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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소개

마을소개 제주도 동부지역 중심에 위치한 성산읍에서도 가장 중심에 자리잡은 우리마을은 성산리, 신양리, 온평리와 인접해 있으며 제주시나 서귀포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옛터가 남아있어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후덕한 사람들이 우리마을 고성리는 성산읍 생활권의 중심지로 더욱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한 번 꼭 오세요.

마을위치

마을위치 성산읍의 한 마을인 고성리는 고구마 형치의 섬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제주시와의 거리는 45.8km이며 서귀포시내와의 거리는 44.2km가 된다. 이 마을이 포함하고 있는 총면적은 8.558㎢, 이 면적 안에는 신양리까지도 포함되는데 행정기관의 통계표에 이 두 마을은 아직 분리가 안되어 있다. 〈터진목〉을 경계로 동쪽에 반도처럼 일출봉이 있는 성산리가 있으며, 동북쪽에 오조리, 또 서북쪽은 수산리, 서남쪽에는 온평리가 위치해 있다. 과거 古城二區(고성이구)였던 신장리는 고성리의 남녘 바닷가에 넓게 뻗어나간 〈섶지코지〉를 포함하고 앉아있다. 마을 안에는 〈큰물뫼〉, 〈작은물뫼〉라고도 불리는 大·小수산봉이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광활한 목장지인 수산평이 이뤄졌다. 수산리와 성산리의 일출봉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할 수산평은 과거 고려시대에 대단한 목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일출봉의 서녘기슭 바닷가를 〈수매밋〉, 또는 〈수마포〉라고 부르는데 이는 〈受馬(수마)〉, 즉 말을 실어냈던 포구가 아닌가 짐작케 하고 있다.

일반현황

면적
면적을 계, 전, 과수원, 임야, 기타, 비고로 나타낸표입니다.
계(ha) 과수원 임야 기타 비고
560.2 116 135 186.2 123  
가구
가구 계, 농가, 어가, 기타, 비고로 나타낸 표입니다.
계(가구) 농가 어가 기타 비고
1,011 184 154 673  
인구
인구를 계, 남, 여, 세대수로 나타낸 표입니다.
계(명) 세대수
3,286 1,667 1,619 1,507
마을재산
마을재산을 마을회관, 경로당, 창고, 목장, 공동묘지, 기타, 비고로 나타낸 표입니다.
마을회관 경로당 창고 목장 공동묘지 기타 비고
1 1 3 1   -  
주요시설
주요시설을 학교, 금융기관, 의료시설, 공공기관, 기타, 비고로 나타낸표입니다.
학교 금융기관 의료시설 공공기관 기타 비고
2 6 11 3 - -

자연환경

여기가 대단한 목장지대였다는 것은 이 마을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민속인 〈테우리코사〉의 유별난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아직도 테우리코사를 할 때 목장지대 안의 21개 언덕 이름을 모두 섬긴다. 그리고 지금 60대의 노인들은 신양리의 〈섶지〉에서부터 〈잣안〉까지가 테우리(목동)들의 구역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며 한 집안이 50∼60마리의 마소를 기르고, 한 겨울에 꼴 300바리(바리는 소의 한짐)까지 거둬 들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목장지대는 과수원, 또는 잡목지, 경작지대로 바뀌어 있으며 옛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훨씬 산 기슭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이 마을은 섬 동쪽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 만큼 과거에는 왜적과의 실랑이도 부단했던 것 같다.
李元鎭(이원진)의 〈탐라지〉의 기록에 '옛 旌義縣(정의현)은 현 동쪽 27리에 있다. 원나라 목자 합치가 여기서 본주의 만호를 살해하였다. 吳湜(오식)이 삼읍을 나눌 때 현을 두었다. 지경이 우도에 가까우며 아침 저녁 고각소리에 대풍이 자주 몰아쳐 농작물이 여물지 않으며 왜구가 자주 침입하니 세종5년(1423)에 안무사 鄭幹(정간)이 조정에 건의하여 재가를 받고 晉舍(진사;지금의 성읍리)에 현을 옮기니 지금 대로다'하였다. 이 기록 상에는 오류점도 보이나 마을이 바닷가에 있으므로 왜적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마을은 우도와 성산 사이의 거센 물살과 식산봉, 일출봉 등의 자연적 요새, 또한 오조, 성산 사이의 앝고 긴 해안선으로 하여 보호를 받고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주변의 얕은 바다는 천연적인 양어장이 되고 있으며 과거에는 염전으로 소금을 제조했다고도 전한다.
그 러나 일제시대로 오면서 이런 자연조건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외지인들에 의해 일어나고 바다물을 막기 위해 마을 주변의 바다에 보를 쌓게 된다. 바닷물을 막아 농지를 만들려는 이런 계획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나 이 땅을 차지하려는 외지인과 마을 사람들간에는 한때 〈동남못〉의 소유권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이후 이 지역은 물의 차단 때문에 늪지대로 바뀌는데 아직도 마을 부근에는 늪지대의 땅들이 꽤 널려 있다. 이 늪지대들은 40여년어간에 갈대밭으로 변한 곳도 있어 현재는 도내에서 종달과 함께 이 부근에서만 갈대밭을 구경할 수 있다.
산간 쪽으로 가면서 땅은 바닥에 암반을 깔고 있으며 토질은 화산회토이다. 과거 마을 사람들은 이 땅에서 조, 보리, 콩과 고구마 등을 심어왔으나 최근에는 토질의 조건에 맞는 유채나 당근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 도내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감귤 과수원을 조성한 곳들도 있으나 서귀포 등 적지에 비해서는 질 면에서 뒤지는 형편이다.
이 마을의 특이한 일면은 부근 마을까지를 포함한 공통점으로 물이 짠 것이다. 과거 이 마을 사람들은 〈동남못〉등 샘물과 집 가까이 판 우물을 식수나 용수로 사용했는데 염기가 있어서 곤란을 겪었다. 이런 사정은 최근까지 계속돼 오다가 67년도부터 수도공사로 지하수 물을 뽑아 쓰게 됨에 따라 용수난이 해결되었다.
중앙관상대 제주측후소는 1971년에 섬 동단인 이 마을의 특수 기상관측을 목적으로 성산포 기상관측소를 세웠다. 이 관측소 설립 이후 관측된 바에 따르면 이 마을의 입지적 여건이 섬의 동쪽 끝에 있어 한라산의 영향을 덜 받고 해안지대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겨울철 기후는 낮고, 반대로 여름철에는 높은데 그 차이가 제주시 등지에 비해 섭씨 2°가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계절풍의 영향도 딴 지방에 비해 강하게 받는 편인데 북서풍이 강하게 불 때는 섬의 다른 지방에 비해서 2∼3m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