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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옛 생활방식 변천
작성일 2011-01-17 16:07:52 조회 363 회
작성자 관리자 연락처

지금으로부터 70년전의 의, 식, 주의 생활방식을 살펴보면 본리는 농촌이면서 어촌에 속하여 의복의 옷감은 육지부에서 들어온 마포와 명주등을 사서 옷을 만들어 입었으나 워낙 귀한 물건으로 생활이 넉넉한 집에서나 사서 입었고 일반적으로는 이른봄 밭한모퉁이에 목화씨를 뿌리고 가을에 목화를 따서 햇빛에 말린후 겨울 농한기가 되면 아낙네들이 물레(나무로 만든 목화씨 빼는 기계)로 씨를 빼고 솜틀에 태워서 실물래를 돌리면서 실꼬리를 만들고 실꼬리를 꼬리집에 넣고 벼틀에 실ㅇㄹ 날러 무명(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무명짜는 업으로 생활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업옷은 무명옷에 감물을 들여 물에 담갔다가 말리기를 수차례 반복하여 바래면 무명옷이 붉은색으로 변한다음 작업할 때 입었었다. 누애를 치어 약간의 명주를 생산하기는 하였으나 흔하지는 않았다.
식생활의 주곡은 보리와 조를 꼽을 수 있는데 부곡으로 고구마, 감자, 통, 팥, 녹두, 깨, 밭벼등을 약간씩 재배하였다. 일제말 주정의 원료로 고구마 절간생산이 성황하였었는데 보리, 조 다음의 경제작물중의 하나였다. 보리, 조, 콩등은 자급자족하였을 뿐아니라 잉여농산물을 외지로 판매할 정도로 농사가 비옥함을 자랑이라 말할 수 있다.
주거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서기 1920년대로부터 1935년대에 이르는 사이 본리의 총가구수는 300가구 내지 400가구로 추정되는데 총가구수의 90% 이상이 초가로서 잡석으로 두래를 쌓고 흙을 발라서 비와 바람을 막고 지붕에는 산에 무성하게 자라는 참나무를 잘라다가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걸쳐 섯가래를 언져 서슬을 이어서 흙을 찧어 이웃이 함께 도와 안토를 넣어 그 위에다 새로 지붕을 덮으는데 그 이름을 집줄이라고 하여 새가 바람에 날아자지 않게 묶어 놓은 밧줄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구로써 호롱이(줄을 꼬는 기구) 뒤틀이(줄꼬인 것을 겹쳐 꼬는 기구)를 돌리어 집줄을 만들고 이 집줄로 그믈 모양으로 알맞게 묶어 놓으면 큰 태풍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방갈이(축발름)는 토기(대나무로 그믈모양으로 놓아서 노끈으로 묶어 벽에 새워 놓은것)를 새우고 흙을 발라서 추자나 거적으로 문을 내고 부엌과 방을 갈라 살다가 조금 생활이 나아지면 나무를 잘라다가 판자를 만들고 마르를 놓고 방도 2개∼3개로 불리어 살았다.
이렇게 생활하는데 없어서는 않될 자원인 물이 절촌 필요한 것으로 이 물을 운반하는 기구로써
1. 물허벅(어른용), 2. 데백이(어린이용), 3. 지개통(어른 어린이용)이 있어서 부엌앞 한모퉁이에는 으래히 "물팡"(돌로만든 대)이라는 물허벅이나 지계통을 놓아두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낙네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까운 샘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부엌 솥덕옆자리에 물항(물항아리)이 놓여 있는데 물 길어다 물항아리에 저장하여 사용하였다.
농사철이 다가오면 물항에 물을 가득히 체우기 위해 열살안팍이 여자 어린이들까지 동원하여 데백이로 물을 날으게 하여 농번기를 대비하였다.
집 한쪽에는 쇠막(오양간)이 있어서 소나 말을 기르는 집에서는 소먹이 촐를 마당 한쪽에 쌓아두고 소나 말을 길렀으며 집 옆에느 통시(변소)를 마련하여 돼지를 길렀는데 이 돼지는 사람으 인분도 먹고 기타 잡곡을 먹고 자랐으며 자정에서 생기는 온갖 쓰레기를 통시에 담아 밭의 거름으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땔감으로는 섬비낭(밭모퉁이에 자라는 잡목)를 잘라 말렸다가 땔감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또 겨울 농한기에는 가까운 산에 올라 잡목을 베어 등짐으로 지고 오거나 또는 손수레를 이용하여 운반하기도 하였다. 흑이면 소나무 밭에서 솔잎을 긁어와서 땔감으로 사용하였다.
초집은 2년에 한번 짚을 덮는데 음력 11월초부터 새밭이 있는 집이나 새밭이 없는 집이나 초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총동원이 된다. 새밭이 있는 사람은 자기밭에서 새밭이 없는 사람은 들녘에 자라는 새를 베어다가 집을 덮기도 하였다.
서기 1961년 5.16혁명후에 차차 지붕개량사업이 진행되고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초가가 한채 두채씩 스레이트지붕으로 바꾸어지고 현재는 초가가 몇채 남아있지 않다.
또 식수도 집집마다 수도가 시설되어 옛날 물을 길어올 때 그 힘들었던 고통을 잊은지도 오래된다.
오래전에 등불이라하면 솔칵이나 나물기름으로 어두운데를 밝게 불을 켜는 데 촛불은 대사때나 사용하였다. 일제시에 석유램프가 집집마다 일제생활의 도구로 등장하여 솔칵과 나물 기름불이 사라졌다. 서기 1970년대 이후부터 집집마다 전기가 가설되니 이제는 석유등마저 잊은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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