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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산방배작 이미지

산방배작

1702년(숙종 28) 11월 10일, 산방굴에서 배작의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돌산인 산방산의 모습이 기골이 웅장하게 묘사되어 있다.

송악산, 형제도, 군산, 감산, 용두 등이 보이며, 도로, 산방연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사계리 포구가 흑로포로 표기되어 있다. 산방산 남쪽을 휘감은 도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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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산방산 입구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노송이 이 그림에서도 노송처럼 그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수령이 400년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이형상의 <남환박물>에 의하면 “산방산은 대정현 동쪽 10리에 위치해 있으며 산의 높이 200척, 산의 둘레는 10리로 산 전체가 돌로 형성되어 있다. 남쪽 언덕에 큰 굴이 있는데,
굴암이라 이르며 물이 굴 위로부터 한 방울씩 떨어진다.

그 남쪽에 암문이란 굴이 있는데 그 벽 사이가 1척이며 깊이가 100척, 길이 50여 척에 이른다. 그 북쪽에 큰 굴이 있는데 깊이는 헤아릴 수 없으나 피생문(彼生門)이라 한다”하여
세 개의 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산방배작 현재위치 표시된 지도

조선시대의 지도는 궁궐이 있는 한양에서 바라보는 시점에서 제작된 경우가 많다.

탐라순력도의 '한라장촉' 역시 마찬가지여서, 현재지도와는 달리 남과 북의 방향이 거꾸로 제작되어 있다.

전설

산방산

천연기념물, 산방산

제주도 남서쪽에 우람한 자태로 우뚝 서 있는 산방산은 해발 395m, 둘레 6.1㎞의 오름이다. 산방산은 조면암질 암괴(岩塊)의 종상화산(鐘狀火山)이다.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분화구의 위나 주위에 엉겨 붙어 원형의 언덕을 이룬 원정구(圓頂丘)로 분화구가 없는 게 특징이다.

산 전체가 조면암체의 한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기암괴석과 상록수로 덮여있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 정상 쪽에는 온난한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고, 암벽에는 암벽에 붙어사는 희귀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산방산 암벽식물지대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로는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육박나무, 돈나무, 가마귀쪽나무 등의

해안에서 사는 식물들과 지네발란, 풍란, 석곡, 섬회양목 등의 암벽에서 사는 식물들이 있다. 특히 지네발난은 우리나라에서도 이곳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희귀식물이다.

산방산 암벽식물지대의 희귀한 암벽식물들은 천연기념물 제376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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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진

산방산

산방산

약 75만년 전 바다속에서 불쑥 솟은 용암이 굳어져 생긴 산방산은 거대한 종모양의 종상화산이다.
산을 이루고 있는 조면암질은 약 70~80만년(한라산 약 2만5천년)전의 것으로 추정돼, 제주도 지표 지질을 구성하고 있는 화산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발 392.5m인 산허리 중간쯤인 해발 150m에는 해식동굴이 있어 ‘산속의 굴’ 혹은 ‘굴산’이고 불리웠다는데, ‘산방산’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산방굴사

산방굴사

영주십경 중 하나인 산방굴사는 산방산 중턱에 자리한 조그마한 사찰로 고려의 승려 혜일이 이곳에서 수도하다 입적하였다고 한다. 굴 내부는 석벽처럼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천장암벽에는 사시사철 눈물처럼 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여기에는 산방덕이라는 여인의 전설이 전해진다.

용머리해안

용머리해안

용머리는 이 지역의 지형지세가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다로 뛰어 들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용머리해안은 수천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중 하나로서 오묘한 해안절경을 보는 순간 누구라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됩니다.

형제섬

형제섬

 

전설의 오름, 산방산

산방산은 전설의 오름이다. 전체 모양새에도 그렇거니와 꼭대기에도 허리춤에도 발치에도 심상치 않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 전설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산방산은 한라산 봉우리

옛날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을 잡으러 갔다. 활을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사슴은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 한라산 정상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한라산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았다. 정상에서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한 사냥꾼은 급히 활을 치켜들고 쫓아갔다. 그때 아차 실수하여 활 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화가 발칵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 서쪽으로 던져버렸다. 그 봉우리가 날아가 앉은 것이 산방산이 되고 봉우리를 뽑아버린 자국은 움푹 패어져 백록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실 백록담과 산방산은 그 생성과정이나 시기가 전혀 다르다. 전설대로라면 한라산이 먼저 생긴 것이겠지만 산방산이 훨씬 이전의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지구과학자들이 측정해낸 용암의 절대연령에 따르면 산방산 조면암군의 연령은 약 75만 년, 백록담 조면암 벽은 약 2만5천 년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한라산에서 남서쪽에 있는 산방산의 암질과 백록담 외벽(남서벽)의 암질이 같은 조면암질로 이루어져 있어 전설의 절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산방산은 금장지

산방산은 예로부터 ‘금장지(禁葬地)’라고 해서 장사를 지내면 안 된다고 전한다.

