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마을약사옛날에는 잠수포(潛水捕)라 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이 마을(수원리와 한수리가 분리되기 전)에 처음 거주한 사람은 경주김씨 좌도지관(左都知官) 김검용(金儉龍)의 8대손(代孫)인 김경의(金景義)가 1580(선조 13)년에 지금은 한수리가 되어버린 당시 속칭 "대섬집터"에 거주하며 奬仕郞訓導(장사랑훈도)를 지내면서 마을의 발상시조와 한림의 발상시조가 된다고 기록-제남신문 1979년 3월 26일 제 1205호- 하고 있으며 金千益은 김경의의 손자로써 御海將軍修義(어해장군수의) 副尉(부위) 忠武衛副(충무지부) 司猛(사맹)을 지내며 조정에 말 400필을 獻馬(헌마)하여 貢臣(공신)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후 김수로왕(金首露王) 68世孫(세손)이며 김해김씨입도조(金海金氏入島祖) 김근한(金近漢)의 장남인 근동(近東)이 서기 1929(仁祖7)년에 한경면 판포리에서 수원리 287번지 속칭 "집근알"에 이주해와서 농경지를 개척하여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1720(肅宗 59)년에 김해김씨삼현한림공파(金海金氏三賢翰林公派)14세손인 제주입도조 寶逸(보일)의 손자인 김유관(金有寬)이 한경면 저지리에서 수원리 647번지에 이주하여 수원리 내동(內洞)을 설촌하였다고 하며 1730(英祖 8)년 풍천임씨(豊川任氏)17世孫(세손)인 임재연(任才連)이 한림읍 상대리에서 수원리 676번지로 이주하여 수언리 전동(前洞)을 설촌하였으며 1760(英祖 36)년 김해김씨입도조 6세손인 김용택(金龍宅)이 수원리 727번지에 입주하여 수원리 대수동(大水洞)을 설촌하였다고 한다.
1775(英祖 51)년 진주하씨영의정부사(晉州河氏領議政府使)익문효공파(文孝公派)의 18世孫인 하남징(河南澄)은 애월읍 엄장리(嚴壯里)(현 애월읍 신엄리)에서 수원리로 이주하니 본리 하시발상시조(河氏發祥始祖)가 되며 1792(正祖 15)년 남양홍씨예조좌랑명통(南洋洪氏禮曹佐郞命通)의 13世孫(세손)인 홍우상(洪禹祥)은 제주시 노형동에서 본리로 이주하여 생활터전을 닦으니 본리 홍씨(洪氏)의 발상시조(發祥始祖)가 된다.
1825(순조(純祖) 25)년 고을라(高乙那) 75세손(世孫)이며 영곡공파(靈谷公派) 30세손(世孫)인 고한운(高漢雲)은 한경면 저지리에서 수원리 514번지로 이주하여 중동(中洞)을 설촌하였으며 같은해 내동(內洞)을 설촌한 김유관(金有寬)의 4世孫인 興烈(흥렬)은 수원리 236번지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여 가좌(加座)외(龍雲洞)를 설촌하였다하며 1853( 哲宗 4)년 수원리 전동(前洞)을 설촌(設村)한 임재연(任才連)의 3世孫인 임경환(任京煥)이 수원리 658번지로 이주하여 하동(下洞)을 설촌하였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외에 전주이씨(全州李氏), 제주양씨(濟州梁氏), 제주부씨(濟州夫氏) 등과 左씨의 후손들이 입주하여 생활기틀을 마련함으로써 큰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지금부터 약 420여년전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