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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선인동(善仁洞)은 내생이와 엉도(白花洞)와 말무왓과 정여숙글(旌余宿窟)등을 합하여 선흘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 善자를 따서 선인동으로 개칭한 것이다.
지금부터 350여년 전 김해 김씨를 중심으로 문씨 허씨 등이 설촌한 것으로 전하며 목관(牧官)과 정의(旌義)의 왕래가 많고 교래리와도 가까운 정여숙굴에 인가가 있었다. 또 옛날 정예수(정예洙)가 이 지역에 살다가 동생과 함께 눈메(臥山)을 설촌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부대악 남동쪽 경에 감바래라는 곳에 안초관(安硝官)이 살았으며 안씨는 장수하여 백오년을 이 지역에 살아 유명했다 한다. 백화동은 엉도라 하였는데 이곳에는 김씨 안씨 문씨 허씨 주씨등 30여 호가 농축산업으로 생활하였다.
한일합방후 왜놈들의 행정편리상 선흘2구로 하여 행정구역이 분리되었다. 당시 구장은 김정근 문일돌 등이었다.
거문악에 일본병이 주둔하므로 이 지역은 민폐가 막심하였고 해방후 1948년 11월 24일 4.3사건으로 진압군에 의하여 전부 소실되고 폐동되었다. 그후 피해복구로 1962년 귀농정착단으로 10여호가 산재하여 재건하였다.
그래서 다시 선인동으로 본리행정에 편입되었으나 북제주군에서 속칭 정여숙굴 지역에 양잠 1차단지 15호가 집단으로 정착하고 2차단지 15호는 거문악 앞에 정착하였다. 결국 1,2차 양잠단지 30여호 주민과 선인동 백화동 말무왓 또 목장주민을 합하여 50여호가 이 지역에 주거하였다.
그 당시 본리와 이 지역은 도로사정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거리가 8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리행정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래서 1971년 당국에 의하여 선흘2리로 행정구역이 분리되었다.

