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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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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추자도의 공인종교
작성자 관리자 조회 644 회

  추자도에는 과거 영흥리 뒷산에 불교의 절이 있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절기미 >라고 부를 정도이며, 직구섬에도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1950년 6.25가 터지고, 각지로 내려온 기독교의 신자들에 의해 제주에도 영락교회 같은 교회가 선 것처럼 이 무렵에 추자에도 대서리와 신양리에 각각 교회가 들어선다. 그 후 개신교의 교회당은 묵리와 예초리에도 세워져서 추자도의 큰 자연취락에는 어디에나 교회가 세워진 셈이다.

 이미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그의 아들 경한이 배내옷을 입은 채로 이 섬 예초리와 인연이 닿은 천주교는 그러나 1956년 봄에야 상추자의 영흥리에서 전교를 시작한다.
 다음에 이를 각 교회별로 정리했다.

① 추광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대서리 봉골레산 기슭에 위치한 이 교회는 6.25를 겪은 부산 북성교회 李光玉 집사가 단독지원으로 金鳳龍 전도사를 파송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후 목사  안수를 받고 계속 이 교회에 시무했으며, 1951년 10월 1일에 추자동초등학교 교실을 빌어 개척예배를 드렸다.

 ’69년에는 김동선 장로(당시 집사) 등의 헌금에 의하여 현재의 대서리 58-2번지에 교회 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신축했으며, 1982년 3월에는 부속 유아원도 설립, 운영하고 있다가 1996년에 추광어린이집으로 발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인 수는 어른 125명, 어린이 75명, 중등부 40명 등이며 담임목사 양회진,  당회원은 김동선, 고성규, 조찬주세 장로이다.

② 신양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일부의 구전에는 1908년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 전도차 건너 갈 때 풍랑을 만나 추자에 머문 것이 이 교회의 시작이라고 하나 확실한 자료는 구할 수 없었다.

 1920년께 전남노회 소속의 김용하 장로가 가정에서 예배보기 시작하였으며, 1925년께는 평양 출신의 방계성 장로에 의해 교회가 설립되어 아직 묵리와 예초리에 교회가 설립되기 전에는 이 두 마을 교인들도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교회가 갈려 나가면서 신양교회에는 신양 1, 2리 주민들이 출석하고 있다. 설립 초기에 교회에 출석했던 양태교씨와 그의 영향을 받은 金炫德씨는 지역문화 형성과 발전에 큰 공적을 끼친 것으로 전해온다.

 현재 담임목사는 성강자이며, 성인 70명, 중등부 8명, 초등부 20명의 교인들이 출석하고 있다.

③ 예초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1952년 신양교회에 장항련 전도사가 부임한 후 기도처소로 저녁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후 계속 신양교회가 도와왔으며, 사가와 어촌계 창고 등을 교회로 써왔다.
 1988년 11월 제주노회 전도부에서 제광교회의 조태조 장로와 황보란 전도사가 파송되어 예초리 260번지에 대지를 매입하고 이듬해에 예배당을 신축, 입당예배를 드렸다.(대지 122평, 건평 48평)
 현재의 교인은 어른 29명, 어린이 2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④ 묵리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신양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이 거리가 멀어 1989년 6월 묵리 408번지 천세영씨 창고를 수리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1990년 8월 묵리 410번지 대지를 구입하여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듬해 10월 교회 설립 인가를 받았다. ’92년 김유문 목사가 부임한 이래 96년부터 중국 선교를 시작하여 길림성 연길시에 <삼도만 교회 >, ’98년에 같은 지역 안도현에 <송강교회 >, 왕청현에 <석성교회 >와 <고성교회 > 등의 건축을 했으며, 다시 새로운 선교지역을 물색하고 있다.
 장학사업도 벌려 중학생 8명, 고교생 45명, 대학생 6명, 대학원생 5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마을의 전화번호부를 만들어 배부하고, 이정표를 만들어 세우는 등 주민들과의 친화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어른 60명, 초중등부 29명이 출석하고 있으며 담임목사는 김유문이다.

⑤ 추자공소(천주교 서문교회)
 1801년(순조 원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의 아들 경헌(일명 경한)이 추자 예초리에 은거하고 권일신의 아들 권상학은 귀양을 오면서 천주교는 이 섬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이 인연은 바로 추자 전교와 연결되지는 못한채 오랜 세월이 흘렀다.
 1956년 봄 영흥리 유범수씨 집에서 제주중앙성당 소속 사비나전교회장의 집례로 공소예절을 시작하여 1975년 5월 4일에는 추자공소가 신축 봉헌 되었다.
 이강귀씨에 이어 현재는 김대성씨가 평협회장을 맡고 있다.
 성전 30평, 관사 20평이며 현재 등록 교인 수는 97세대, 27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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