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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함덕의 선열
작성일 2011-01-21 09:37:53 조회 1,185 회
작성자 관리자 연락처

▶ 조선만세 운동과 그 영향.

  서울을 중심으로 궐기 되었던 3.1 만세 운동은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신좌면(현 조천읍)에 까지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어 1919년3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에 걸쳐 조천리를 시발로 하여 함덕.신촌.신흥리로 확대되어 나갔다.
3월 21일 아침 미밋동산 (현 만세동산)에는 김시범(조천리출신)외 13인 동지를 비롯하여 주민과 서당생도등 150명이 모였다. 14인 동지중 김필원은 창호지에 혈서로 대한독립만세라 써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미밋동산으로 행진하자 약 500명의 주민들이 그 뒤를 따라 미밋동산에서 합세하여 오후 3시경 태극기를 높이 꽂아놓고 김시범씨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분은 29명이며 그중 23명이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그 중 함덕리 출신 한철영과 한백흥이 선고 받았다. 한희룡은 최연소자로서 조천만세운동의 준비과정에 참여하였으며, 한철영, 한백흥, 송정옥,김재일등과 함께 3월 23일 ~      <한 백흥님>    24일 함덕리 비석거리와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3.1운동으로 1919년~1930년대에 제주출신들에 의해 전개되는 다양한 민족 해방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 함덕청년들의 항일 독립운동
- 1923년             : 함덕청년회 조직,
                            당시 명칭은 협성청년회였으며, 사업으로 노동야학을 개설하여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
- 1925년3월       : 여자청년회 조직
- 1925년             : 노동야학회를 결성하여 우리글과 역사를 부녀자에게 가르치며 항일운동을 활성화 하였다.
- 1925년12월      : 민중해방운동일환으로 금주선언문을 만들어 금주운동전개
- 1926년6월24일 : 신좌면 청년연맹 조직. 신촌,조천,함덕,북촌,신흥 가맹
- 1928년8월21일 : 제주청년 함덕지부 설립. 고종건 위원장으로 피선 (회원100 여명)
- 1930년             : 함덕청년지부에서 "난장이 나라" 소인극 공연을 통해 세태풍자
_ 1930년2월17일 : "아리랑농촌의 설움" 연극공연. 한윤섭,김명훈,현사선,김일준 4인 검속.
- 1930년 3월   ~   1931년 3월 중순 : 청맹원 김두성은 소년들에게 한글.수학 수업과 항일운동 필요성 고취
- 1931년1월15일 : 일본에서독립운동하던 한영섭 동지의 기념비 건립사건으로 고종건.김두성.부생종.양구문. 
                            김일준김재동 6명이 검거되어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이송. 김재동은 대구 복심법원에 항소중
                            1932.3.14일 옥사
 
▶ 농민조합결성을 통한 독립운동
 제주농민조합운동은 1932년에 청년들이 일으킨 농민조합사건으로 전도에서 60여명이 검거되었고 16명이 기소되었던 대사건이었다. 일본이 우리말과 글, 강토를 빼앗고 노동자 농민들에게 갖은 약탈과 착취를 다하자 일제가 시행하는 제반세금 납부거부운동을 벌여 잃어 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투쟁하는데 목적이 있었고 함덕리에는 부생종.김일준.김원근 등이 활동하였다.
- 1932년 2월하순 : 제주적색농민조합결성. 김일준.부생종.부병준.김원근 등이 중심되어 신좌적색농민조합
                            준비위원회 결의
- 1933년 3월상순 : 신좌면 적색농민조합결성
- 1933년 3월중순 : 함덕리 적색농민조합협의회 결성
- 1934년 4월상순 : 부생종.김태근.김두성은 비밀결사대와 독서회 조직, 김두성은 함덕리 축구회 조직
- 1934년 10월      : 제주적색농민조합운동 가담자 52명 제주경찰서에 검거.
                            부생종.부병준.김원근.김일준 등 16명 목포로 이송
- 1937년 4월12일 : 대구 복심법원에서 김일준.김원근 형 선고 받고 복역
- 1936년 6월29일 : 부생종 목포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옥사
 
▶ 신좌(조천)소비조합운동과 전황유포사건
① 소비조합운동
1940년3월 함덕리의 현사선은 조천리 소재 소비조합에서 "내선일체론"의 허구성 비판, 동년 4월하순경 "한인 지원병제"의 부당함을 성토., 동년 9월경 "중국 임시수도인 중경을 30여회나 폭격했다는 일본기사가 의심케한다" 라고 말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반일사상 표명. 1941년 9월중순 검거. 1942년 8월1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6개월 옥고.                                        
② 전황유포 사건
1940년 11월초순 김태근은 육군 지원병제도 실시로 군인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운운하였다하여 금고 6월에 처하였다.
위와 같이 함덕리에서 많은 청년들이 줄기차게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여 여러 선열들이 희생되었음은 비통한 일이면서도 한편 매우 자랑스런 일이다. 선열들의 후예인 함덕리민들은 항상 애국열사님들의 영전에 옷깃을 여미고 머리 숙이며, 그 거룩한 뜻을 이어 받아 향리 발전과 조국 번영에 밑거름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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