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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유적지

제주인의 자주적인 대몽항전, 전통적 지배에 대한 저항

삼별초군과 직접 ·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유적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애월포항 1
애월포(涯月浦)
㉠포구유적 :
조천포(朝天浦), 군항포(軍港浦), 도근포(都近浦, 朝貢浦, 外都浦), 애월포(涯月浦), 함덕포(咸德浦), 명월포(明月浦).
㉡성지유적 :
외성(토성), 항파두리성 내성(석성),보조성, 환해장성, 애월목성, 고성천, 소왕천.
㉢진지ㆍ망대유적 :
파군봉(바굼지오름), 극락봉, 안오름, 망이리 동산, 진군(陣軍) 를(陣軍岳), 살 맞은 돌.
㉣생활문화유적 :
성내 건물지(대궐터 외, 3개소), 기와가마터(성내, 성외), 백토 채취장(백토골), 구시물, 오(옹)성물, 장수물, 유수암천, 장털(왓), 고분군, 종신당터(終身堂터), 태산사터(泰山寺터), 소금밭
 

삼별초군 관련 유적지들은 분포지의 위치에 따라 성내와 성외로 구분할 수 있으며, 성외의 유적지들도 포구유적을 제외하면, 주로 항파두리성을 축으로 하여 반경 3Km 범위 내에 포함되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삼별초 집단의 생활은 물론 군사들의 무술훈련, 연합군의 동태와 침입로 관측 활동 등도 항파두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은 삼별초군이 진도 패전 이후에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적은 수의 군사를 효율적으로 배치하여 성 주변지역을 지킴과 동시에, 연합군의 동태와 침입로를 살피려 한 결과라 생각된다. 물론 함덕포, 명월포와 애월목성과 같이 중요한 포구나 성에 일부 군사들이 매복ㆍ점거하여 연합군의 입도를 봉쇄하려 한 곳도 없지는 않으나, 일단 삼별초의 주요 거점지가 항파두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주된 활동장소도 그 주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네 가지 분류의 유적지의 지역적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포구유적 6개중 군항포와 명월포는 삼별초군과 그의 가족들의 입도와 관련되는 포구인 동시에, 물자운반과 군선을 정박시키던 포구이기도 하다. 나머지 4개의 포구는 주로 물자운반과 군선의 정박 등 삼별초군 활동의 시발점이 되는 포구이다. 이들 중 거리상 가장 가까운 포구는 군항포로 약 4.5km이며, 가장 먼 포구는 함덕포로서 약 25km이다. 그리고 가장 서쪽에 위치하는 명월포까지는 대략 22km 정도의 거리이다. 이들 포구는 고려시대에 제주와 육지를 연결하여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기능 외에도 본토를 비롯한 외부와의 교역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되던 중요한 포구였다. 그러나 여러 포구들 중에서도 외부와의 교역에 사용되던 포구는 시기에 따라 변화의 길을 걷게 된다.

성지유적 중 먼저 토성을 보면, 남쪽이 북쪽보다 50여m 정도 높게 되어있어 지형 그대로 성이 축조되어 있다. 토성이 자리한 동~서, 남~북 단면을 보면, 북쪽 토성 부근은 능선의 급경사로 내려가고, 동쪽과 서쪽 여시 급격한 경사면을 둔 하천 절벽에 성벽이 만들어져 있다.

보조성은 삼별초군과 그의 가족 및 추종세력들이 사용하던 식수(용천수), 즉 오(옹)성물과 구시물을 보호하기 위해 북쪽지구의 토성에서 연결되었으며, 구간거리는 약 450m이다. 환해장성(<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장성(古長城)'으로 기록)과 애월목성은 삼별초군의 입장에서는 1차 방어선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환해장성은 애월리, 고내리, 화북동, 함덕리, 북촌리, 온평리, 신산리, 태흥리, 일과리 주변 등에 잘 남아 있으나, 애월목성은 현재 내항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며, 애월초등학교의 서북쪽 울타리가 당시 성벽의 일부이다.

