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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위미리에 언제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는가에 대한 사실은 그것을 입증할 만한 사료가 발견되지 않아 그 정확한 연대를 밝혀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교적 객관성을 갖는다고 인정되는 구전자료에 의하여 설촌의 역사를 추정하고, 그 이후는 가문별 위미 입도 선묘의 비문과 족보 등을 통하여 위미리 설촌의 역사를 밝혔다. 위미리에 처음 들어와 살았던 사람은 지금부터 약400년 전 고좌수였다. 고좌수는 상위미의 속칭 '큰 터왓'에 터를 정해 살았는데 현재 이곳에는 당시의 사실을 입증하는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오조리터의 토기와 유기 그릇의 파편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고좌수의 후손들은 '좃벤 골총'의 전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절손되어 버림으로써 현재 위미리와는 혈연적 유대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어서 성씨가 현재 위미교회 서북쪽의 속칭 '신세기 모루'에 살았으며(그의 후손인 성대씨는 마을의 노인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동쪽'으로 이주를 해버렸다고 한다) 셋뙤미에는 좌수가 살았다. 또한 '안가름'에는 허씨와 홍씨, 강씨가 살았다.(그들이 살았던 터는 '한비장통', '홍비장터', '강의방터'라는 지명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역시 이들도 그후 다른 마을로 떠났거나 절손됨으로써 현재 위미리와의 혈연적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위미리에 정착하여 그 뿌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사람들은 약350년 전 위미 2리의 군위오씨(軍威吳氏), 그리고 위미 1리 연안김씨(延安金氏)의 사위가 되어 정착한 고씨가 위미리에 처음으로 터를 정한 사람들이다. 연주 현씨도 이때를 전후해서 위미리에 터를 잡았다. ○ 웃동네와 알동네 오늘날의 명륜동은 일주도로를 중심으로 웃동네와 알동네로 나뉘어 졌는데 제일 먼저 이 곳에 정착한 사람은 120여년 전 고대현의 증조부였다(현재 오광조의 집 뒤에 살았다.). 그 후 양성찬의 조부, 오경진의 조부, 현평순의 조부 등이 잇달아 정착했다. 한편 이곳은 일찍부터 바로 앞에 있는'황하소주공장'과 앞개에 드나드는 제주→일본간의 연락선들로 해서 여관과 상점들이 생겨났는데 여관은 현재 고승의 집 바로 서쪽에서 정난향(김영태의 조모)이 운영했고, 상점(점방)은 현재 신협 위치와 그 동쪽에 황하소주공장의 주인인 황순하의 사촌 황지하 상점과 조천 출신 김재방의 상점이 있었다. 그리고 대정출신 고은표가 운영하던 이발소도 있어서 당시에는 위미리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약55년 전 위미 1리를 휩쓴 대홍수('웃친내'가 크게 넘쳐 이 일대 집들은 물론 마소, 돼지까지 쓸렸으며 어린이 2명이 죽었다.)로 말미암아 여관, 상점도 물에 잠겨 버리고 운영자도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