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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너른개」또는「널개」라는 옛이름을 가진 판포리는 정확한 설촌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 1439년 윤 2월 4일 도안무사 한승순의 보고에도 봉화와 후망은 주의 동쪽 김녕에서 판포에 이르는 10개소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15세기 중엽에 이미 마을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초기에 「판을포」라 불리어 오다가 조선조 말기에 판(板)개(浦) 로 명명하여 불리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음.

「너른개」또는「널개」 라는 옛이름을 가진 판포리는 한경면의 동쪽 끝단에 한림읍의 월령리와 경계하고 바닷가에서부터 산쪽으로 뻗어 있다. 과거 삼현시대에 제주의 가장 서쪽 끝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던 이마을은 지금은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해번 우회도로를 따라 38.4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버스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한라산의 북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북쪽으로는 태평양의 거친 바다를 정면으로 맞대하고, 서쪽으로는 금등리와, 또 동남쪽 2km 지점에는 이웃마을인 조수, 저지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의 풍수지리학 상 지형은 '배 형치'라는 것인데, 상동에 이물(앞머리)을 두고, '가마귀동산'에 고물을 삼아'미밋'에 뱃대를 꽂고 있었는데 나중 미밋에 샘을 판 때문에 배에 구멍이 뚫린 격이라 액장들이 생기고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신명동만은 이 때도 종선 형치여서 무사고로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초의 설촌은 판포악 기슭의 '호강물' 주변과 '엄동산' 서쪽, '한이와' '홍수암' 일대가 아니었나 추정되고 있는데, 이 일대에는 지금도 돌담가에 대나무들이 있으며, 이 밖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또 '복샘이동산' 일대와 '사장밧' '동산이씨 댁' 아래쪽에 옛날에 방묘들이 널려 있었는데 일제시 도굴꾼들이 이 무덤들을 도굴해가 버렸다. 이 유적들은 판포리 동북쪽 장군능경 고인돌과 더불어 이 일대에 오래 전에 사라밍 살기 비롯했었다는 증거자료들이라 할 수 있으나 그나마 이제는 구전만이 전해올 따름이다. 
'널개'는 이 인근에서는 긍지 높은 양반마을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1946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더불어 법률 제 390호로 공포된 읍, 면, 설치와 행정구역의 명칭 변경에 관한 법률에 따라 판포리가 한림읍에서 분리되어 한경면에 속하게 되었다. 
판포리의 옛 향사는 1920년대 현재의 상동 판포교회 옆 농협창고 자리에 20평 규모로 있었다. 
그런데 그 후 1930년대 상동의 고성권씨가 250평의 부지를 기증한 것이 계기가 되어 30평 규모의 새 향사를 지어 사용했는데 그것이 지금은 농협의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그 후 1960년대에 와서 25평 규모의 건물을 다시 지어 리민회관으로 사용해 왔는데 이 건물은 지금은 새마을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현재의 리민회관은 1982년에 대지 337평에 건평 69.2평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 마을의 행정업무와 노인회관, 기타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역대이장

역대이장

順 位

姓 名

在 任 期 間

연 락 처

1

박경집(朴京集)

 

 

2

김석구(金錫九)

 

 

3

김기관(金基寬)

 

773 - 1228

4

현규선(玄奎善)

 

 

5

강여형(姜汝珩)

 

 

6

박군언(朴君彦)

 

 

7

함상익(咸尙翊)

 

773 - 1243

8

진수관(秦守官)

1961. 7. 4 ∼ 1962. 1. 7

 

9

고종혁(高琮赫)

1962. 1. 7 ∼ 1963. 2. 25

 

10

박희경(朴曦璟)

1963. 3. 25 ∼ 1965. 5. 31

773 - 1228

11

현성권(玄成權)

1965. 5. 31 ∼ 1967. 3. 13

 

12

이봉언(李奉彦)

1967. 3. 13 ∼ 1969. 4. 4

 

13

박군언(朴君彦)

1969. 4. 5 ∼ 1970. 9. 25

 

14

함상익(咸尙翊)

1970. 9. 25 ∼ 1972. 8. 22

773 - 1243

15

우봉현(禹奉鉉)

1972. 8. 22 ∼ 1973. 9. 24

 

16

김두현(金斗鉉)

1973. 12. 30 ∼ 1974. 12. 30

773 - 2360

17

현순옥(玄順鈺)

1975. 1. 1 ∼ 1977. 4. 1

773 - 0411

18

김일성(金一成)

1977. 6. 1 ∼ 1980. 3. 1

773 - 1227

19

진광옥(秦光玉)

1980. 3. 1 ∼ 1985. 3. 25

773 - 1344

20

정창순(鄭昌淳)

1985. 3. 25 ∼ 1988. 3. 30

773 - 1316

21

고사문(高士文)

1988. 3. 31 ∼ 1991. 1. 26

773 - 1279

22

현순호(玄順昊)

1991. 1. 26 ∼ 1994. 2. 18

773 - 1334

23

변성흠(邊性欽)

1994. 2. 18 ∼ 1998. 2. 5

773 - 1259

24

함영진(咸瀛珍)

1998. 2. 5 ∼ 2000. 1. 21

773 - 1501

25

변석호(邊錫浩)

2000. 1. 22 ∼ 2002. 1. 6

772 - 1270

26

고원일(高元一)

2002. 1. 7 ~ 2004. 1. 18

773-1216

27

함윤희(咸允喜)

2004. 1.19 ~ 2006. 2. 1

772 - 4696

28

고재우(高在佑)

2006. 2 .1 ~ 2010.1.25

772 - 3367

29 변재성 2010.1.26~2012.1.18  
30 고종범 2012.1.19~2018.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