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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납읍리 마을제
작성자 관리자 조회 2,084 회

·납읍리 마을제 :
  ·지정번호 : 제주도무형문화재 제 6호
  ·지정년월일 : 1986. 4. 10
  ·예능보유단체 : 납읍리 마을제 보존회(북제주군 애월읍 납읍리)

 제주도의 마을제는 어느 마을이든 이중구조를 이룩한다. 남성들이 위주가 되는 유교식(儒敎式) 제의     (祭儀)가 그 하나이며, 여성 위주의 민간신앙적 공속의예적 제의(祭儀)가 다른 하나다. 유교식 제의는    일반적 으로 포제( 祭)라 하며 무속의례적 제의는 할망당을 찾아가서 빈다든가 이런저런 굿을 치르    는 신앙행위를 벌인다. 포제( 祭)는 마을의 포제단에서 향교 석전제(釋奠祭)에서 치르듯 유교식 제법    으로 치른다.
 납읍리 마을제는 남성 위주의 포제를 대상으로 1986년에 제주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교식 마    을제인 포제는 예전으로 치올라가면 제주도내 마을마다 치러 왔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자    취를 감추어 간다. 요새 마을의 전통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중단됐던 포제를 복원하고 거행하는 마    을도 점차 늘어간다.
 남성 위주의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하여 납읍리의 포제를 택하게 된 이유는 어   디에 있을까? 우선 중산간마을인 납읍리는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요 숱한 유림(儒林)을 배출한 반촌   (班村)으로서 포제 역시 그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 중시된다. 상대적으로 납읍리에도 여성위   주의 무속의 본향당이 있고, 부녀자들이 개별적으로 기원하러 다니기는 하지만 마을 전체의 행사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더욱이나 납읍리의 포제단( 祭壇)은 이름난 이 마을의 납읍 난대림 지내 (천    연기념물 375) 곧 금산공원 입구에 뚜렷하고 규모 있게 설치되어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제주도는 남성 위주의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와 여성 위주의 당굿이 병존하는 이중구조를 이룩하는바,    마을에 따라 다음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포제와 당굿이 대등하게 치러지는 마을.
   포제를 중시하고 당굿을 소홀히 여기는 마을.
   당굿을 중시하고 포제를 소홀히 여기는 마을.
 반촌(班村)인 납읍리는  의 유형에 해당된다.
 포제의 제의대상은 마을에 따라 다르다. 납읍리의 경우는 포신지위( 神之位)아 토신지위(土神之位)와    더불어 서신지위(西神之位)등 세 신위를 모신다. 서신지위(西神之位)는 곧 홍역신인데 마을사람들의     강녕과 마을의 번영을 비는 한편, 예전에는 두렵기 그지없었던 홍역의 악질에 걸리지 않도록 간곡히    기원하는 뜻이 담겨졌다. 이는 납읍리 포제의 특색이며 전래적이 제주도 포제의 전형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제주도의 포제는 포신지위( 神之位)와 토신지위(土神之位) 한 위만 모시거나 이 두    신위를 제의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남성의 포제와 여성의 당굿이 이처럼 따로 분립되어 이중적으로 치러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    에 대해 확언할 길은 아직 막연하다. 다만 원래는 남녀 가릴 것 없이 무속적 당굿을 함께 치르다가     조선조에 들어서서 유교가 점차 보급되어 가자, 시나브로 이에 영향을 받고 남성들은 따로분립해서     유교식 포제를 치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납읍리의 포제는 원래 봄과 가을 두 차례 치렀었다. 춘제(春祭)는 음력 정월 상정일(上丁日), 추제(秋    祭)는 음력 7월 상정일(上丁日)에 치렀었다. 그런데 납읍리 마을회의의 결의에 따라서 추제(秋祭)는 생    략되었으니, 1960년대 후반부터다. 혹 상정일(上丁日)에 마을 안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해일(亥日)을     택했으니, 이른바 '혹정혹해(或丁或亥)'라 한다
 납읍마을의 자랑인 금산공원에 들어서면 높직하고 뚜렷하게 포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네모나게 돌을    쌓아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포신단( 神壇)·토신단(土神壇)·서신단(西神壇)을 꾸며서 적절히 배    치하고 있다. 포제단의 모습이 돋보일 만큼 품위 있고 주변에는 금산공원의 헌칠한 나무들이 자라      나서 한결 운치가 감돈다.
 제관을 선출한다든가 제의비용을 마련하는 등 치제에 따른 크고작은 일은 이 마을의 향회에서 결의되    고 집행한다. 제의비용은 주민들이 각출하거나 공급 또는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제관은 초헌관·아헌    관·종헌관 등 열두 제관이 맡는다. 제관들 각각의 입무는 유교식 행제의 관례와 같다. 특히 집례(執    禮)는 제의를 치르는 법에 능통한 사람이 맡게 되며 대축(大祝)은 축을 잘 쓰고 능숙하게 고할 수 있    는 사 람 으로 선택될 것은 물론이다.

