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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본 부락의 설촌은 고려 초기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정착하였다는 구전이 오늘까지 전래되고 있지만 문헌의 기록이나 그 실증은 확실한 근거가 없으나 단, 서의동 지역에 다수의 방묘(고분)가 발견되어 이를 뒷 받침하여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를 본 부락의 초기시대라 한다. 그 후 본 부락은 고려 말기에 와서 집성촌을 이루었으니 조선조시대까지를 본 부락의 중세 시대라 할 수 있다.
서기1200-1290 년경 조씨, 한씨에 의하여 설촌 되었다는 구체적인 설화가 있으며 한씨가 정착한 "한덜래(벌단)"라는 지역도 모두가 이를 실증 해준다. 이 시대를 분기점으로 하여 이후 100여년이 지난 뒤(3대 정착) 공민왕 23년(1375년)에 최영장군에 의하여 당시 100여년 제주를 지배하여 온 몽고의 목호군 정벌시에 본 부락의 서의동 서북쪽 삼도 휘하의 부락명을 석곡리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이다.
당시 주민들이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서의동 북쪽 기슭에 팽나무를 식재한 것이 현재 수령 5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한다. 남원 2리 서의동과 한남리 경계지점인 석곡리가 설촌터 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 근거로는 고려말 정씨, 한씨등이 집성촌을 이루었을 당시 석곡리에 정씨 부인이 있었는데 남편이 몽고의 난에서 전사하여 자식없이 수절하였는데 어느날 위협을 당하자 자결하여 정절을 지키니 관가에서 열녀비를 세워주었는데 여기에 석곡리라는 마을명이 새겨져 있다.
이와같은 상황으로 볼 때 본 부락 석곡리는 다세대가 모여사는 집성촌인 것이다.
고려 시대라 할지라도 귀향민 들로 인하여 구성되었으니 씨족적 집성의 특징을 볼 수 있다. 한씨와 조씨는 서부지역에서 이주하여온 사람들로써 3대가 지난후 서부지역으로 귀환하였다. 따라서 지금의 그 근거는 한씨의 묘가 서의동에 있는 점으로 보아 이를 설명하여 준다. 현재 주요 구성원이 되는 정씨, 한씨 등이 이 시대에 정착한 것이라 단정 할 수 있으니 이 때가 1370년경이다. 정씨, 한씨는 제주목에서 제주동부지역을 따라 이 곳에 정착하여 중세 중심씨족이 된다. 그후 오씨, 김씨등도 동부지역에서 이주하여 와서 집성촌인 세대구성원이 되었다. 본 마을의 근세 시대는 태종 2년(1402) 도주 관 제도가 실시되면서 태조 16년에 와서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등 행정구역 편제로 인하여 행정적 지배와 교육적 영향을 받았으니 행정 단위의 마을이 된 것이다. 이후 석곡리는 남원읍의 전신인 서종면 서의리로 개칭되었고, 그후 1935년 4월부터 남원면으로 개칭되면서 남원 1,2 구로 구분되었다. 남원면 의회가 구성되고 구가리로 개칭되어서 1구는 현재 남원 2리로 되고, 2구는 현재 남원 1리로 개칭되어 1980년 1월 남원읍으로 승격되어 행정,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