동요인 것이다.
해녀노래는 보통 두 마디를 짝으로 부르며, 하나의 음에 여러 개의 사설(가사)을 가진다. 해녀노래는 독창 혹은 2인 이상의 선후창과 교환창으로 불려진다. 교환창인 경우는 사설(가사)을 서로 번갈아 가며 부르며, 선후창인 경우는 선소리에 동조되는 훗소리(후렴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노래를 하면서 테왁과 빗창을 가지고 장단을 치면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해녀노래에는 '어어도 사나', '이어 싸', '이여 싸나', '어기 여라' 등의 후렴이 등장하는데 노동을 할 때 힘을 내기 위한 표현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고 김영돈 박사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래는'해녀노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에도 해녀노래가 있기는 하지만 노동을 하거나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래는 아니라는 것이다.
해녀노래는 언제부터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제주 해녀들에게 구전(口傳)으로 계속 이어져 왔다. '해녀노래'는 제주해녀들의 삶의 노래이며, 제주특별자치도만의 독특한 구전문학인 것이다. 그리고 제주와 바다, 제주와 해녀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에, 해녀노래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가장 폭넓은 공감대를 이루는 민요라고 할 수 있다.
'해녀노래'의 내용을 보면, 제주해녀들의 삶이 고되고 비극적인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힘든 삶을 극복하려는 제주해녀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을 엿볼 수 있다.
해녀노래에는 해녀의 생활전반에 걸친 내용이 가사가 되는데, 해녀들의 고된 삶과 물질에 대한 내용이 많다. 여기서는「해녀 작업 출발의 노래」,「해녀 작업의 노래」,「해녀 출가의 노래」,「출가생활의 노래」,「사랑노래」,「해녀들의 서정」이 담긴 해녀노래를 소개한다.

해녀 작업 출발노래
해녀작업출발노래
제주말 이여싸나 이여싸나 / 요네젓엉 저가게 / 우리베는 잼도재곡 / 의베는 뜸도 뜨다 / 수덕좋고 제수좋은 / 우리베야 저가게 / 멩지바당 실불라
표준말 이여싸나 이여싸나 / 요 노 저어서 어서 가자 / 우리 배는 재기도 하고 / 남의 배는 뜨기도 하다 / 수덕 좋고 재수 좋은 / 우리 배야 어서 가자 / 명주바다 실바람 불어라
해녀작업출발노래
제주말 짱으랑 집을 삼앙 / 눗고개랑 어멍을 삼앙 / 요 바당에 날 살아시민 / 어느 바당 길릴웨시랴 / 총각 차라 물에 들게 / 양식 차라 섬게 가게 / 우리 선관 가는 듸랑 / 메역 좋은 여 끗으로 / 의 선관 가는 듸랑 / 감테 좋은 홍동개로 / 요 벨 고 어딜 가고 / 진도 바당 골로 간다 / 소섬으랑 지둥 삼곡 / 청산으랑 문을 곡 / 한두물에 물밀어 오듯 / 새끼 청산 누울린다 / 물은 점점 들어 가곡 / 저 리 듸가게 / 숨이 랑 호이 치멍 / 저 리 듸가게
표준말 모자반덜일랑 집을 삼아 / 놀고갤랑 어머닐 삼아 / 요바다에 내 살았으면 / 어느 바다 길 잃었으랴 / <총각>차라 물에 들자 / 양식 싸라 섬에 가자 / 우리 <선관> 가는 델랑 / 미역 좋은 여섬 끝으로 / 남의 <선관> 가는 델랑 / <감테> 좋은 <홍동개>로 / 요벨 타고 어딜 갈꼬 / 진도 바다 골로 간다 / 소섬(우도)일랑 기둥 삼고 / 청산(성산 옆 지명)일랑 문을 달고 / 한두 물에 물 밀려오듯 / 작은청산 울린다. / 물은 점점 들어 가고 / 어서 빨리 가에 가자 / 숨이 짧아 <호이> 치며 / 어서 빨리 가에 가자
해녀작업출발노래
제주말 요바당의 요야개 / 날주어시민 어느바당 / 어듸라도 걸릴것가
표준말 요 바다에 요 모자반 모가지 / 날 주었으면 어느 바다 / 어디라도 걸릴 것인가
