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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마을약사이 마을의 설촌은 지금으로부터 약 270여년전에 고의방(高議方)씨 일가가 사냥을 하기 위해 입주함으로써 마을 설촌이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지금도 마을 중심의 "물거리질"주변에는 2∼3백년 묵은 팽나무들이 당시의 설촌연대를 말하여 주듯 조용히 서있다.
그 후 수년후에 변씨가 또 10여년이 흐른후 본(本이) 김해인 汝록씨 5형제가 입주하여 7∼8대를 살아오고 있으며 그후 경주이별장(慶州李別長)형제, 남양홍씨, 덕원현씨, 한양조씨, 탐라부씨 그리고 문씨들이 들어와 4∼5대를 살며 차츰 큰 마을로 형성되어 왔다.

발전사

제주의 비극인 제주 4.3사건이 발발되면서 마을 리면 전체가 해안부락으로 소개해야 했으며 4.3사건의 종결과 더불어 마을이 재건되 이 마을은 서기 1969년 수도가 가석되기 전까지는 "소롱물","앞동산물" 등 봉천수에 의존하여 생활용수로 사용하였는데 제주특유의 화산구토인 중산간 마을로써 물의 어려움이 다른 마을에 비해 어려운 지역의 하나로 가뭄이 심할때는 소방차로 급수를 하기도 했다. 
마을 주변 옥토인 "논쟁이들" "마수흘"등은 과거 곡창지대였으나 서기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감귤재배붐으로 인하여 지금은 전농토가 감귤원으로 변하여 현재 이 마을은 사실상 부자의 마을로 옛 이름을 간직한채 전 리민이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에는 조선조에 송재두 선생 등이 서당을 열어 후진을 가르쳤으며 그 이후에는 마을세때문에 서기 1962년도 이후에는 저지초등학교에 취학하고 있다. 
당초에는 식수 때문에 그후에는 농토 때문에 최근에 와서는 자녀교육 때문에 리민들이 자꾸 이주를 하고 있다고 뜻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아쉬워 하고 있다.

감귤원 조성

1960년부터 불기 시작한 감귤의 붐은 이 마을에도 예외없이 찾아들어 "노승원"일부지역에서 감귤나무를 심기 시작한 후 전 마을에 걸쳐 감귤나무식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마을이 집성촌을 이루던 문, 조, 부, 변, 김씨등이 선두에서 나무를 심기 시작하자 타지역에서 온 사람인 오씨 박씨 등도 덩달아 협조하여 감귤하면 월림리라 칭할 정도로 한림읍 지역에서는 대단한 감귤원이 조성되어 나갔다. 당시 월림리는 월림리 감귤조성단지라 부를 정도로 감귤원이 팽창되어 나가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감귤원 조성과 더불어 문화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도 가설과 전기가설 그리고 전화 가설 등이 차례로 이루어 졌으며 현제 마을 사람들 90%가 감귤원을 경영하면서 "음부리"인답게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역대이장

역대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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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효(洪太孝)
김석린(金錫麟)
문봉직(文逢直)
변정삼(邊丁三)
현대경

















문봉식(文逢植)
현운봉(玄雲鳳)
김귀평(金貴平)
김공여(金孔汝)
현영봉(玄永奉)
김경률(金京律)
김성담(金聖淡)
부영화(夫永和)
김경률(金京律)
조중흥(趙中興)
변태봉(邊太奉)
조중흥(趙中興)
변천석(邊天錫)
김경희(金景熙)
조문창(趙文昌)
문태수(文泰壽)
조경욱(趙京旭)
문의웅(文義雄)
조용찬(趙容燦)
현일호(玄日浩)
변수종(邊守鍾)
조용찬
조태문(趙太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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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 1958
1958 - 1959
1959 - 1960
1960 - 1961
1961 - 1963
1963 - 1964
1964 - 1965
1965 - 1967
1967 - 1969
1969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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