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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 이 마을에 처음 거주한 사람은 慶州金氏 濟州道 入島祖인 朝鮮朝初 訓練院導監 金儉龍 七代孫인 金景義로서 宣祖 28년 (서기 1595年) 現 北濟州郡 舊左邑 終達里에서 옮겨와 現 北濟州郡 翰林邑 翰林里(俗稱 대섬터=한수리 909번지 추정)에 거주하여 장사량훈도를 지냈으며 이분이 조물개(潛水里)設村 始祖이다.
  • 한수리 해안선에는 6곳의 해안봉천수가 있어 現 한수리는 서기 1002년(목종 5년)전에도 사람이 살던곳으로 추정되며 동년 해상에서 화산폭발로 분출한 비양도가 형성되었을 때 바닷물이 해양을 침수상태로 이루워 마을을 모래로 덮히므로 살던 사람이 수장되어 죽었으며 그 후 한수리 지형은 모래동산으로서 순비기나무(제주방언=순부기 나무)가 무성했으며 설촌 후 모래동산에 집을 짓고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한일합방 후 일본 사람들이 한림항 공사당시 한림읍 한림리 1314번지 일대를 매립하고 물양장 축조공사 할 때 한수리에 살던 가옥주에게 집을 철거케하고 한수리 모래동산을 운반 매립하였고 가옥건축비는 전액보조로서 신축하였으며 유일하게도 한수리 879-1번지 및 872-1전지의 집은 지대가 낮아 그대로 두었으며 모래 작업시 모래밑에 흙이 나왔을 때 경작하던 밭과 같은 고랑이 있었다하며 또한 한수리 906-2번지 및 여러곳에서 옛날 부엌의 재래식 화덕등 유물이 나왔으며 일본사람 공사 감독이 유물이 나온 곳은 작업을 중단시키고 밤에 몰래 유물들을 가지고 갔으며 1970년도 이전 고구마를 겨울철에 보관하기 위하여 고구마 구덩이를 파든가 또는 집을 신축하기 위하여 땅을 팔 때 유골이 종종 나왔으며 한수리 879-13도로는 모래땅으로 큰 비가 오면은 모래가 흘러 내려가 숯 등 그릇, 술잔, 밥주걱 등이 나왔으며 그릇은 개그릇으로 사용 또는 재수없다하여 깨여서 던져 버렸으며 이러한 사실이 외부(관공서)에 알려지면은 매장문화재 발굴 지역으로 제한을 받아 부락 발전 및 주택 신개축 등 지장이 있다하여 외부사람에 알리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대이장

수원2구(현 한수리) 역대구장
  • 初代 김경학(金慶鶴)
  • 2代 홍용규(洪龍圭)
  • 3代 강정흡(姜丁洽)
  • 4代 이찬수(李粲秀)
역대 리장 명단
역대 리장 명단
역  대 성  명 기  간
초대
2대
3대
4대
5대
6대
7대
8대
9대
10대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21대
김경학(金慶鶴)
이원여(李元興)
김경학(金慶興)
홍윤석(洪允錫)
홍기천(洪己千)
홍관진(洪官進)
홍관진(洪官進)
정무종(鄭武宗)
홍기천(洪己千)
홍종언(洪宗彦)
고창숙(高昌淑)
임순경(任順卿)
고원협(高元洽)
강신달(姜辛逢)
김한로(金翰路)
오승구(吳勝久)
김선돈(金先敦)
임순경(任順卿)
김순학(金順學)
김수택(金秀澤)
함동윤(咸東允)
53. 5.  3 ∼ 54. 6. 20
54. 6. 21 ∼ 56. 2. 21
56. 2. 16 ∼ 57. 3.  5
57. 3.  6 ∼ 59. 2.  8
59. 2.  9 ∼ 60. 5. 19
60. 5. 20 ∼ 61. 3. 19
61. 3. 20 ∼ 64. 7. 31
64. 8.  1 ∼ 65. 5. 30
65. 6.  1 ∼ 74. 1. 15
74. 1. 16 ∼ 76. 2. 16
76. 2. 17 ∼ 78. 3.  1
78. 3.  2 ∼ 83. 2. 20
83. 2. 21 ∼ 84. 3. 20
84. 3.  3 ∼ 85. 2. 23
85. 2. 24 ∼ 87. 2.  8
87. 2. 7 ∼ 91. 1. 31
91. 2. 1 ∼ 95. 3. 15
95. 3. 16 ∼ 98. 8. 15
98. 8. 16 ∼ 2001. 2.
2001. 2. ~ 2003
2003. 8. 27 ∼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