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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소개

저희 함덕리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우 리 마을은 제주도에서 제일가는 해수욕장이 있어 제주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제주도 제1의 마을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주민 모두가 힘을 모아 환경을 보전하고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보다 친절하게 맞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피서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맑은 물과 깨끗한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기 위해 우리마을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분들뿐만 아니라 4계절 언제라도 우리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마을에 대한 정보를 제공토록 하겠습니다. 또한 마을주민들의 대화의 장으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는 마을역사 및 향토사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도록꾸며 나가겠습니다. 많은 활용과 참여를 바랍니다.

마을위치

함덕리의 위치는 경도 126。-127。와 위도 33。-34。로서 제주특별자치도의 중심지인 제주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14km 떨어진 곳이며 읍 소재지에서 3km 동쪽지점, 서쪽으로는 남다실여 부근 36。33′을 경계로 하여 신흥리와 나뉘고 남쪽으로는 대흘리와 마주보며 남서쪽으로는 신천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서우봉 서쪽으로는 신흥리 동쪽은 북촌리로서 지형이 삼각형 비슷한 형체를 이룸

지역특성

자연취락마을로서 전국 최대를 자랑하고 있으며, 천혜의 청정한해수욕장을 갖고 있음. 주민소득은 감귤,관광 산업이며 전국 평균치를 상회하는 복지마을 임.

일반현황

(2007년 12월 31일 현재)

인구현황
세대수 인 구 면 적(ha)
2,314 6,410 3,253 3,157 1,080

자연환경

이 마을은 서쪽으로부터 1구, 2구, 3구, 4구로 구분되고 있으며 여기에 집결하여 사는 가구수는 1,319호 인구는 5,774명 - 남 2,772 여 3,002명(평사동이 3구에 예속되어 오다가 1971년도에 4구로 독립하였음)이다. 이 곳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된 원인은 일찍이 해상활동의 중심지역으로서 상공업 인구가 집결됨으로 대촌락을 이루었는데 행정단위 마을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하여 인구밀도가 조밀하고 경작면적이 인구비율로 봐선 빈약한 편이나 반면 각종 공동시설기관의 수용으로 비교적 편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 마을 지표의 대부분은 암반으로 깔린 모래땅이다. 어느 집 어느 밭을 막론하고 돌로 덮이지 않은 데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반의 층이 얇은 데를 뚫고 용출하는 샘이 해안선을 따라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이와 같이 토양이 현무암을 중심으로 흙색 회암과 풍화작용된 화산암으로 지표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흙의 심도가 얕아 농경지로서는 불리한 지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해변의 지표는 모래로 덮여 있어 넓은 사장을 이루고 있고 해안도 역시 1구 선착장으로부터 4구 서우봉 사이의 약 20m와 해안에서 바다쪽으로 500m 까지는 조개껍질이 풍화되어 형성된 촉감의 부드러운 백사장이 깔려 있고 경사도 간만의 차 등이 완만하여 이절풍을 막아주는 자연적인 서우봉과 서남쪽으로 조성된 부락 그리고 수온이 알맞을 뿐 아니라 좋은 입지적 조건을 이용하여 함덕해수욕장을 개발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기후의 특색은 본 도 기후와 특이한 점은 없으나 제주해협을 향해 자리잡은 이 고장은 일본 오끼나와 근해와 필리핀 근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해풍의 영향으로 농작물과 가옥에 큰 패해를 입게 되는 일이 연중행사처럼 닥쳐온다.

산업구조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함덕리는 제주시에서 동쪽 30리 쯤에 위치해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수심이 얕은 모래판이 해안에서 500m나 바다쪽으로 나가고 물이 맑아서 해수욕장으로는 그 입지적 조건이 최적일 뿐 아니라 동북계절풍을 막아주는 서우봉과 서쪽과 남쪽이 지형이 높아 하나의 분지를 이루면서 북으로 완만한 해안선을 이루어 천연적인 자연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때문인지 예부터 함덕리는 대촌락을 형성하여 왔고 현재 1,300여가호로서 농가 935가호 비농가 370가호 인구 5,774명의 대단의 집중촌부락을 이루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함덕리는 고려 원종 14년(1273년)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참패하여 피가 흘러 내를 이루었다는 민족항쟁의 처절한 격전장이었고 고려 충렬왕 26년(1300)에 고려의 현촌 도내(14촌)중 하나의 마을이었다.
그리고 함덕리는 1271년 삼별초가 들어오기 전부터 작은 마을로 함덕리와 신흥지경에 설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지금부터 714년 이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있었고 삼별초의 방어진지가 되면서 군사진지 해상교통의 요지로서 농업노동인구 공마진상의 부역 해상활동을 위한 상업인구의 집결로 대촌부락이 되어 농경정착생활의 기반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또한 함덕리는 도내제일의 멸치 어장이었다. 일제시대에 일본 아라까와란 사람이 웬막 평사동에 살면서 멸치 가공 퇴비와 사료로 일본에 수출하여 굉장한 돈을 벌었단 말도 있다.
그리고 함덕리는 40톤급 선박만 해도 50여척 부렸고 낚시 어선(無動力船)은 100여척이 있었다.
함덕리는 농업을 위주로 하는 마을이다. 이마을의 총면적은 1,080ha(밭 590ha, 임야 285ha, 기타 205ha)이고 호당 소득은 560여 만원의 비교적 부유한 생활수준의 부촌이다.
농사의 영농법이 어느 마을보다 발달되어 있어서 부락민의 지혜와 근면성을 엿볼수 있게 한다.
함덕리는 수박과 배추의 다량 생산으로 제주시까지 운송하는데 마차를 이용하며 마차를 맨처음 도입한 마을로서 마차를 500여대 보유하였다.
최근 함덕리는 해수용장 개발붐을 타고 관광지의 변모를 갖춘 근대화가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함덕리는 북쪽으로 해수욕장인 바다와 남쪽으로 산쪽의 광활한 황무지 사이에 위치해 있으면서 이들 자연조건과 싸워 이제 모두 승리한 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