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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풍물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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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추자도의 신앙
작성자 관리자 조회 392 회

  조선시대인 1602년(宣祖 35) 1월 29일, 서북풍이 크게 불어 楸子島 堂浦(지금의 大西里 楸子港)에서 하루 밤을 배 위에서 잘 수밖에 없었던 淸陰 金尙憲 어사는 당시 그의 일기식 기록인 <南 錄 >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一島之北岸有土堂 往來船人 祈神禱風之處 浦名爲堂以此也(섬 북안에 당이 있는데 왕래하는 뱃사람이 신에게 바람 자기를 비는 곳이다. 포구 이름이 당포인 것은 이로 인해서이다.)

  추자도에 1950년대부터 교회가 들어서기 시작해서 지금은 매 마을마다 교회가 서 있고, 천주교 공소도 세워져 있으나 아직도 이 섬 사람들의 의식은 다분히 다신적(多神的)이다. 이는 이곳 사람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고, 딴 지방에 비해 무속의례에 대해서도 관대한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 섬의 자연이 대단히 험난하고, 죽고 사는 것을
자연(바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을 오랫동안 겪으면서 은연중에 섬 사람들 속에 형성된 것일 터이다. 그들은 지척지간에서 가족이나 동료들이 죽어가는 수사(水死)의 모습들을 수시로 지켜 보아야 했으며, 또 바다로부터 떠밀려온 무수한 죽음들을 보아왔다.

   그러면서 어쩔 수도 없는 자기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래서 ‘아무거나’ 가까운 어떤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걸궁 지신밟기를 할 때 집을 돌며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 지붕에 음식을 던지면서 정구 정구 정적궁! 하고 비는데 이것은 신이여, 알 수 없는 신이여 알아서 해달라!는 단말마의 비명 아니겠느냐?”고 취재중에 되묻는 젊은이가 있었다.

  이렇듯 섬에는 마을마다 유식 부락제와 무교식 당의 모습들이 잔존해 있었으며, 이것들이 차츰 현대종교화 해가는 현상을 엿볼 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옛날이나 이제나 이 섬 사람들이 비는 것은 바다에서의 안녕과 풍어가 지극한 소원이었다.
 <당포 >라는 이름의 대서리에는 김상헌이 “당이 있었다”는 항구 북안에 지금도 최영장군의 사당이 있다. 당초보다 약간 위쪽으로 장소를 옮겼다고는 하나 어쩌면 과거에 비해서 건물이나 주변 분위기가 더 새로워졌을 것이다.

  <절기미 >라는 이름의 영흥리 뒷산에도 더 높직한 곳에 산신당이 하나 있다. 朴씨 <處士閣 > 위쪽에 새단장을 하고, 공금으로 계단까지 만들어 놓은 이 당은 매인심방도, 본풀이도 찾지 못하는 대로 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묵리에는 <처녀당 >이 있다. 지금 생존해 있는 이 마을 노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금부터 80여년 전 제주에서 잠수들이 올 때 함께
왔던 처녀가 물질중에 죽어 시체가 밀렸다. 꿈에 선몽하는데 당 자리에 가 앉았다 해서 당을 세우게 됐다고 했다. 김권빈이라는 당골네가 있었으나 일제시에 떠나고, 미신 타파시에 없어지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다시 건물이 지어지고, 서툴게 그린 처녀신의 그림도 건물 안에 붙여졌다.

  신양리와 예초리에는 유식 마을제의 제터가 남아 있다. 신양리의
경우 추자도에서 가장 높다는 돈대산 꼭대기 샘이 있는 곳에 산신단이 있었다 한다. 이 마을 李康業씨(72)에 따르면 여기서의 산신제는
“하추자 세 마을 유지급들이 제관으로 선출돼서 추자면적으로 베풀어졌는데 중송아지를 제물로 삼아 제를 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제는 그치고, 축문이나 홀기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신양1리 바닷가, 지금은 신양항의 물양장이 되어 있는 속칭 <당그미 >에는 어부들이 모시는 <처녀당 >이 있었다. 김연남이라는 당골네가
있었으나 오래 전에 딴 지방으로 옮겨 가고,  20여년 전에 기독교인으로 마을의 유력한 유지였던 金모씨가 주장해서 없애버렸다고 했다.

  예초리의 신단은 마을 동녘산 <물생이끝 > 쪽 바닷가 벼랑에 있었다. 이 마을 朴鐘奎(67)씨에 따르면 마을이 성했을 때만해도 마을에서 예산 편성을 하고 제관을 결정한 다음 음력 섣달 그믐에 당맞이를 해다가 정월 초하루에 <거린제 >를 드렸다고 했다. 일종의 해신제였는데 창호지에 밥을 싸서 “멸치 많이 잡게 해주시오!” “삼치 많이 잡게 해주시오!” 소원을 빌며 바다에 던졌다고 했다. 이때는 선주집에서도 제물을 한 상씩 차려 오고 물에 가 죽은 사람의 집에서도 제물을  차려와 짚배<오장채 >에 실어 바다에 띄우고, 제 끝에는 농악도 치며 놀았다고 했다. 횡간도에서도 과거에는 정월 대보름(음력)에 풍어제를 지내었다.

  그러나 지금 추자 각 마을마다의 유식, 무식 의례는 거의 자취만
남고, 그 중 뚜렷하게 남아 있는 제는 최영장군 사당에서 거의 해마다 드리는 풍어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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