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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소개

558가구에 1,357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납읍리는 서상동, 서중동, 서하동, 동상동, 동중동, 동하동 등 6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부터 서당이 설치되어 20여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는 등 문인의 마을이라 할 수 있는 납읍리에는 일만평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 난대림식물 200여종이 서식하고 있고, 예부터 선인들이 글을 짓고 시를 읊던 금산공원(국가지정 문화재 제375호)이 있어 선조의 풍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주민의 대부분이 감귤을 재배하고 있으며, 유서깊은 마을답게 곳곳에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가 있어 마을의 운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민속이 살아있는 마을 납읍리입니다.

마을위치

納邑里(납읍리)는 자연환경이 아름답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영기 뻗어내린 서북쪽 30km 아래요 북쪽은 해안에서 2.5km 위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 지형이 기묘하니 동북에서부터 애월 건마루 마이동산이 남쪽 금산으로 이어지고 검은 닭마루 무지동산 꿩장이 고개가 서북으로 돌아오는 육선으로 이어져서 마치 병풍을 두른 듯이 수려하며 광활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 능선 너머로는 서쪽에 143m 높이의 於道峯(어도봉)이 손짓하고 동북쪽으로는 높이 175m의 高內峰(고내봉)이 마주하며 정북으로는 153m의 郭岳(곽악)이 마을의 지반을 받쳐 주고 있어 흡사 옥쟁반을 펴 놓은 듯 하다. 지난날 풍수지리설을 숭상하던 시대에는 갖가지 일화도 많았다. 그 일례를 들어보면 고내봉은 向立하니 신관을 영입하는 형이요, 곽악은 배립하니 구관을 배송하는 형으로 곽악의 활등 弓背(궁배)가 이어져 어사화를 꽂은 듯 하므로 과거가 연출한다고 하였다.

일반현황

일반현황
세대수 인구수(명)
552 1,387 711 676

자연환경

납읍리는 자연환경이 아름답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영기 뻗어내린 서북쪽 30㎞ 아래요, 북쪽은 해안에서 2.5㎞ 위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 지형이 기묘하니 동북에서부터 애월 건마루 마이동산이 남쪽 금산(錦山)으로 이어지고, 검은 닭마루 무지동산 꿩장이 고개가 서북으로 돌아오는 능선으로 이어져서 마치 병풍을 두른 듯이 수려하며 광활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 능선(陵線) 너머로는 서쪽에 143m 높이의 어도봉이 손짓하고 동북쪽으로는 높이 175m의 고내봉(高內峰)이 마주하여 정북(正北)으로는 153m의 곽악(郭岳)이 마을의 지반을 받쳐주고 있어 흡사 옥쟁반을 펴 놓은 듯 하다.
지난날 풍수지리설을 숭상하던 시대에는 갖가지 일화도 많았다. 그 일례를 들어보면 고내봉은 향립(向立)하니 신관(新官)을 영입(迎入)하는 형이요, 곽악(郭岳)은 배립(背立)하니 구관(舊官)을 배송(拜送)하는 형으로 곽악의 활등(弓背)이 이어져 어사화(御賜花)를 꽂은 듯 하므로 과거(科擧)가 연출(連出)한다고 하였다.

산업구조

1962년 새담밭에 목축급수장을 설치하였고 리동농협조합장 고성순 등 규도(圭導) 아래 향사부지에 농협 창고를 건축하였다. 1963년 재일교포 진중팔이 일산 감귤묘목 2천본을 납읍리민에게 기증하였다. 1965년 동하동(1774-2번지)에 토지 15평을 매입하여 심정굴착을 하고 앞빌레에 저수탱크를 설치하여 상수도 급수를 하였으나 양이 부족하였다. 그후 1973년에 유구원으로부터 동동에 토지 20평을 희사받아 재 굴착을 하고 종남이에 토지에 구입하여 재 저수탱크를 설치한 결과 수백년동안 숙원인 급수가 충분히 해결되었다. 1966년 금산공원 경내에 민속박물관을 건립하고 마이크로 버스를 개통시켜 교통란을 해결시켰다. 1969년 마을의 중심가로인 북문에서 금산공원까지의 도로를 9m 폭으로 확장하였으며 향사 앞 공지에 농산물 창고를 신축하였다. 서울 평범사 진한철 사장이 1972년 수회에 걸쳐서 도서 2,000여권을 기증하여 향민의 계몽과 문화발전에 공헌한 바 컸다.
1973년 전가정에 전기 시설이 완료되므로 대망의 점화식을 갖고 비로소 문화시설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1975년에 도정공장이 총공사비 6,089,520원으로 준공되어 가동하게 되었는데 조동흠 리장과 김인창 추진위원장이 힘을 써서 향의를 얻고 도정공장안에 다시 착유공장의 시설을 추진하였다. 1976년에 착유공장이 도정공장안에 설치되었다. 1977년 감귤 하치장 80평을 신축하였는데 작목반장 홍성봉과 진성구가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