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절부암

영상재생
북제주군 한명면 용수리에는 절부암이란 절벽이 있습니다.
용수리 포구 맞은편에 있는 이 절별에는 팽나무, 느릅나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곳 용수리 마을에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있었습니다.
고씨 성을 가진 16세의 처녀와 같은 마을에 사는 강사철이라는 총각은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처녀의 집을 그런대로 살 만 하였으나 총각의 집은 몹시 가난하였습니다. 총각은 아침밥을 먹기가 바쁘게 뗏목을 타고 대나무가 많은 차귀도로 건너갔습니다.
총각은 쉬지 않고 열심히 대나무를 베었습니다.
총각의 생활이 이렇게 바쁘다 보니 처녀와 만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혼인을 하여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혼인한지 채 사흘이 지나지 않아 강씨는 동네 청년 두 사람과 차귀도로 일 나갈 채비를 차렸습니다.
“식구가 하나 더 늘었으니 부지런히 일해야 먹고 샆지.”
그들은 차귀도로 건너가 하루종일 대나무를 베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일이 닥치고 말았습니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일행이 풍랑을 만나서 그만 바다에 빠져 죽고 만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내는 거의 미치다시피 하여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남편의 시신을 찾아 헤맸습니다.
‘제발 남편의 시신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석 달을 찾아 헤매도 끝내 시신이 떠오르지 않자 고씨는 그만 절벽에 있는 커다란 팽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렇게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던 남편의 시신이 맨 자리 아래서 떠오르는게 아닙니까.
이 광경을 본 동네 사람들은 예삿일이 아니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이때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해 가던 신재우라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만약 과거에 급제한다면 고씨 부인을 위해 열녀비를 세워 주겠다고 동네 사람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신재우는 과거 시험에 낙방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주도로 가다 우연히 점을 치는 여인이 신재우를 보더니
“한 여인이 당신 뒤를 늘 따라다니고 있으니 그 여인을 잘 모셔주면 틀림없이 급제하겠습니다.”
‘나를 따라다닌다는 여인이 혹시 고씨아냐?’
신재우는 즉시 고씨의 묘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뒤 신재우는 다시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여 제주목 대정현감이 되었습니다.
대정현감이 된 신재우는 부임하자마자 조정에 상소하여 고씨의 열녀비를 세워 주었습니다. 신재우는 고산과 용수 두 마을 사람들에 해마다 3월 15일이면 고씨 부부의 제사를 지내 주도록 부탁하고 고씨가 목매어 목숨을 끊은 절벽을 절부암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지세길 포구 옆에 나무에 둘러싸인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절부암(節婦岩)'이다.
'절부암'은 열녀 고씨의 절개(節槪)를 기리기 위해 마련한 열녀비다.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제주특별자치도 용수리에는 고씨 처녀와 강씨 총각이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조실부모하고 남의 집에 의탁하며 살았는데, 부지런하고 착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15,6세쯤 되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혼인을 했다.
가진 것이 별로 없었던 이들은 차귀도에서 대나무를 베어다가 바구니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남편 강씨는 차귀도로 배를 타고 대나무를 베러 갔다.
그런데 그만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고 말았다. 혼인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못한 때의 일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길 빌며 미친 듯이 바닷가를 헤매고 다녔다. 그러기를 석 달이 지났으나 남편의 시신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 고씨는 남편의 뒤를 따르겠다는 생각으로 용수리 바닷가 '엉덕동산'의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남편의 시신이 아내 고씨가 목을 맨 곳의 절벽 밑에 떠올랐다.
그때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가던 신재우가 이런 사연을 듣게 되었다.
자신이 과거에 붙으면 열녀비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신재우는 과거에 낙방했다. 상심하는 신재우의 꿈에 고씨부인이 나타났고, 다시 과거를 보라고 한다.
그 후 과거에 붙은 신재우는 대정 현감이 되었고, 고씨를 위해 조정에 상소하여 열녀비를 세웠다. 그리고 고씨와 강씨의 시신을 당산봉(고산봉) 서쪽 비탈에 합장하고, 음력 3월 15일에 크게 제사를 지내주었다. 오늘날에는 용수리 부녀회가 주관이 되어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열녀제'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 현용준(1977),『제주도 전설』, 서문당
  • 제주도(1985),『제주도 전설지』
  • 진성기(1981),『남국의 민속』, 교학사
  • 제주교육박물관(1999),『우리문화이야기』
  • 진성기(2001),『신화와 전설』, 제주민속연구소
  • 제주도(1998),『제주의 문화재(증보판)』
Q.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