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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진도와 삼별초

제주인의 자주적인 대몽항전, 전통적 지배에 대한 저항
삼별초군을 그린 그림 1
13세기에 들어와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일대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몽고세력의 흥기였다. 몽고고원의 유목민족인 몽고족은 금의 세력하에 있었는데, 13세기 초엽에 테무진이라는 영웅이 나타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1206년에는 칸(황제)의 지위에 올랐으니, 이가 곧 칭기즈칸이다. 이 때부터 몽고는 사방으로 정복사업을 전개하여 나갔는데, 고려와 몽고가 처음 접촉한 것은 고종 6년(1219)에 고려가 강동성에 있는 거란족을 몽고와 함께 공략하면서이다.
몽고는 거란을 토벌한 후 고려에 대하여 큰 은혜나 베푼 특히 1221년에 사신으로 온 저고여는 몽고 황태자의 지시라 하며 과중한 공물을 요구하였을 뿐 아니라, 그 태도가 오만불손하여 고려 군신들의 불만을 샀다.
 

결국 저고여가 1225년에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압록강 부근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를 빌미로 몽고는 1231년부터 고종 46년(1259) 강화 때까지 전후 7차례에 걸쳐서 고려에 침입하였다.

몽고의 1차 침입을 받고 최우 무신 정권은 강화도 천도를 단행하였다. 강화 정부는 원종 11년(1270) 무인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40년 동안 고려의 전시(戰時) 수도가 되었다. 고려의 강화정부와 고려인들은 되풀이되는 몽고의 침입에 끈질긴 항쟁을 계속하여 국토를 수호해 나갔다. 그러나 항전을 고수했던 최씨 무인정권의 붕괴로 항몽전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였다. 1258년 최의가 문신 유경, 무신 김인후 등에 의하여 제거되자 강화파 문신들의 주장에 따라 이듬해 몽고와의 화의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최씨정권을 무너뜨린 무신 김준이 유경을 제거한 후 스스로 교정별감이 되어 무신정치를 계속하고 몽고와의 강화를 반대하였는데, 이는 원종 9년(1268) 김준을 살해하고 교정별감이 된 임연에 이르러 더욱 노골화되었다. 임연은 친몽정책을 쓴 원종을 폐하고 왕제 안록공 창을 세웠으나 1269년 몽고의 압력으로 곧 원종을 복위시키게 된다. 임연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임유무도 반몽정책을 고수하여 1270년 원종이 몽고세력을 등에 업고 개경환도를 명하자 이를 거부하고 항쟁을 결의하였으나, 반대파에 의하여 피살됨으로써 무신정권은 종식되었다. 고려는 개경환도를 단행함으로써 왕정을 복구하였지만, 삼별초는 개경환도를 반대하고 몽고와 개경정부에 대한 저항을 단행하였다.

개경환도는 몽고에 대한 항복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배중손 등이 이끈 삼별초 군대는 강화도에서 승화후 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개경정부에 반기를 들고 정통 고려정부임을 천명하였다.

  • 김동전 교수(제주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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