해녀 작업의 노래
해녀 작업의 노래
제주말 이여싸나 이여싸나 / 너른바당 앞을재연 / 질두질 들어가난 / 홍합대합 비쭉비쭉 / 미역귀가 너훌너훌 / 미역에만 정신들연 / 미역만 단보난 / 숨막히는중 몰람고나
표준말 이여싸나 이여싸나 / 너른바다 앞을 재어 / 한 길 두 길 들어가니 / 홍합 대합 비쭉비쭉 / 미역귀가 너울너울 / 미역에만 정신들여 / 미역만 하다보니 / 숨 막히는 줄 모르는구나
해녀 작업의 노래
제주말 너른 바당 앞을 재연 / 질두질들어 가난 / 저승 질이 왓닥 갓닥 / 탕 댕기는 칠성판아 / 잉엉 사는 멩정포야 / 못 일이 요일이여 / 모진 광풍 불질 말라 / 유리잔을 눈에다 부치곡 / 테왁을 가심에 안곡 / 무쉐 비창 손에 찌곡 / 지픈 물속 들어 보난 / 수심 북 하서라 마는 / 내숨 란 못여라 / 구쟁기랑 잡거들랑 / 닷섬만 잡게곡 / 전복일랑 잡거들랑 / 여든 섬만 잡게 서 / 못사는 우리 팔 / 번 아주 고쳐 보게
표준말 너른 바다 앞을 재어 / 한길 두길 들어 가니 / 저승 길이 오락 가락 / 타고 다니는 칠성판아 / 이고사는 명정포야 / 못할 일이 요 일이네 / 모진 광풍 불지 마라 / 유리안경 눈에다 붙이고 / 테왁을 가슴에 안고 / 무쇠비창 손에 끼고 / 깊은 물속 들어 보니 / 수심 점복 많더라마는 / 내 숨 짧아 못하더라 / 소랄랑 잡거들랑 / 닷섬만 잡게 하고 / 전복일랑 접거들랑 / 여든 섬만 잡게 하오 / 못사는 우리 팔자 / 한번 아주 고쳐보게
해녀 작업의 노래
제주말 혼벡상지 등에다지곡 / 가심앞이 두렁박차곡 / 손에 빗창을줴곡 / 손에 호미를줴곡 / 질두질 수지픈물속 / 허위적허위적 들어간다
표준말 혼백상자 등에다 지고 / 가슴 앞에 두렁박차고 / 한 손에 빗창을 쥐고 / 한 손에 낫을 쥐고 / 한 길 두 길 깊은 물에 / 허위적허위적 들어간다
해녀 출가의 노래
해녀 출가의 노래
제주말 이랑 밥으로 먹고 / 구룸으로 똥을 싸곡 / 물절이랑 집안을 삼앙 / 설룬어멍 떼여 두곡 / 설룬아방 떼여 두곡 / 부모 동슁 이벨곡 / 한강 바당 집을 삼앙 / 이업을 라곡 / 이내 몸이 탄생든가 / 성산 일출 려 두곡 / 소완도로 가는 구나 / 완도 지방 넘어 가근 / 신기 도영 넘어 가곡 / 금당아로 넘어 가근 / 저 큰 바당 다 지나곡 / 지누리대섬 넘어가근 / 나라 도로 건당 다 / 뽕돌 바당 지나본다 / 돌산을 넘아 가근 / 솔치 바당 건너 간다 / 솔치 바당 건너 가민 / 남해로다 노양목 / 사랑도 바당 넘어간다 / 물파랑것도 지나 가근 / 지제 장심포 넘어 가곡 / 가닥동끗 지나 가민 / 등바당을 넘어 간다 / 다대 끗은 넘어 가민 / 부산 영도 이로구나
표준말 바람일랑 밥으로 먹고 / 구름으로 똥을 싸고 / 물결일랑 집안을 삼아 / 설운 어머니 떼어 두고 / 설운 아버지 떼어 두고 / 부모 동생 이별하고 / 한강바다 집을 삼아 / 이 업을 하라 하고 / 이내몸이 탄생하던가 / 성산일출 버려 두고 / 소완도로 가는 구나 / 완도지방 넘어가서 / 신기도영 넘어가고 / 금당아로 넘어가서 / 저 큰바다 다 지나고 / 지누리대섬 넘어가서 / 나라도를 넘어가고 / 뽕돌바당 지나본다 / 돌산을 넘어 가서 / 솔치바당 건너 간다 / 솔치바당 건너 가면 / 남해로다 노량목 / 사랑도 바당 넘어 간다 / 물파랑 것도 지나 가서 / 지제 장심포 넘어 가고 / 가당동끗 지나 가면 / 등바당을 넘어 간다 / 다대끗을 넘어 가면 / 부산 영도 이로구나
해녀 출가의 노래
제주말 성산포야 잘이시라 / 멩년이철 춘삼월나민 / 살아시민 상봉이여 / 죽어지민 영이벨이여
표준말 성산포야 잘 있거라 / 명년 이 철 춘삼월 나면 / 살았으면 상봉이네 / 죽어지면 영 이별이네
해녀 출가생활의 노래
해녀 출가생활의 노래
제주말 진도 바당 수지픈 물은 / 청룡 황룡 노는 듯 다 / 청룡 황룡 아니논 물엔 / 용인드끼간 라앉암서라 / 부산이라 정거장엔 / 앞으로 보민 오륙도여 / 뒤로 보민 소낭밧이여 / 어느 제민 저디나 가리 / 길딀보난 멀고 지고 / 어느제나 저딜 가리
표준말 진도 바다 깊은 물은 / 청룡 황룡 노는 듯 하다 / 청룡 황룡 아니 논 물엔 / 용인듯이 갈앉고 있더라 / 부산이란 정거장엔 / 앞으로 보면 오륙도네 / 뒤로 보면 소나무 밭이네 / 언제면 저기나 가리 / 갈델 보니 멀어지고 / 언제나 저길 가리
