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소개

마을소개

의귀리를 찾아주신 인터넷 가족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의귀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마을로서 1894년부터 1926년까지 서중면의 소재지이기도 한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중산간 마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교통의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순박한 인정과 인심이 살아 숨쉬는 전원 농촌으로 제주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여러분이 찾아주신 의귀리 홈페이지에는 우리 마을의 모든 것이 소상하게 설명 되었습니다.
차근차근 구경하시고, 아름다운 우리 고장을 감상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을위치

마을위치남원읍 중앙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동으로는 신흥 2리, 서로는 한남리, 남원 2리, 남으로는 태흥 1,2리, 북으로는 수망리와 접하여 있으며, 마을 동쪽에 서중천이 흐르고 있음. 도내 주요 중산간 지역을 연결하는 중산간도로(국도 16호선)가 마을을 통과하고 있고 남원∼제주간 교통 중심도로인 남조로가 중산간 도로와 의귀리에서 교차하고 있음.

일반현황

면적
면적을 나타낸 표입니다.
계(ha) 과수원 임야 기타 비고
894.9 8 669 147 70.9  
인구
인구를 나타낸 표입니다.
계(명) 세대수
1,141 585 556 475
마을재산
마을재산을 나타낸 표입니다.
마을회관 경로당 창고 목장 공동묘지 기타 비고
1 1   1 1 1 청년회관
주요시설
주요시설을 나타낸 표입니다.
학교 은행 의료시설 공공기관 기타 비고
1 2 1   1  
자생조직
자생조직을 나타낸 표입니다.
노인회 원로회 부녀회 청년회 영농회 작목반 기타
1   1 1 1 5  

자연환경

마을이 둥근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후가 온화하여 감귤 재배의 최적지이며, 중산간 도로와 남조로가 마을 내를 통과하고 있어 교통 도로망이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음.

  • 의귀리 교통편
    일주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면의 중심 마을로 구관도에 위치해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던 의귀리는 한동안 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 중의 하나였으나, 근래들어 매우 교통편이 좋아졌다. 특히 1991년 6월1일부터 남조로가 개통되어 제주시까지는 버스로 불과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남조로를 운행하는 버스가 매시간당 3회씩 통과하기 때문에 제주시에 가려면 서귀포까지 가서 갈아타야 했던 불편이 해소되었다. 남원까지는 일주도로를 잇는 간선도로가 1976년 2월 포장되었고, 그 후 서귀포-상효-신예-위미대성동-한남리-의귀리-수망리-신흥2리-토산-가시리-표선 등을 잇는 중산간도로로도 80년대 중반 완전포장되어 매시간 당 한 대 꼴로 버스가 다닌다. 서귀포까지는 버스로 25분 정도 걸린다.
    전기는 1974년에, 전화는 1977년에 각각 가설되어, 집집마다 전자제품과 전화 등이 마련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의귀리에는 수퍼마켓을 비롯한 잡화점이 5개소, 쌀가게 2개소, 식육점 및 식당 2개소, 주산학원 1개소, 피아노교습소 1개소, 공업사 2개소가 있다.

산업구조

의귀리는 중산간 마을로서 감귤을 비롯한 고소득 경제작물을 재배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특히 감귤산업은 이 마을 소득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보리, 조 등을 주로 재배했으나 부지런한 사람이 겨우 충당할 정도에 불과했으며, 70년대까지만 해도 무말랭이, 고구마, 유채 등의 환금작물을 많이 재배했다.

80년대에는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고소득 작물을 재배해 많은 소득을 올리기도 했으나, 90년대에 들어 농산물 수입 자유화의 여파로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이제 모두 다른 작물로 전환되고 있는 상태였다. 다만 바나나, 파인애플의 작목전환으로 시설감귤 재배농가는 점차 느는 추세였다. 전 농토가 감귤원이라고 표현할수 있을 만큼 이 마을에는 거의 전 주민이 감귤에 의존하고 있다.

고소득 작물의 재배로 가구별 소득이 비교적 높은 의귀리는 자동차를 보유한 가구가 많아 리사무소 조사 자료에 의하면 자동차 수가 가구당 1대꼴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수백필씩 조정에 헌마할 정도로 조선시대에 활발했던 이 마을의 축산업은 이제 매우 침체돼 있다. 전에는 목초지로 이용됐던 곳이 상당 부분 개간되어 감귤원으로 조성됐음은 이 마을 산업 변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전년도의 소가 1999년에는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양돈장과 양계장이 1개소씩 있으나 양돈장은 이 마을 사람의 소유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