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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최근 북촌리 고두기 언덕 바위 그늘 유적과 약 3,000여년전의 신석기 시대 유물 500여점을 발견한 적이 있는데 북촌은 오랜 옛날부터 최소 단위집단으로 사람들이 계속해 살아온 여러 가지 자연환경 조건을 살펴 볼 때 북촌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음료수의 경우도 제주시 동쪽으로 구좌읍까지 볼 때 북촌은 양질의 샘물(通泉)이 여러 곳에서 용출되어 삼양 신촌과 더불어 북촌 샘물은 식용수로서 최적합한 것이다.
또한 지금처럼 생업이 뚜렷하지 못했던 옛날의 경우 북촌바다 수산자원은 그 양이 풍부하고 다양하며 더구나 손쉽게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어 생활하기에 편리한 곳이다.
옛날 고두리 언덕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근 河源지역 마가리 서우봉 기슭 대섶 등에는 사람들이 생존했던 흔적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 모두 북촌바다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릴 수 있는 지역이어서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해산물 채취나 어업을 하면서 농경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북촌 해안선 동서 약 500m 이상의 城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는 고려원종때 환해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북촌해안가 검서개라는 곳에 얽힌 이야기로는 본선을 타고 온 뙤놈(중국인이 아니고 몽고군을 지칭하고 있음)과 싸웠던 곳이라는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삼별초란이 일어난 1270년 이전에 이미 이곳에는 주민들이 주거해온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서우봉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산도 조선시대 지도에는 서산봉으로 표시되어 있어 서우봉 동쪽에 이미 오래전부터 취락이 형성되어 비록 소수 집단이긴하나 계속 사람이 살아오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에 와서 장씨, 이씨, 윤씨, 씨족들이 집단으로 주거하고 있었기에 尹李村이라는 말도 있었다.
점점 인구가 증가하면서 東洞, 廣石洞, 上洞, 興禮洞, 西洞, 海洞, 儀水洞 이렇게 7개 자연마을 중심으로 北浦里라 불리던 곳이 행정적으로 정비되면서 1910년에 북촌리로 바뀌었다. 뒷개(後浦)라고 불리기도 했다는데 이는 북촌뒤의 바다를 의미한다.
제주도의 마을형태를 보면 산촌지역 해촌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해안지역은 산촌과 달리 여러 자연취락이 합쳐서 한 개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데 학술적으로 볼 때 북촌리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해촌형 마을로 보고 있다.
북촌리에서는 지금부터 320여년 전(1980년대 기준)에 벌써 마을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마을의 발전과 개촌 기념으로 향사를 건립하여 마을의 모든 일을 자주적으로 처리하고 마을의 역사나 문서기록등을 보존하여 내려왔으나 4.3사건으로 인해 소실되었음이 안타깝다.

역대이장

역대이장
대수 성 명 임기 기 간
1 고경석(高京錫) 4년 1944. 1.26 ∼ 1948. 2. 5
2 이상훈(李尙訓) 2년 1948. 2. 6 ∼ 1950. 2. 5
3 신승빈(愼承彬) 1950. 2. 9 ∼ 1952. 2. 8
4 이상환(李商煥) 1952. 2.13 ∼ 1954. 1.30
5 고경석(高京錫) 1954. 2. 9 ∼ 1956. 2. 3
6 부문석(夫汶錫) 1956. 2. 4 ∼ 1958. 2. 4
7 이기석(李基錫) 3년 1958. 2. 5 ∼ 1961. 2. 8
8 김진국(金鎭國) 2년 1961. 2. 9 ∼ 1963. 2. 8
9 이승수(李承壽) 1963. 2. 9 ∼ 1965. 1.30
10 윤홍빈(尹洪彬) 3년 1965. 2. 1 ∼ 1968. 2. 3
11 이재훈(李宰訓) 4년 1968. 2. 4 ∼ 1971. 2.15
12 문성섭(文宬燮) 8년 1971. 2.16 ∼ 1978. 6. 1
13 이기원(李基圓) 4년 1978. 4.24 ∼ 1982. 4.30
14 고용진(高瑢鎭) 1982. 5. 2 ∼ 1986. 4.24
15 고용진(高瑢鎭) 1986. 4.25 ∼ 1990. 5.25
16 박칠성(朴七星) 1990. 4.26 ∼ 1994. 6.20
18 이성범(李成範) 1999. 4.21 ∼2003.4.20
19 김영수(金榮秀) 4년 2003.4.21. ~2007.4.20
22 이철림(李哲林) 3년 2013.4.21 ~2016.3.31
24 윤인철(尹仁鐵) 3년 2017.4.01 ~ 20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