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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명창 박효자
작성일 2011-01-18 09:18:59 조회 890 회
작성자 관리자 연락처

     한림읍 월림리에 박씨 효자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박당장이라 불렀는데, 원래 소리를 잘하는 명창이었다.
     조정에서 임금이 승하하자 국상(國喪)이라 하여 각도에 전령하기를 "각 도읍의 선소리꾼은 국상에 보내라."고 했다.
     이에 박당장의 이름도 조정에 보고되어 제주읍을 대표로 해서 국상에 참가하게 되었다. 박당장이 한양에 올라가 좋은 목소리로 선소리를 하자, 전국에서 올라온 선소리꾼들이 '명창'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석달 열흘만에야 국상이 모두 끝나게 되었다. 임금이 특별히 박당장에게 상을 내렸다. 선소리를 잘했다는 공로상이었다.
     "내가 먹는 것과 똑같이 상을 차려 선소리꾼들을 대접하라."
     임금은 국상에 참가한 모든 선소리꾼에게 진수성찬을 내렸다. 그때 전라도에서 온 선소리꾼은 밥을 그저 막 먹었으나 박당장은 일체 먹지를 않았다. 이를 본 임금이 그 이유를 물었다.
     "어찌하여 너는 밥을 먹지 않느냐?"
     "저에게는 늙은 부모가 있는데, 이렇게 귀한 음식을 차마 저 혼자만 먹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 드린 다음에야 먹겠습니다."
     이말을 들은 임금이 박당장의 지극한 효심을 생각하고는 밥을 먹도록 권유했다.
     "너, 그 밥을 먹어라. 그러면 내 그와 같은 성찬을 차려 줄 터이니 부모님께 대접하도록 해라."
     박당장은 임금이 특별히 내려준 음식을 가지고 목선을 타고 제주도까지 여러 날 걸리면서 왔으나 음식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소문이 널리 퍼지자 제주 목사가 음식을 조사해 보았는데 소문과 다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 하자 임금은 박당장의 효성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효자 완문을 내렸다.
     그후부터 제주읍 사람들은 박효자라 해서 박당장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 어떤 사람이 관가에 잘못한 일이 있어 잡혀 갔을 때라도 박효자가 가서 해명을 하면 풀려나기도 했다.
     박당장의 아들은 박유학이라고 지금 살았으면 이백세가 조금 넘었을 것이다. 박당장이 양반인 데다 효자 완문까지 임금으로부터 받은 효자인 까닭에 명월진에서도 높이 받들었고 제주목에서도 많은 혜택을 베풀어 주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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