 초헌(初獻) : 첫째 현관.
 아헌(亞獻) : 둘째 현관.
 종헌(終獻) : 셋째 현관.
 집례(執禮) : 제차(祭次)에 따라서 홀기를 낭송하는 사람.
 대축(大祝) : 축문을 짓고 낭독하는 사람.
 찬자(贊者) : 헌관이 배례를할 때 집례(執禮)가 부르는 '국궁배'하는 소리를 받아서 興을 창하는 사람.
 알자(謁者) : 제의를 치를 때 헌관을 인도하는 사람.
 봉향(奉香) : 제의를 치를 때 향을 받다는 사람.
 봉로(奉爐) : 제의를 치를 때 향로를 받드는 사람.
 사준(司樽) : 제의를 치를 때 제주병을 관리하고 잔에 제주를 붓는 사람.
 봉작(奉爵) : 부은 제주잔을 헌관에게 드리는 사람.
 전작(奠爵) : 헌관이 올리는 제주잔을 받아서 젯상에 올리는 사람.

 이 밖에 전사관(典祀官)이 있는데 곧 제물을 준비하여 진설하고, 제의가 끝나면 철상한다든다가 음복    을 서두르는 등 제물(祭物)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제관들은 제의를 치르기 사흘 전에 제청(祭廳)에 들어가서 합숙하면서 근신한다. 제의를 치르기 전후    에 온갖 정성을 다하면서 불상사가 없도록 한다. 말고기·개고기 따위를 먹어서도 안 되며 시체를 보    아서도 안 된다. 비늘이 없는 음식을 먹는 일도 삼간다. 예전에는 제의를 치를 때 입을 예복이나 유건    을 각자 준비했었는데, 납읍마을의 경우 이제는 일괄 구비하고 있다.
 제물은 제의를 치르기 전날 준비한다. 제의를 치르는 날 자시(子時)가 가까워질 때 제단에 진설한다.    제물은 메 네 가지, 희생, 폐백, 과일, 제주, 바닷고기, 채소류 등이다. 메는 (稻)·(梁)·(黍)·(稷)으로    된 메를 각각 한 그릇씩 올리는 게 원칙이지만, 더러 생산이 안되므로 쌀메 두 그릇, 차좁쌀메 두 그    릇씩 올리다가 같은 메를 두 그릇씩 올리기가 멋적다고 각각 한 그릇씩으로 줄였다. 희생은 마을에서    기르던 검은 색 수퇘지를 택한다.
 명주와 백지로써 폐백을 삼고, 과일로는 밤·대추·비자·귤·배 등이다. 제주로는 감주를 쓰고, 바닷    고기로는 포(脯) 대신으로 조기를 구워서 올린다. 채소류로는 미나리·무우채 등이다.
 제의는 자시(子時)에 치러진다. 제관은 각기 예복(청금)에 유건을 쓰고 제의에 임한다. 제의는 집례가    부르는 홀기에 따라서 진행된다. 순서는 奠幣禮 - 初獻禮 - 讀祝 - 亞獻禮 - 終獻禮 - 撤 豆 - 望燎    位로 이어진다. 철변두(撤 豆)는 음복례가 끝난 뒤 제관이 제기(祭器)를 거두는 제차(祭次)이며, 망료    위(望燎位)란 본디 축문(祝文)를 태우는 곳을 뜻한다.
 납읍마을 포제의 경우 여느 마을과는 달리 세 신위를 모시는 게 특징이므로 전폐례(奠幣禮)를 치른     다음에 포신지위( 神之位), 토신지위(土神之位), 서신지위(西神之位), 차례로 모든 의례를 치른다. 그    런 다음에 원위치로 돌아와서 사배(四拜)를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마을의 사환을 시켜 희생으로 올렸던 돼지를 잡게 한다. 제관과 마을사람들이 함    께 어울리어 음복한다. 음복하면서 마을사람들은 마을 공동의 크고작은 일을 의논하기도 하며 공동체    의식을 재확인한다. 주민들은 마을의 소중한 구성원임을 새삼 깨달으면서 자아정체의식(自我正體意識)    을 드높이는 기회로 삼는다.
 음복할 무렵에는 마을 어린이들도 함께 먹고 즐긴다. 어린이들로서는 밤을 새며 치르는 포제의 음복    에 참여하고 마을 어른들의 결속과 마을의 강녕을 정성껏 기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납읍리는 제주도내에서도 남성위주의 마을제인 포제가 전형적으로 치러지는 반촌(班村)이다. 금산공원    에 의젓이 마련된 포제단도 품위를 갖추었는가 하면, 주민들을 홍역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서신지위(西    神之位)라는 신위를 더불어 설정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여러모로 납읍리의 마을제인 포제는 아직도 그    원형을 간직했다는 면에서 유다른 값어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의 남성위주의 마을제인 포제가 언제부터 치러졌는지, 그 본래의 제의는 어떤 모습으로 거행됐    는지를 정확하게 밝히는 일은 우리의 중요한 과제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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