고성천과 소왕천은 앞에서 설명을 했듯이, 항파두리성을 보호하는데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던 동서의 두 하천이다. 토성의 동서방향 지점에서 함정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진지ㆍ망대유적에서는 항파두리성을 중심으로 하여 파군봉이 북쪽, 극락봉이 남쪽, 그리고 안오름이 동쪽에 위치한 오름으로, 지형적 요소를 활용하여 진지를 구축하거나 혹은 적의 동태와 이동로를 감시하는 망대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파군봉은 항파두리성 내성 부근에서 약 3.5km, 극락봉은 약 2km, 안오름은 약 600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특히, 파군봉은 항파두리성과 군항포 사이에 위치하는 해발 85m의 오름으로서 삼별초군의 망대와 진지가 있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유적이다. 파군봉은 비교적 낮은 오름이지만 동서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오름이기 때문에, 동서 방면으로 진격해 오는 여몽연합군의 움직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북쪽 해안에는 삼별초 본대가 입도한 이후 물자운반과 군선정박 등 중요한 포구로 활용하는 군항포가 위치해 있고(약 1.2km 지점), 남쪽으로는 본거지인 항파두리성이 입지해 있기 때문에(내성으로부터 약 3.5km), 파군봉의 중요성은 대단히 높게 평가돼야 할 것이다.

망이리 동산도 삼별초군의 망대가 있었던 곳으로, 안오름의 동남쪽 부근의 구릉지를 가리킨다. 삼별초군이 진(陣)을 쳤던 곳으로 전해지고있다. 살맞은 돌은 삼별초군의 무술 훈련 시에 과녁으로 사용했던 거대한 입석(立石)을 말하며, 항파두리성 남쪽 극락봉 북쪽에 자리해 있다. 과녁으로 사용했던 이 거대한 암석 표면에는 화살촉이 박혔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화살촉은 일제 강점기 말엽까지도 그대로 박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생활문화유적은 말 그대로 주로 의식주와 관련되는 유적지들이다. 토성의 북문 밖 무덤군과 태산사(泰山寺)와 같이 종교활동과 관련되는 유적지 등이다. 그리고 종신당터는 김통정 장군 모친('장모'라는 설도 있음)의 마지막 생애와 연관되는 유적지로서, 유수암리의 마을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성내 건물지는 현재 확인된 것으로는 대궐터 외에 3곳이다. 대궐터는 내성 안 삼별초의 수뇌부가 거주하는 중심 건물지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나머지 3곳은 확실한 용도가 밝혀진 바는 없으나 지표상에서 건물의 기단부와 초석을 비롯하여 기와편, 청자편, 도자기편 및 질그릇편 등이 많이 산포(散布)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군인들의 막사나 일반인의 거주지 또는 각종 물자 보관용 건물이 입지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와가마터는 성내와 성 밖에 1군데씩 분포하는데, 성내의 것은 내성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성 밖의 것은 내성에서 북서쪽으로 약 700m 지점에 위치한다. 당시로서는 짧은 기간 동안에 여러 건물을 짓기 위해 많은 양의 기와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마터 유적을 통해 당시의 정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백토 채취장(백토골)은 안오름 기슭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백토(白土)를 채취한 장소라 전해지는 곳이며 옛 촌로들은 백토골(白土村)로 불렀다고 한다. 성내의 기와가마터(속칭 왜왓) 바로 옆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

오(옹)성물, 구시물, 장수물, 유수암천 및 장털은 물과 관련되는 유적으로서, 이들 중 오성물과 구시물은 항파두리성 내의 아주 중요한 수원으로서 주로 식수용으로 활용한 것, 특히 오성물은 김통정 장군을 비롯한 귀족층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장수물은 소왕천변 암반 위에 형성된 용천수로서, 김통정 장군이 여몽연합군으로부터 몸을 피하면서 뛰어내린 발자국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있다. 유수암천은 삼별초군과 동행해 온 승려들이 처음 발견한 용천수로서, 승려들이 수도생활을 위해 유수암리 절동산 부근에 태암감당(후에 태산사로 확장)이란 암자를 짓고 활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털(왓)은 항파두리성의 안오름 남서쪽 지경에 위치하는 8,s000여 평의 밭으로서, 삼별초군의 주둔 당시는 호수(대형 연못)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움푹 패인 와지(窪地)였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따라서 원래부터 큰 연못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곳의 연못물은 각종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생활용수나 방화수로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소금밭은 애월리(속칭: 배무숭이)와 구엄리(속칭: 소금빌레)사이 해안가에 있는 염전인데삼별초군이 사용한 소금을 생산 하였다고 한다. 1990년대 까지 그 흔적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육상 수조 양식장으로 훼손되어 그 형체를 알 수 없다

  • (구)북제주군(2002),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학술조사 및 종합 기본정비 계획, 북제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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