산방산 안에서도 특히 ‘질매톡’이라고 하는 곳에서 장사를 지내면 심한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못 살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가뭄이 심해 가면 이 산방산 질매톡에 누가 묘를 쓴 게 아닌가 의심하고 그곳에 확인하러 갔다. 가서 더듬어보면 과연 누군가 묘를 쓴 게 있었고, 그것을 파헤치면 어김없이 곧 비가 내리곤 했다.

산방산이 금장지라고 하는데도 묘를 쓰는 사람이 있는 것은 그곳이 왕이 날 명당인 왕후지지(王侯之地)라는 말이 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심 많은 사람들이 밤에 살짝 평장(平葬)을 해버리곤 하는 것이다.

산방굴사
산방덕의 슬픈 눈물

산방산 남쪽 허리 해발 150여 m 지점에 해식동굴로 알려진 동굴이 있다. 이곳에 부처님을 모신 굴사(窟寺)가 있는데, 바로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히는 ‘산방굴사(山房窟寺)’다. 이 굴사는 고려 말의 유명한 승려인 혜일선사(慧日禪師)가 창건했으며, 유배 중인 추사 김정희와 친교가 있었던 헌종 때의 초의대사(草衣大師)도 이곳에서 수도했었다 한다.

산방굴의 천장 높이는 5m 정도, 동굴의 수평 깊이는 20m나 되는데, 넓은 천정 암반에서 물방울이 쉬지 않고 똑똑 떨어진다. 이 물방울은 산방산 수호여신인 산방덕이 흘리는 슬픈 사랑의 눈물이라 전해진다. 다음과 같은 전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산방산에 산방덕(山房德)이라는 여신이 살았다. 산방덕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인간세상으로 나온 산방덕은 고성목이라는 청년을 만나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정고을 사또가 산방덕을 보고 그 미모에 그만 반하고 말았다. 사또는 고성목에게 없는 죄를 씌워 잡아다 옥에 가두고는 아내를 자신에게 바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고성목은 끝내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일이 어렵게 되자 사또는 산방덕이마저 잡아오라고 했다.

그때 마침 산방덕이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아오지 않자 자신이 인간 세상에 나온 탓에 죄 없는 남편이 고초를 겪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는 산방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말을 탄 포졸들이 산방덕을 뒤쫓아 들이닥치는 순간, 산방덕은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돌이 되고 말았다.

돌이 된 산방덕은 사람이 되었던 것을 후회하며 날마다 눈물을 흘렸다. 산방산 동굴 천정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이 바로 산방덕의 눈물이라고 한다.

용머리해안
용머리와 호종단

산방산 아래 바닷가에 용머리라고 하는 언덕이 있다. 산방산의 줄기가 급하게 바다로 떨어져 기암절벽을 이루면서 언덕이 되어 길게 뻗어 내린 것이다.

그 모양새가 마치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내려가는 것 같아 ‘용머리’라 이름 붙은 것이다. 이 용머리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중국 진시황 때의 일이다. 천하를 얻은 진시황은 이웃나라에 제왕감이 태어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탐색했다.

어느 날 제주도에 왕후지지가 있어 제왕이 태어날 우려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진시황은 풍수에다 술법이 능한 호종단(고종달이라고도 한다)을 보내 그 맥을 찾아 끊어버리라고 했다.

제주에 들어온 호종단은 왕후지지를 찾아 헤매다 드디어 찾아냈다. 바로 산방산 아래 용머리였다.

호종단은 먼저 용의 꼬리 부분을 한칼에 끊고 이어서 잔등 부분을 두 번 끊어 버렸다. 그러자 바위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산방산은 드르르 신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왕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용머리는 꼬리와 잔등 부분의 바위가 정말 칼로 자른 듯 가로로 뚝 끊어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호종단이 끊어 버린 자국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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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산방산

약 75만년 전 바다속에서 불쑥 솟은 용암이 굳어져 생긴 산방산은 거대한 종모양의 종상화산이다.
산을 이루고 있는 조면암질은 약 70~80만년(한라산 약 2만5천년)전의 것으로 추정돼, 제주도 지표 지질을 구성하고 있는 화산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발 392.5m인 산허리 중간쯤인 해발 150m에는 해식동굴이 있어 ‘산속의 굴’ 혹은 ‘굴산’이고 불리웠다는데, ‘산방산’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산방굴사

산방굴사

영주십경 중 하나인 산방굴사는 산방산 중턱에 자리한 조그마한 사찰로 고려의 승려 혜일이 이곳에서 수도하다 입적하였다고 한다. 굴 내부는 석벽처럼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천장암벽에는 사시사철 눈물처럼 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여기에는 산방덕이라는 여인의 전설이 전해진다.

용머리해안

용머리해안

용머리는 이 지역의 지형지세가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다로 뛰어 들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용머리해안은 수천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중 하나로서 오묘한 해안절경을 보는 순간 누구라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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