♣설촌유래

선흘리 설촌 년대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여기에
뚜렷하게 고증할 만한 기록이 없으며 대략 650-700여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설촌은 고려 충렬왕 때)
우선 지리적 형태와 환경으로 볼 때 이 지역에 양진악(兩鎭岳) 분지에 샘이 있는데 이 샘가에 오랜 절(寺)터가 있고 기와장등이 이곳 저곳에서 발견되며 지금의 상률악(上栗岳)분지에는 사시사철 흐르는 샘(용천)이 있으니 이샘이 바로 현씨가 설촌시에 개발하여 이용하였다 하여 현샘이라 부르게 된 것이 구개음화되어 오늘날 선샘이라고 호칭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씨에 의하여 설촌하였다 하여 玄이 先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얽힌 전설과 구전에 의한 자료와 고증이 되는대로 감안 정정하기 바람.
현재의 선흘리는 서기 1,900년경에 楠檀 李太成 선생이 착한 기상이 산과 같이 높게 뻗어 나아가라는 뜻으로 글자만 고쳐 선흘리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때에 알선흘은 落善洞으로 내생이등을 善仁洞으로 엉도를 白樺洞으로 큰물도를 대수동으로 새동네를 장생동 혹은 장상동으로 각각 개명된 것이라 한다.
선흘리는 옛날 族義로 왕래하는 중심행로가 되며 이 지역 땅이 매우 기름(비옥)지어 오곡이 잘 되었으므로 주민의 생활이 윤택하여 큰 마을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본리 알선흘(落善洞)이 먼저 현씨, 문씨, 김씨들이 동네를 이루었으며 이웃 마을들과 왕래하며 생활하는 동안 교통이 점차 발전하였다 한다.
따라서 이 지역은 옛지명들이 그대로 전하여 오고 있으며 병사의 교련장이었던 병대왓과 승리의 개가를 올린 개선밭과 진을 쳤던 진터 활을 쏘던 사장밭 등이 있으며 풍년과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천신에 기원했던 제석동산이 있고 또 제석동산은 지석동산 고인돌이 있는 동산이라고도 하며 학자와 풍수사들의 설이 엇갈리어 현지를 답사하였던 설도 있다.
또 무당이 무신을 모신곳이 있는데 이는 알선흘에 모신 신당은 할아버지 당이 되며 윗선흘에 모신 신당은 할머니당이라고 한다. 이 할머니 당의 신은 안씨에 의한 신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낙선동 병대왓 일대에는 오랜 집(古家)터 들이 있고 기와장과 고려자기 파편이 발견되며 속칭 묵은가름 묵은터동산 문구리집터 만수집터 마감집터 장선달집터 김설달집터 무신을 모신 당아진밭 당동산 등이 있으며 알선흘(善屹)섯가름은 돗바령이라고도 하며 설촌 당시에 맷돼지가 많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한편 선흘리는 그 지명이 많은 중에 배를 만드는 나무와 관련된 지명 속칭이 연이어져 있으며 알밤악 동쪽에서부터 본동까지 배남낸밭 배남머르 배남빌레 배남터 등 지명 속칭이 있으니 옛날 본리의 나무가 울창하여 이곳에서 생산된 나무로 각포구(各浦口)의 전함과 어선을 제작 건조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진(鎭)터와 개장(開仗)터라는 속칭 지명에서 옛날 어떤 난에 사연된 병사들이 싸움을 시작 모색했던 곳이라고 추정된다.
1653년 8월 이원진 탐라지에 의하면 선흘은 濟州東 三十五里에 있으며 柚子 四十七根 詭十六根 榧子 七根 漆 九十六根 椿 八十七根 冬栢 三根이라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라고 볼 수 있다.
윗 선흘은 安宅이 먼저 자리를 잡아 정착하였으니 1550년 경으로 추정되면 더구나 나무가 울창하여 선흘곳(동백동산)과 본동(윗선흘)이 연이어져 있었다고 전하며 통덕랑 안보상이 과납에서 선흘(先屹)에 와서 터전을 자리잡았으나 후손인 통훈대부 안홍남이 1610년 경에 본동(윗선흘)에 정착하므로써 이분이 순흥안씨의 선흘리 낙향선조이다.
納栗 안씨는 서기 1630년 경년 10월 20일 생이며 64세를 일기로 1694년 10월 26일 卒하였다.
1674년 심한 한발로 흉년에 조 300섬을 기민하니 당시 조를 주곡으로 하던 때라 선흘에서 조 씨앗을 전했다고 한다.
위와같이 선흘리 출신 납율을 한 안씨 집안과 또 문징후 형제와 김계중등이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 요직에 등용됨으로써 선흘리는 명실공히 제주 삼읍에서 유명하였다. 그래서 각 곳으로부터 명가문들이 본리에 앞다투어 이주하여 왔다. 그중 1680년경에 장사랑, 본동 섯가름에 정착하였고 1690년 훈장 유제완이 납율 안씨 사위로 본동에 정착하였다.
1727년 정미 여름 한발로 매우 황년에 안씨가 나라에 진휼미를 기민하여 증가선대부에 오르고 1787년 정미 回榜(벼슬하여 회갑)년에 증호조참판에 가자되는 경사가 있었다.
1765년 호조참판 안씨의자 안상택이 무과에 급제하여 명월만호에 올랐으며 한양 조시완도 이 시대에 정착하였다. 1770년 경 운속 고광현은 명월만호 안상택의 사위로 본동에 정착하였으며 1795년 경주 김후반이 낙선동에 정착하였다.
이때 본리 오점(吳霑)이 생진과에 응시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또 무과에도 진출하여 장선달 김선달 등 무재들도 배출되었다. 아울러 제주 향청에도 성실히 출입하였으며 안승작, 고재용, 부한점등이 좌수로 봉직하였으며 특히 고재용은 향청 좌수로써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
1888년 7월에는 선흘리 출신 강인호가 제주판관에 도임되고 1892년
4월 안승관이 제주판관에 도임되었다. 그리고 교육열을 이르켜 후배양성에 온 힘을 다 하였으니 김홍두 선생이 해산제(海山齊)서원을 설치하였으며 본부락을 중심으로 학당 및 서당을 설립하여 후진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본리 유림들이 제주향교를 출입하여 훈장 도훈장 반수 등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으니 이때부터 선흘리를 양촌 또는 양반촌이라 일컬어 오고 있다.
그래서 선흘리 호수가 350여호에 이르러 큰 부락으로 인구 1,500여인이 살기좋은 마을을 이루었다. 그러나 생수가 없는 선흘은 식수난으로 어려움이 많았으나 농토가 비옥하여 오곡이 고루 잘 되었으므로 우리 조천읍에서 농토와 집값이 가장 높은 마을이였다.
이러한 인심좋고 살기좋은 본리도 한일합방으로 국권과 인권이 말살되니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보다 나은 삼과 교육을 위하여 일제에 대처하기도 하였다.

역대이장

역대이장
역순 성명 재임기간 비 고
1 한경민 72. 4. 8 ∼ 72.7.21  
2 박봉호 72. 7.22 ∼ 73.6.1  
3 이한제 73. 6. 1 ∼ 75. 8.15  
4 차경흥 75. 8.16 ∼ 76. 2.29  
5 이경배 76. 3. 1 ∼ 76. 7.21  
6 김화순 76. 7.22 ∼ 78. 1.10  
7 고제호 78. 1.11 ∼ 79. 6.30  
8 고성삼 79. 1. 1 ∼ 82.12.31  
9 오영호 83. 1. 4 ∼ 83.12.31  
10 이방식 84. 1. 4 ∼ 84.12.27  
11 차인규 84.12.27 ∼ 86. 1.27  
12 정민 86. 1.27 ∼ 90.12.27  
13 조동환 90.12.27 ∼ 95. 1. 8  
14 이기승 95. 1. 9 ∼ 96.12.25  
15~17 조동환 96.12.26 ∼ '03. 2. 2  
18~19 이출승 `03. 2. 3~`07. 1. 31.  
20~21 김상수 `07. 2. 1~`12. 1. 31.  
22 박상섭 `12. 2. 1   ~   현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