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랑은 조선조 6曹의 정6품 벼슬 명칭으로 연대와 성씨는 불확실하나 구전되어 오는 말에 의하면, 좌랑의 벼슬을 얻은 사람이 지금의 좌랑못 자리에(당시는 못이 아니었음)집을 짓고'괸물'을 식수로 이용하며 살았었다.
이 좌랑은 권세를 이용하여 인근 주민들에게 많은 정신적 迫害(박해) 苛斂誅求(가렴주구)를 일삼으니 인근 주민들이 받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 때문에 주민들은 이가 갈리는 원한을 품게 되었다.
얼마후 좌랑이 죽자 원한을 품은 주민들이 그 집을 헐고 그 자리를 파서 연못을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해방전 기사년(1929)한발이 심하여 못의 물이 다 말랐을 때 못 바닥에 쌓인 흙을 파내는 작업을 한 일이 있는데 이때 못 바닥에서 주춧돌이 발견된 사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