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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색달마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옛 문헌들을 뒤져도 정확하게 찾아내기가 어렵다.
고려때 원나라 군사를 내쫓고 국권을 회복하여 1374년에 제주에 14현촌을 설치할 당시 예래현이 있었으므로 이 때에 색달마을 경내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입증할 자료가 된다.
이 때 현에 호장(戶長)을 두어 다스렸는데 큰 현(懸)에는 호장 3인 중현에는 호장 2인 작은 현에는 호장 1인을 두었다.
색달마을 들렁궤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으로 보아 색달마을 경내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현의 설치보다 1, 2백년전 쯤으로 보아진다. 색달동 2610번지에서 기왓장조각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 근방을 주승케라 부르는데 주승(主僧)이라 함은 곧 승려를 말함이 아닌가 싶다. 또한 정신당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옛사람들은 정착하여 살게되면 으레 신당을 설치하였다. 정신당의 역사는 아주 오래인 듯하다.
주승케 근방에 개여물과 감수물 등 식수로 이용할 수 있는 샘물이 있어 왜구의 침입도 손쉽지 않았으리라 믿어진다. 1730년대 호조참판(戶曹參判) 김명헌씨가 호근리에서 주승케 고(高)씨 문중으로 장가들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다.
김명헌씨가 사망한 후 셋째아들이 이 곳을 떠나므로써 이곳의 거주역사는 일시적이나마 중단되었다가 1850년대 장(張)씨 등이 감수동에 입주하여옴으로써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이 보다 앞서 1600년대에 유지남드르(생수물 북쪽)에 사람들이 입주해 왔다.
이 때부터 신작로 남쪽인 주승케를 알색달리라 불렀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즉 일주도로 남쪽에서 일주도로 북쪽으로 주거지가 옮겨진 셈이다.
유지남드르에도 몇 호가 살았는지는 모르나 그 곳이 밭들이 작게 조밀한 것으로보아 7, 8호가 거주하지 않았나 여겨지나 이 역시 수수께끼다. 그렇다면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진업(金振業 金東好의 11代祖)씨가 유지남드르에(1690) 입주하기 전의 적어도 5, 6백년의 색달마을의 사람이 주거역사는 사료를 발굴하지 못하여 그 내력을 밝혀내지 못하는 한계에 이른다.
1690년이후의 주거역사이나마 이를 조명해 보고 발전과정과 애환 서린 조상들의 생활상을 밝혀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며 마을발전의 귀감으로 삼는 길이 될 것이다.
[색달마을지]

역대이장

역대이장을 대수, 직명, 성명, 재직연대로 나타낸표입니다.
대수 직 명 성명 재직연대
1대 이장 김경춘 1952년
2대 이장 성계송 1953년
3대 이장 김신길 1954년
4대 이장 강두옥 1957년
5대 이장 김인옥 1958년
6대 이장 지인생 1959년
7대 이장 김규호 1960.10-1962.11
8대 이장 강정규 1962.11-1964.10
9대 이장 한희웅 1964.10-1968.7
10대 이장 김규호 1968.8-1970.9
11대 이장 허경화 1970.9-1972.3
12대 이장 김성운 1972.3-1973.3
13대 이장 김규형 1973.3-1974.12
14대 이장 김방철 1974.12-1976.5
15대 이장 김만석 1976.5-1977.3
16대 이장 강화주 1977.3-1978.3
17대 이장 김창석 1978.3-1980.3
18대 이장 김명윤 1980.3-1982.3
19대 통장 한봉수 1982.2-1984.3
20대 통장 강완주 1984.2-1986.2
21대 통장 성정순 1986.2-1988.3
22대 통장 김문희 1988.3-1990.2
23대 통장 허유완 1990.2-1992.2
24대 통장 변봉남 1992.2-1995.2
25대 통장 김승철 1995.2-1996
26대 통장 김방철 1997-1998
27대 통장 강완준 1999-2000
28대 통장 김창석 2001-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