해녀 출가생활의 노래
제주말 어느제나 나민두어 / 죽장 시백인물질 / 철장영 어정칠월 / 동동팔월 돌아오민 / 폿짐설렁 내고장가리
표준말 언제나 나면은 / 한 달 줄곧 때 정한 해녀질 / 거둬 꾸려 어정칠월 / 동동팔월 돌아오면 / 봇짐 챙겨 내 고장 가리
사랑노래
해녀 출가생활의 노래
제주말 길주명천 가문포장시 / 어두우면 어디로가리 / 옥녀신녀 방으로가라 / 산지물광 가락쿳물도 / 듸놀젠 언약일러라 / 가건아니 올님이어든 / 언약이나 말아근가라
표준말 길주와 명천에서 온 가문포 장사야 / 어두우면 어디로 갈거나 / 옥녀 신녀 방으로 가라 / 산지 물과 가락쿳 물도 / 함께 놀려고 언약인데 / 가건 아니 올 님이거든 / 약속이나 말아서 가라
해녀 출가생활의 노래
제주말 서산에 뜬건 / 보기나 좋건만는 / 요내 가심에 뜬 건 / 어느 누게 알아 주고 / 노랑동 머리 뒤범벅 상통 / 언재믄 커낭 내낭군 삼으코 / 남포등 짜리 왜수건 짜리 / 언제믄 내 낭군 삼으코
표준말 서산에 달 뜬건 / 보기나 좋건 마는 / 요내 가슴에 달 뜬건 / 어느 누고 알아 줄꼬 / 노란머리 뒤범벅 상투 / 언제면 커나 내낭군 삼을꼬 / 남포든 짜리 왜수건 짜리 / 언제면 내낭군 삼을꼬
해녀 출가생활의 노래
제주말 가다오다 만난님은 / 굴묵낭정반에 모펌벅 / 예문예장 디린님은 / 은낭푼에 펌벅
표준말 가다 오다 만난 임은 / 느티나무 쟁반에 메밀범벅 / 예문 예장 드린 임은 / 은 양푼에 찹쌀 범벅
해녀들의 서정
해녀 출가생활의 노래
제주말 이여싸나 이여싸나 / 우리부모 날날적의 / 해도도 엇일적의 / 나를낳아 놓아싱가 / 어떤사름 팔제좋앙 / 고대광실 노픈집의 / 진담뱃대 물고앚앙 / 랑방에 을자리 / 해녀팔젠 무신팔제라 / 혼벡상지 등에지곡 / 푸린물속을 왓닥갓닥
표준말 이여싸나 이여싸나 / 우리 부모 날 낳을 적에 / 해도 달도 없을 적에 / 나를 낳아 놓았는가 / 어떤 사람 팔자 좋아 / 고대광실 높은 집에 / 긴 담뱃대 물고 앉아 / 사랑방에 잠을 자리 / 해녀 팔잔 무슨 팔자라 / 혼백상자(魂帛箱子) 등에 지고 / 푸른 물 속을 오락가락
해녀 출가생활의 노래
제주말 서른 어멍 날 날적의 / 헤도 달도 읏인 날에 / 나를 낳아 놓아싱가 / 나 일롬을 불르지 말라 / 나 일롬을 불러나 보난 / 죽 죽 눈물이라라 / 어젯날은 성탄몸에 / 오날 빙이드난 / 불르는 건 어멍이곡 / 는 것인 냉수로고나 / 남도 나난 년에 낳곡 / 듦도 드난 집에 드난 / 싸움 끄친 를이 엇언 / 먹음도 씸도 늬로 신물남고나
표준말 설운 어머니 날 낳을 적에 / 해도 달도 없는 날에 / 나를 낳아 놓았는가 / 내 이름을 부르지 말라 / 내 이름을 불러나 보니 / 글썽글썽 눈물이더라 / 어젯날은 성하던몸이 / 오늘날은 병이드니 / 부르는건 어머니고 / 찾는 것은 냉수로구나 / 나기도 하니 한해에 나고 / 들기도 하니 한집에 드니 / 싸움 그친 하루가 없어 / 먹기도 쓰기도 너로하여 신물나는구나
참고문헌
  • 제주도(2004),『2004년도 해양수산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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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1993),『제주의 민속(1)』
  • 현용준.이부영(1992),『제주도 무혼굿』, 열화당
  • 장주근.이보형(1992),『제주도 영등굿』, 열화당
  • 진성기(1981),『남국의 민속』, 교학사
  • 제주도(2001),『제주여성문화』
  • 강대원(1973),『개정판 해녀연구』, 한진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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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이동통신제주지사(1995),『제주의 민요』, 도서출판 탐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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