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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이 마을에 처음 사람이 살았던 곳은 서호리와 법환리 사이 (큰가름)이었다고 전한다.
속칭(통물)머리에 서호리 마을의 지번 1번지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여기도 초기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는 집단부락을 이룬 것은 아니며, 큰가름, 통물 외에도 이 마을 인근의 (원통), (과원), (너분터)등지에 2-3호, 5-6씩이 흩어져 살았으며 주변은 아름드리 숲이었다고 전해온다.
이 마을 출신 許垠이 1927년에 쓴(호근록)에 의하면 '이 마을은 趙씨 韓씨가 창설한 곳이다. 거금 300년 경에 혹은 처가살이로, 혹은 지경을 선택하여 와서 살면서 마을의 이름을 (好近磊里)라 불렀으니 그것은 머들(돌무더기)이 높은 까닭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후 100년쯤에 (磊)자가 빠지고 (好近里)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또 서호리 웃동네 許씨 집터에 고려말 정당문학을 지낸 趙元이 바다를 건너와 조선조 개국 3년(1394)갑술년에 여기 터를 잡았으며 그 후 8세에 망하니 陽川許씨가 장가들어 그 터에 살았다고 쓰고 있다. 이 후 靑州韓씨가 들어 와 살았었다고 하나 그 후예는 없으며 이 한씨 집에 사위로 軍 吳씨가 들어와 이제까지도 살고 있다.
이후 1892년에는 씨족간 다툼으로 마을이 분리되기 시작하며 1900년 한때 합리가 되기도 하지만 1903년 다시 서호. 호근리로 나뉘어 1981년 서귀포시 대륜동의 6-11통에 소속될 때까지 지속된다.

서호동은 전도에서 제일 먼저 수도를 시설하였다
서호동는 근산이라 하여도 생수나는 곳이 없어 부락민들이 원거리에 있는통수까지 가서 물을 우마 혹은 아녀자들이 물허벅을 지고 운반하여 식수로 사용했다.
당시 구장인 김익규와 허은 두분이 의논한 끝에 수도를 시설하기로 결정하고 유지들이 모여 협의 끝에 수도를 시설할 것을 결의하였다.
수원지를 학수암 동쪽 골짜기(절곱지)로 선정하고 1926년 8월 신평리에서 수도관을 하기로 하였으나 우리부락 지형 여건상 암반이 많아 파손관계가 심할 것을 알고 일본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경비 5,000엔을 모금, 자본모금 4,670엔 합계 9,670엔을 가지고 부락내 4구간을 시설하기로 결정하고 저장실을 만들고 일본에서 철관을 청원하여 서귀포항구에 도착하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쌔로 운반하며 가설이 끝난 것이 1927년 7월7일에 준공하였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자 참석자 전원 환호성을 울렸다. 수도는 춘하추동 흘려내렸다. 전도적으로 우리 부락이 제일 먼저 수도를 시설하여 타부락의 모범이 되었다.

전기가설
우리부락에 전기가 공급된 것은 1947년 12월15일이다.
서귀포시관내에서는 서귀포다음이다. 당시만 해도 일반서민과는 거리가 먼 사치품에 불과한 것이다.1945년 해방이 되자 청년회에서는 걸궁을 해 기금한 돈 12,000원을 부락에 전기가설금으로 기탁하였다.
이때 부락에서는 전기가설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위원회에서는 고대규, 허태주 두분을 제주읍으로 출장을 보내어 한전과 협의하고 업자로 조일락을 선정하여 그 죽시 부락에 도착하니 부락민들이 나와 환접하였다. 돈이 없어 전기를 못내는 농가에서는 우대기용 솔피나무를 그 금액과 알맞는 수량을 한라산에서 도벌하여 업자에게 납품하여 전기를 가설하였다. 이것이 처음으로 1947년 12월15일 점화되었다.
그 후, 1948년 4.3사건으로 공비들은 전선을 절단하여 버렸다. 사태가 날로 험하여지자 1949년 5월10일 군대가 고근산 뒤에 주둔하며 공비 토벌을 하는데 부락에서는 가정집에 들어가는 전선을 철거하여 전기를 가설해 버렸다. 계엄령시대라 어찌할 수 없었다.공비가 진압되고 부락이 철수되어 안정이 되는가 했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국가가 혼란이 되어 어찌할 수 없어 1952년도에야 다시 허가를 받고 전 농가에 점화되니 6년이란 세월이 흘러야 끝이 난 것이다. 공사비 41,000원이 들었다.
우리 부락주민들은 개인보다 공공사업에 타 부락민보다 투철한 사명감과 단합된 정신으로 타의 귀감이 되어왔다.

역대이장

역대이장
해방전구장 해방후리장 1981년도 시승격이후
6통장 7통장 8통장
허승 허완 허영택 허승길 현창남
김종협 오태흥 허홍수 현한영 김창국
김익규 고정호 고창두 고창원 김익조
고대규 허완 김정구 허무길 현창두
허도 김일선 현경훈 허욱 오경팔
현홍순 허태우 김창흡 오진수 현창학
오정흥 오달언 고철성 허창희 현동화
  고정호 강종훈 고성철 고익현
  오태흥 허동길(2004~2007) 윤세찬(2008.9~2009)  
  김우남 현문헌(2008~8월까지)  현문법(2010~2011)   
  고정흡   오부숙(2011~2013)  
  김영오   현경택(2014~2017)   
  김원서   김남우(2018~2019)   
  허성찬      
  김영희      
  현만순      
  강익수      
  고대옥      
  허무길      
  오달봉      
  허대진      
  허문댁      
  오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