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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장군 이야기

영상재생
한라산 서남쪽에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영실기암'이라 부른다. 달리 '오백장군(五百將軍)','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고도 부른다.
그 기암괴석이 어떤때는 장군의 모습을, 어떤 때는 나한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제주도에 한 부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많은 식구로 인해 잡안의 형편이 좋지 못했다.
그러던 중 흉년까지 들게 되어 자식들을 먹이는 일까지 힘들게 되었다. 부인은 고심 끝에 아들들을 불러 양식을 구해 오라고했다.

오백명의 아들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부인은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였다.
아들이 오백이나 되다보니 죽을 끓이는 솥의 크기가 매우 컸다.
부인은 열심히 솥 주의를 돌아다니며 죽을 저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죽 속에 빠지고 말았다.

아들들이 양식을 구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안 계시고, 죽만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배가 고팠던 아들들은 아무 생각없이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아들들은 죽 맛이 평소보다 더욱 좋다고 생각하며 맛있게 죽을 멋었다.

막내아들이 죽을 먹으려고 국자로 죽을 떴다. 죽을 뜨다 보니 뼈다귀가 보이는것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죽을 휘저어 뼈다귀들을 건져내 보니, 사람의 뼈였다. 막내아들은 그 뼈가 어머니의 뼈라는 것을 알게되고,
어머니의 고기로 만든 죽을 먹은 형들과는 살 수 없다며 집을 나온다.
막내아들은 울면서 달리다 보니 한경면 고산리의 차귀도까지 오게 되었고, 막내아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형들도 여기저기 늘어서 슬픔에 겨워 통곡하다 그대로 바위로 굳어졌다. 그래서 이 바위를 '오백장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라산 서남쪽에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영실기암'이라 부른다. 그 기암괴석은 어떤 때는 장군의 모습을, 어떤 때는 나한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달리 '오백장군(五百將軍)',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제주특별자치도에 한 부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많은 식구로 인해 집안의 형편이 좋지 못했다. 그러던 중 흉년까지 들게 되어 자식들을 먹이는 일까지 힘들게 되었다. 부인은 고심 끝에 아들들을 불러 양식을 구해오라고 했다.
오백명의 아들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부인은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였다.
아들이 오백이나 되다 보니 죽을 끓이는 솥의 크기가 매우 컸다. 부인은 열심히 솥 주위를 돌아다니며 죽을 저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죽 속에 빠지고 말았다.

아들들이 양식을 구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안 계시고, 죽만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배가 고팠던 아들들은 아무 생각 없이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아들들은 죽 맛이 평소보다 좋다고 생각하며 맛있게 죽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막내아들이 죽을 먹으려고 국자로 죽을 떴다. 죽을 뜨다 보니 뼈다귀가 보이는 것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죽을 휘저어 뼈다귀들을 건져내 보니 사람의 뼈였다. 막내아들은 그 뼈가 어머니의 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머니의 고기로 만든 죽을 먹은 형들과는 살 수 없다며 집을 나갔다.

막내아들은 울면서 달리다 보니 한경면 고산리의 차귀도까지 오게 되었고, 막내아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바위가 되어 버렸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형들도 여기저기 늘어서서 슬픔에 겨워 통곡하다 그대로 바위로 굳었다. 그래서 이 바위를 '오백장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오백 아들의 어머니는 설문대할망이라고도 한다. 영실 오백장군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를 지르면 짙은 안개가 끼게 된다고 하는데, 이는 설문대할망이 화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차귀도에 있는 '오백장군'도 전설을 갖고 있다.

하루는 어떤 지관(地官)이 바굼지오름에 묏자리를 보게 되었다. 이 바굼지오름에서는 차귀도의 '오백장군' 바위가 바로 보인다.
지관은 바굼지오름에서 '오백장군' 바위만 보이지 않으면 좋은 자리라고 했다. 상제는 그 말을 듣고 차귀도로 가 '오백장군' 바위를 도끼로 찍어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차귀도의 '오백장군' 바위에는 그 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 현용준(1977),『제주도 전설』, 서문당
  • 제주도(1985),『제주도 전설지』
  • 제주도(1995),『제주의 민속(3)』
  • 진성기(2001),『신화와 전설』, 제주민속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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