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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항만.교통의 변천사
작성자 관리자 조회 596 회

  추자는 제주 본도와 반도 사이의 거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군도이다. 그런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소위 ‘고려적’부터 이 섬은 풍랑을 만났을 때 유명한 후풍처였으며, 옛기록에는  “수참(水站)의 옛터가 있다”는 내용까지 있다.
 더구나 군도 중에는 4개의 유인도를 포함하여 42개나 되는 유·무인도가 ‘마치 가래나무 열매를 흩뿌려 놓은 형태’로 흩어져 있다. 연육간은 물론 섬과 섬 사이의 교통수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반도와 본도를 잇는 교통수단은 물론 이런 수단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항만시설 역시 필수적이다.
 여기에서 항만과 교통의 변천사를 정리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1. 항  만

○ 楸子港
 조선시대에 발간된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 지적하고 있는 ‘水站의 古址’는 아마도 추자항일 것이다. 그것은 그 후 조선시대의 어사 김상헌의 기록인 <남사록 >에서 그가 당시 <堂浦 >라는 이름의 추자항에 머물렀던 사실이며 “300여척 병선을 대일만 하다”는 지적들이 입증해 주고 있다.
 추자항은 상추자 대서리에 있으며 인근항인 제주항과의 거리 45㎞,  하추자의 신양항과는 4㎞(육상 7㎞), 목포항과는 96㎞의 거리에 있다.
 1971년 제3종 어항으로 지정이 된 이래, ’72년에 개발에 착수하여  ’73년에 기본조사를 하고 ’87년에 건설공사를 마쳤으며, ’89년에는 시설물 안전도 진단을 실시하고 ’95년에 물양장 보강공사를 마쳤다.
 최근 95년에 공사를 마친 방파제는 140m, 물양장은 700m이며, 그 해에 준설도  실시한 바 있다.
 완공 후의 항내 수면적은 97,000㎡이며 정은수 면적은 69,000㎡로 10톤급 어선 163척을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며, 98. 2. 24 예초항과 같이 광역항으로 연안항 지정을 추진중이다.
 당시의 시공자는 三梧종합건설(주)이었다.

○ 新陽港
 하추자 소재의 신양항은 제주항으로부터 57㎞, 상추자의 추자항까지는 4㎞(육로 7㎞) 거리에 있으며, 목포항까지는 113㎞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1971년 제3종 어항으로 지정이 된 이래 ’72년 건설공사에 착수하여 ’82년에 기본조사와 시설계획을 세우고, ’89년에는 시설물안전도 진단을 실시했다.
 ’89년에는 건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97년에는 동방파제 보강공사를 했다.
 시설로는 동방파제 640m, 남방파제 295m, 물양장 525m 외에 선양장(船揚場) 50m가 북군에 의해 시공되었다.
 이 해에 역시 준공도 해서 항내 수면적은 219,000㎡, 정은수 면적은 178,000㎡에 이르며 10톤급 어선 330척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역시 三梧종합건설(주)에 의해 시공됐다.

2. 해상교통

추자와 다른 지방을 잇는 해상교통이 정기적으로 이뤄진 것은 일제시부터였다.
당시 일제는 좋은 조건의 어장인 추자를 식민지정책에 의해 탐냈으며, 다수의 어민과 어민 관계의 접객업 등에 손을 대게 했다.
 이들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 480톤급 강선인 고아마루(晃和丸)였다. 목포∼진도∼추자∼제주를  잇는 이 배는 해방되던 해인 1945년 5월 미군기에 의해 격침 당할 때까지 추자와 제주간에 주1회 취항했으며, 물양장 사정 때문에 승객들이 노젓는 종선을 이용해서 타고 내렸다.
 해방이 되고, 그 후 맨처음 취항한 것은 목선인 한려호(158톤). 해방 직후부터 1955년까지 취항했으며, 역시 목선 황영호(350톤)도 취항하다가 ’68년부터는 격일제 운항을 했다. ’50∼’55년에는 강선 평택호(700톤)가 매월 2∼3회 취항하고, 화양호(330톤)는 ’57∼’63년간 격일제 운항을 하다가 가야호 취항 후에는 야간운항으로 바꿨다. 나일호(350톤)는 화양호의 대체선박으로 ’64∼’66년에  취항했는데 이때까지 만해도 출입항 시간이 불규칙해서 큰산 꼭대기에 올라가 배가 오는 것을 보고 소리쳐 신호를 해주면 대리점에서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
 1965∼72년 간에 목포∼진도∼어란∼노화∼추자 간을 운항하던 백조호(200톤)가 격일제 추자항을 드나들면서 비로소 배가 추자항 부두에 접안하여 손님을 내리고 싣기 시작했다.
이후 목선 명륜호(200톤)가 같은 항로에 동기간 격일제 취항을 했으며, 신라호(200톤)와 비룡호(200톤)도 마찬가지 항로에 격일제로 드나들었다.
 1968년에 강선 안성호(407톤)가 목포∼진도∼추자∼제주를 오가면서 격일제 취항을 했으며, 이때 이 배는 추자항 외항에 세우고, 동력선 신양호(10톤)가 승객을 실어 날랐다. 이 배는 ’93년까지 취항했다.
 ’62∼’87년 간에는 가야호(515톤)가 격일제 취항하고, 이때는 해운호가 종선  노릇을 했다. ’71∼’81년 간에는 삼화호(270톤)가 취항하고, 그 후 안성호 취항 후에는 한때 야간운항을 했다.
 ’87∼’88년 간에는 아리랑호(970톤)가, ’88∼’90년간에는 동양고속훼리 3호(1,030톤), ’90∼’94년 간에는 국제고속훼리(870톤)가 취항하며 이 때에 비로소 하루 동안에 왕복하기 시작했다.
 ’94년 4월 데모크라시(396톤)가 정원 340명을 싣고 취항하면서 하루에 신양항과 추자항을 들르고, 제주와 목포까지 운항하기 시작했다. 또 ’98. 8∼’99. 4까지 한때 대영카훼리(314톤)가 추자항엘 들르고 제주와 진도, 목포까지를 연결시킨 바도 있었다.
’99년 1월부터 10월 19일까지 319명 정원의 완도카훼리 3호(653톤)가 완도∼소안도∼보길도를 거쳐 추자항을 하루 동안에 왕복한 바 있다.
 그러나 추자도는 1970년대 이후 바다낚시를 즐기는 낚싯군들이 증가하여 90년대 초까지는 연간 15,000여명까지 불었는데 이로 인해 한때 연안항 지정이 거론되기도 했다.
 1990년 북제주군은 서울 소재 (주)세일종합기술공사에 용역을 의뢰 추자항이 연안항 지정 적지라는 결과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해운항만청이 여기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림에 따라 ’98. 2. 24 대통령령에 따라 추자항과 예초항을 잇는 광역항으로 설계용역 발주 중이다..

