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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풍물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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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리침받
작성자 관리자 조회 700 회

유리라 함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자랐기 때문에 어미 유리 즉 유리라는 별명이다. 유리는 어려서 기골이 장대하고 심성이 착하였다.
 아이들과 같이 놀면 언제나 때리지 못하고 맞고만 들어노니 하도 안타까운 아버지가 애 너는 애들한테 맞기만 하느냐 하며 아들에게 다구쳐 더러 때리기라도 하라고 타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 유리는 제가 그것들을 한번 때리면 크게 상할 것이므로 맞는 것이 났습니다고 하였다.
 어느덧 성장하여 밭을 일구며 농사에 열심히 생활이 나아져 갔다.
 어느날 어떤 젊은 사람이 소를 몰고와서 소를 사라고 하였다.  마침 부리던 소도 시원치 않고 해서 적당히 돈과 곡식을 주었으며 식사도 잘 우대하고 보내었다.  며칠이 지나서 어떤 젊은이가 와서 집안을 살피고 갔다.  그런데 다음날 장정 7·8명이 와서 이 소는 누구에게 샀으며 소를 판 사람 이름을 대라고 호통을 쳤다.
 유리는 기가 막혀 그 놈 이름이나 알라 둘 것을 하고  후회하였지만 그 놈들은 막무가내로 유리를 소도둑놈을 몰아 붙인다.
 그 중 한 놈이 이 소를 판 놈을 데려오던지 우리하고 관가로 가던지 하라도 큰 소리로 호통하며 가지고온 익은 쇠막배를 물적셔 유리를 꽁꽁 묶었다.  유리는 하는 수 없이 그럴 줄 았았으면 그놈이 하는 곳, 이름이나 알아둘 것을 하며 힘을 주어 일어나는데 몸에 꽁꽁 묶은 밧줄이 졸개졸개 끊어져 버렸다.
 이를 본 젊은 장정들은 비실비실 다 도망쳐 버렸다. (이판 사판 한주먹 맞으면 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물이 그리워 유리동산 바위 위에 앉아 돌을 힘껏 내리쳤더니 바위가 뚫려 그 곳에는 곱고 맑은 물이 소복이 고여 있었다.  이 물을 유리물이라 하며 은거했던 굴을 유리괴라고 한다.
이후로 유리 이름이 유명해졌으며 성실하고 착하게 남을 도우며 잘 살았다고 한다. 후손들은 와산, 제주시 등지에서 거주한다.(조천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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