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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지금부터 약 700여년 전부터 본리 1596번지를 비롯한 속칭 소서물 근처(묵은 가름)를 중심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하나, 그에 대한 기록이 없고, 다만 옛날의 패총들이 있을 뿐이며, 본리 1569번지를 절터왓, 1580번지의 장수 무덤, 또는 군 마루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송포 팔경이라 불리우는 자연경관이 마을을 에워쌓다는 전설도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서기 1662년경에 진주 강씨 등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으며, 이때부터 지명을 "폴개"라 불리었다. 그러다가 1402년(태종2년)에 정의군 서중면이라 하여 의귀리에 면치소를 두면서 본리를 벌포리라 불리었으며 그후 1897년(광무2년)에는 보한리라 개칭되었다가 1902년에 태흥리로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태흥리 리정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이조 22대왕(정조)때부터 김영태씨를 리정 1대로해서 리정 3대와 경민장 김웅환부터 18대까지 리정을 운영하여 왔으며, 이조 26대왕(고종)때부터는 또다시 구장 김봉수를 1대로 7대까지 총 28대에 이르러 리정을 운영하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기 1925년부터 태흥 1, 2구로 분리시켰다가 1950.8.25일 태흥리로 합리(合里)시켜 생활하였으나 마을이 커지고 생활권이 달라짐에 따라 행정구역도 1953.9.30일 태흥 1,2,3리로 분리하였으나 1961.4.8 동년 4.21일까지 다시 합리되었다가 1961.8.1부터 다시 태흥 1.2.3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혁

폴개로 불리었으나 1402(조선 태종 2년)에 군제의 실시를 보게 되어 정의군 서중면이라 하여 의귀리에 면치소를 두게 되었으며 본리는 벌포리라 불리었고 그후(광무6년) 보한리로 개칭되었다가 1902년 전라남도 보성출신 이기원 선생과 본리 출신 김계형 선생이 태흥리로 명칭을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1) 폴개 - 서기1402년 이전

2) 벌포리 1402-1897년

3) 보한리 - 1897
ㄱ) 동보한리(현 태흥 2.3리)
ㄴ) 서보한리(현 태흥 1리) 광무 6년(개국 507년)경민장 시대

4) 태흥리 - 1902년

5) 태흥 1.2구 분리 - 1925

6) 태흥리 합리 - 1950. 8. 25

7) 태흥 1.2.3리 분리 - 1953. 9. 30

8) 태흥리 합리 - 1961. 4. 8 - 7.31

9) 태흥 1.2.3리로 분리 - 1961.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