○ 관내 해상교통
 추자 관내의 해상교통은 추자교가 가설되기 전 상·하추자 간에 사람의 출입이 필요함에 따라 시작되었다.(전설에는 이 두 섬 사이에 가래나무가 우거져 나무를 타고 다녔다고 하나 아마 이것은 전설일 것이다.)
 하추자의 알진두에서 나룻배를 타고 상추자의 웃진두까지 왕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의 나룻배는 사공에 의해 노를 젓는 것으로 일제시대부터 도항선  대인호(7톤 소구 15마력)가 취항할 때까지 묵리의 추대규씨(약 18년)와 대서리 김종인씨(2년), 추명선씨(5년)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당시 배는 상·하추자  주민들이 모금에 의해서 진수 되었으며 임금은 추자 주민 호당 매해 보리 석되씩을 거둬 연간 23가마니 정도를 임금으로 사공에게 주었다. 그리고 외지인은 따로 승선료를 받았다.
 그 후 1959년에 남군청 소속으로 성산∼우도 간에 운항하던 대인호(7톤)가 무료 이관되어 추자교가 준공될 때까지 대서리∼예초∼신양∼묵리를 거쳐 다시 대서리로 돌아오는 1일 2회 순회를 되풀이 했다. 선장은 박학래씨(대서리)였으며, 승선자 요금제로 대인 500원, 중학생 300원씩을 받았다.
 한편 ’63∼’67년간 대서리∼횡간도 사이에는 횡간호(2톤)가 횡간도 주민들의 임대로 무료운행됐다. 임대인은 영흥리 김재근씨로 고기를 낚아 운영에 보탰다.
 ’67∼’72. 9월까지는 북제주군 교육청의 장학선 한영호(7톤)가 추자∼추포∼횡간∼추자 간 운항을 주 2회씩 했다. 이때는 북제주교육청이 운영비를 대고, 선장은 박병술씨(영흥리)였다. 이어 ’72∼’82년간에는 신설 진수된 청운호(19톤·선장 박석규)가 같은 항로에 취항했으며, ’82∼’91년에는 제주 502호(17톤·선장 원장희)가 취항했다. 그러다가 이 기간에 횡간분교의 폐교로 91년 8월에 추자면에서 이 배를 무료로 인수하여 행정선으로 95년 10월까지 사용했다.
 이후 1995년 10월 2일 추자호(16톤·650마력, 12명 승선인원)를 신규 진수하여 현재까지 주 4회(월, 화, 목, 금요일) 추자항∼추포∼횡간을 돌아오는 항로에 운항하고 있다. 현재 선장은 원장희씨이며 3명의 선원이 동승하고 있으며 이 항로의 운항시간은 약 1시간이다.

○ 관내 대중교통
 추자교가 가설되고, 1985년 이 섬에는 대중교통수단으로 25인승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새벽 7시부터 매시간 정각에 대서리 여객선 부두를 출발하여 대서∼영흥∼묵리∼신양1·2리∼예초리까지 갔다가 매시 30분에 같은 코스를 되돌아 가는 운행을 저녁 8시 30분까지 하고 있다.
 요금은 어른 900원, 학생 450원. 이밖에 추자에는 현재 220대의 각종 차량이 신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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